폭력 마케팅 논란
마트를 지나다가 제 눈을 의심한 적이 있습니다. 생활용품점을 지나는데 왠 개...아니, 강아지가 절 당당하게 노려보며 '시바'라고 말하고 있더군요. LG생활건강의 시바 마케팅이었습니다. 역시 21세기. 사이버 펑크 시대. 이야기를 들어보니 여기에 나오는 시바는 욕이 아니라고 합니다. LG생건은 일본의 천연기념물인 시바견에서 모티브를 따 과감한 마케팅을 진행하는 중이라는 설명입니다. 그런데 뭐..노린건 사실이잖아요. 갑자기 궁금해서 '시바'의 보편적 단어를 검색해보니 다양한 유래가 나오더군요. 차마 글로 쓰기에 어려운 유래가 나옵니다. ㄷㄷㄷ
이런 과감한 마케팅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가운데, 최근 국민 SNS였던 싸이월드가 LG생건이 아슬아슬하게 지키던 선을 넘어버리는 금지된 마법을 가동하고 말았습니다. 탈론 왕세자가 좋아하겠네요(응?)
싸이월드, 좀 맞자?
지난 23일 싸이월드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30초 분량의 동영상을 올렸습니다. 뭔가 투박한 영상에 '똑바로 하란 말이야'라는 90년대 경찰청사람들에 나올법한 자막까지. 별 내용은 없습니다. 누군가 집단구타를 당하고 있는데 경찰이 옵니다. 경찰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때리던 사람들이 '싸이월드 직원이에요'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경찰이 같이...때립니다. 그렇게 영상이 끝나요. 그렇게.
처음 이 영상을 보고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냥 재미있게 웃고 넘어가야 하나? 그게 쿨한건가? 하긴 21세기 사이버 펑크 시대니까? 뭐 좀 맞을 수도 있지. 웃자고 만든거 같은데. 다만 가슴 한켠에는 '이래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이 경찰을 미친개에 비유한 후 강력한 반발이 일어나자 '사실 그런 뜻이 아니었음'이라며 지방선거 모드로 돌입하는 장면이 오버랩됩니다? 이것도 나름의 경찰 비하? 비율로 따지면 6:4였던거 같아요.
그렇게 지나가다가 이를 문제삼은 다른 매체의 기사가 등장했습니다. 사실 그 기사를 봤을대도 전 6:4였어요. 기사는 정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뭐 노이즈 마케팅일 수 있으니...그냥 뭐 다 그런거지 이런 생각? 어차피 금지된 마법이었고, 이 정도의 반응과 비판도 감수하고 만들었겠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싸이월드 마케팅 페이지가 집단구타를 지적한 기사를 링크하고 장난스럽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조롱하는 것을 본 순간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사를 링크걸고 해당 기자에게 평화상을 수여해야 한다느니의 말을 싸이월드 고위 임직원이 직접 댓글로 말하는 것은 좀 충격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처음 동영상을 보고 6:4의 비율로 '이런 거 만들 수 있지'라는 생각을 한 결정적인 이유는, 사실 싸이월드 내부에서 집단폭행이라는 비정상적인 행동을 꺼리낌없이 마케팅 영상이랍시고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이건 범죄 묘사로도 보일 수 있으니까. 다만 바이럴을 노린 분위기였고, 사업적 판단에서 자유로운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고려하면 그럴수 있겠다. 싶었던겁니다. 최소한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면, 좀 뭐랄까..'아, 우리가 좀 심했네' 이럴 줄 알았거든요.
싸이월드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너무 자연스럽게 시시덕거렸어요. 그래서 싸이월드에 문의를 했습니다. 이것과 관련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홍보 담당자는 딱히 말을 못했습니다. 사업부서가 달라서 상황공유가 잘 되지 않는다고...개인적으로 싸이월드 홍모 담당자는 상당히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력도 있고 열정도 있는 분이라고 제가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홍보 담당자가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인지하지 못하는 일을 가끔 보는데(일부러 그러는 척일 수 있지만)...그건 조직 망트리입니다.
여튼 돌아와서, 상황을 모르고 있으니 제가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묻자, 마케팅 팀이 속한 부서 사람을 연결해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연락이 와서 상황이 공유되었다고, 마케팅에서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동영상을 내릴 것이라고 말해줬습니다. 늦게라도 상황의 심각성을 알았으니 다행일까요. 참고로 홍보 담당자는 "일각에서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하는데, 절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있다
'내가 너 이긴다-싸이월드 마케팅팀' 페이지를 검색하니 뭔가 투박한 동영상들이 막 뜨더군요. 컬링 김영미 선수를 찾아가는 원정대 이야기나 문재인 대통령과 일촌을 맺으러 떠나는 직원들까지. 시간되시면 한번 찾아서 보세요. 노이즈 마케팅이든 아니든 걍 보시는것도 추천합니다. 어쨋든 일은 참 열심히 하는 분들이더라고요. B급 정서 강추입니다.
그런데 간혹 불편한 장면들도 보입니다. 경찰에 제지를 당하거나 1인 시위자로 오인받거나 등등. 참. 역시 많은 생각이 듭니다. 페이스북을 저격하며 토종 SNS인 싸이월드를 쓰자는 길거리 캠페인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다만 금지된 마법을 쓴다고 해도, 좀 생각을 하고 썼으면 좋겠습니다. 싸이월드 응원합니다. 제대로 된 SNS 역사를 만들어주세요. 노이즈 마케팅도 괜찮아요. 그런데 머리에 박혀있는 생각은 좀 유연하게 해주세요. 이건도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글을 통해 사람들이 싸이월드를 한 명이라도 더 찾는일이 벌어지기를 바라며, 또 싸이월드는 이에 맞춰서 사회적 파급력도 고려한 콘텐츠로 승부해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