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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진홍 May 10. 2018

포털 뉴스 편집 나비효과

별안간 콘텐츠 춘추전국 시대가 왔다

포털 뉴스 플랫폼을 두고 요 며칠 엄청나게 시끄러웠습니다. 저도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던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 소소한 관전 포인트 몇 가지를 적어보면서, 또 저 나름대로 정리도 해보려고 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사견입니다

참 이상한 일들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뉴스 모니터링을 하던 중 묘한 기사를 봤습니다. '민주당 당원 댓글조작 혐의로 수사 중'이라는 작은 사회면 단신이었는데..네. 바로 드루킹 사건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민주당이 사고를 쳤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이렇게 커질 줄이야.


많은 사람들이 알고있지만, 사실 드루킹 사태가 참 묘합니다. 드루킹은 민주당원이지만 자신의 청탁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돌연 문재인 정부와 여당을 씹었어요. 피해자는 현 정부와 여당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유한국당의 문제제기와 특검 요구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물론 드루킹이 여론조작을 한 것은 잘못이고, 그가 삐지기 전 적극적으로 현 야당을 씹었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수사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드루킹의 타깃이 왔다리 갔다리 하는 것을 고려하면 이 사람은 그냥 '관심종자이자 과대망상증 환자'가 아닐까 합니다. 수사를 통해 밝혀내는 선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지방선거 앞두고 드루킹 정국을 끌어가려는 정치적 시도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제가 왜 이 이야기를 하느냐. 이후 언론사와 네이버 사이에서 벌어진 일도 이러한 정치적 시도가 진하게 배어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네이버는 지난해 초유의 스포츠 콘텐츠 조작 사건을 거치며 플랫폼 공공성에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럼에도 잘못을 크게 뉘우치지 않고 관계자에 대한 미온적인 처벌만으로 끝내는 한편, 구글과 전쟁을 벌이며 글로벌 기업 역차별 이슈만 줄기차게 꺼내들었습니다. 아무리 사기업이라지만 이건 크레이지한 행동입니다. 네이버에 제대로 된 정무적 판단을 하는 사람이 과연 있나?라는 의문까지 듭니다. 시장 독과점 이야기까지 나오며 네이버를 견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충분히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드루킹 사태로 촉발된 작금의 현상은, 소위 CP로 분류되는 대형 언론사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네이버가 플랫폼 공공성을 상실했다? 맞죠. 혼나야 한다? 맞죠. 그런데 왜 언론사들이 회초리를 들면서 필요 이상의 성과를 노리는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차근차근 살피겠습니다. 언론사는 인터넷, 모바일 시대에 이르러 뉴스 유통 권력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솔직히 대형 신문사요? 발행부수 줄어드는 것보다 그들이 더 크게 걱정하는 것은 '의제설정능력'입니다. 예전에는 신문 헤드라인에 무엇을 뽑았냐. 하단에 무슨 기사를 배치했느냐에 따라 사회적 토론이 출렁였던 좋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종이신문 누가 보나요? 신문사가 헤드라인에 무엇을 뺐는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네이버 뉴스란에 들어와 가장 상단에 걸린 뉴스만 보죠. 언론사는 의제설정능력을 빼앗겼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드루킹 사태가 번지자, 또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프레임이 부상하자 언론사들은 별안간 뉴스 아웃링크를 주장합니다. 여기부터 살짝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드루킹 사태는 뉴스 댓글을 통한 조작입니다. 네이버 플랫폼에 대한 믿음이 크게 훼손된 사건인데 왜 그 해결책으로 아웃링크가 거론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뭐 이유야 있기는 있죠. 네이버를 믿을 수 없으니 언론사가 직접 편집을 해야 한다. 이런 발상인데...포털이 직접 기사를 제공하지 않고 기사의 제목 등만 공개하면 드루킹의 네이버 댓글조작과 같은 일을 원천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솔직히 괴상한 발상입니다. 일단 기회비용부터 따지자면, 언론사가 네이버보다 잘 할 수 있나요? 잘할 수 있다면 뉴스캐스트 흑역사는 없었겠죠. 게다가 독자에 대한 배려도 없습니다. 독자는 인링크가 좋아요. 누가 뉴스 보면서 아웃링크 타고 빠져나가 텍스트를 덕지덕지 가리는 부동산 광고 보고 싶겠습니까? 언론사들의 아웃링크 주장은, 그냥 의제설정능력이나 유통 권력을 가져오고 싶다는 정치적 의도에 불과합니다. 이 가설을 입증하는 데이터도 있지요. 9일 네이버 기자 간담회에서 유봉석 리더에 따르면, 70개 언론사에 아웃링크 의향을 물어본 결과 단 1개만 찬성했다고 합니다. 왜? 네이버가 어떤 방식으로 아웃링크를 할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전재료가 지급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언론사가 애초부터 아웃링크를 원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언론사들도 아는 거에요. 독자들이 짜증낼거고 네이버보다 잘하기 어렵다는 것을. 순수한 정치적 의도. 정치적 공세. 이번 기회를 통해 네이버를 손 보자. 손 봐야 하지만 이런 방식은 오히려 네이버를 도와주는 일이라는 것을 왜 모를까요.


앞으로 어떻게 될까..콘텐츠 춘추전국시대
네이버의 뉴스 개편 중 핵심은 뉴스판 등장입니다. 모바일 첫 화면의 뉴스 콘텐츠가 사라지고 별도의 탭 방식으로 뉴스판이 나타나 CP 언론사를 구독하는 방식이 유력합니다. 자. 어떻게 될까요. 이제부터는 순수하게 300% 사견입니다.


네이버에 올라가는 CP 언론사의 뉴스 콘텐츠 트래픽은 하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뉴스판'으로 독자의 사용자 경험이 복잡해지기 때문. 기존에는 첫 화면에 들어온 3000만명이 첫 눈에 들어오는 뉴스 콘텐츠를 보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뉴스판'은 화면을 옆으로 밀어야 하고, 뉴스 콘텐츠도 보이겠지만 '언론사'가 가장 잘 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네이버 PC 처럼 배열될 것으로 보입니다. 


독자가 무언가 궁금해 포털을 들어온다면, 검색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관심이 있으니까. 다만 CP들이 모바일 네이버에서 유리했던 것은 일상적인 뉴스 콘텐츠 소비율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이 소비율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 인생이 맨날 뭔가 궁금할 수도 없고, 걍 '뭐 없나' 네이버 모바일을 들어온 사람들이 화면을 옆으로 돌려 언론사 구독 명단을 쭈욱 보면서 콘텐츠를 살핀다? 어렵죠. 사용자 경험이 복잡해지고, 무엇보다 '아무 생각없이 들어온 사람들의 니즈'는 모래알처럼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트래픽 하락할겁니다.


다음으로는 첫 화면 콘텐츠. 뉴스 콘텐츠는 빠집니다. 그럼 네이버 모바일 첫 화면은 어떻게 꾸려질까요. 구글처럼 검색창만 달랑? 네이버는 절대 그럴리 없죠. 뉴스 콘텐츠를 일상적으로 소비하던 사람들을 유인할 수 있는 다른 콘텐츠를 준비할겁니다. 한성숙 대표도 9일 기자회견에서 "날씨는 넣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고 말했어요. 그 말인 즉슨, 뉴스 콘텐츠 소비에 몰리던 트래픽을 유인할 새로운 콘텐츠가 등장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99%의 확률로 네이버 포스트, 카페, 블로그, 브이 등등 네이버 기반 플랫폼 콘텐츠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링크냐 아웃링크냐에 따라 외부 사이트의 등장도 조심스럽게 점쳐볼 수 있습니다. 네이버는 첫 화면에 뉴스 콘텐츠를 걷어내며 손해보는 트래픽을 다른 콘텐츠로 채울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카카오의 다음도 묘하게 움직입니다. 10일 실적발표 후 컨퍼런스 콜에서 뉴스 편집 변화는 없다고 했어요. 다만 '추천 탭'을 신설했습니다. 아직은 첫 화면이 아니지만, 설정하면 첫 화면이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다음 모바일의 첫 화면은 '추천 탭'으로 확정된다고 합니다. '추천 탭'은 뉴스 콘텐츠를 포함하기 때문에 네이버 방식과는 다릅니다. 브런치와 커뮤니티, 뉴스 콘텐츠가 모두 인링크로 지원이 됩니다.

자, 네이버 첫 화면에 뉴스 콘텐츠가 사라지고...일상적 콘텐츠 소비 트래픽은 다른 콘텐츠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음은 더 노골적이죠. '추천 탭'을 통해 뉴스 콘텐츠와 다른 콘텐츠를 모두 보여주는 개념.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콘텐츠 춘추전국시대입니다. 네이버는 시끄러운 언론사들에게 '그럼 너희가 해봐. 다만 첫 화면은 못 준다'고 말했어요. 다음은 아예 언론사들에게 '첫 화면은 다른 콘텐츠 제작자들과 같이 써'라고 말하네요. 언론사는 원 오브 뎀입니다. 언론사라고 특별할 것이 없다는 뜻이에요.


네이버는 인공지능 기반의 뉴스피드판은 계속 운영한다고 합니다. 다음은 '추천 탭'이 인공지능 큐레이션 전략의 일환이라고 했어요. 이건 딴지걸 일이 별로 없습니다. 일각에서는 '뭐여, 네이버와 다음이 뉴스 편집 하네?'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사람이 아닌 인공지능이라잖아요. 솔까 할 말이 없지요. ICT 플랫폼 기업 입장에서 인공지능 기반 콘텐츠 큐레이션 역량을 깔끔하게 포기하기도 어렵고요.


드루킹 사태가 벌어진 후 아웃링크 카드를 꺼냈다 집어 넣으며 '뭔가 얻어낼 것 없나' 으르렁 거렸던 언론사. 특히 CP 언론사들은 네이버와 다음에게 회심의 반격을 당했습니다. 이 모든 공격에는 '우리가 유통 주도권, 의제설정능력을 가져가고 기본 포털이 언론사에 도움을 줬던 부분은 유지하겠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으나. 네이버와 다음은 쿨하게 권한을 던져 버렸어요. 


뭐 아웃링크는 어떻게든 언론사들이 받아들이지 않겠죠. 전재료도 있고. 문제는 언론사 콘텐츠가 포털에서 점점 '원 오브 뎀'이 되어가는 장면. 뉴스판의 구독 방식에 따라 메이저 언론이 비교우위를 가져가기는 하겠지만, 전체 트래픽 영향력으로 보면 분명 위력이 줄어들 가능성도 높고요. 언론사들의 맹공이 콘텐츠 춘추 전국시대를 불러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이..이게 아닌데'


검색제휴매체들은 큰 변화가 없으니, 일격을 당한 CP 언론사들의 '다음 수'가 참 기대됩니다. 아마 언론사 콘텐츠도 원 오브 뎀이 되며 이번 기회를 통해 다양한 신진 콘텐츠 플랫폼들이 각광받지 않을까요? 페이스북 등 SNS도 수혜를 입지 않을까요? 셀럽이 찍어주는 큐레이션 콘텐츠, 믿을만한 콘텐츠에 대한 집중도가 올라가지 않을까. 네이버에서 첫 화면 뉴스 콘텐츠를 일상적으로 소비하던 이들이 굳이 화면 옆으로 밀어가는 대신 SNS에서 믿을만한 셀럽이, 친한 친구가 찍어주는 기사를 더 보지 않을까요?


걱정은 이 과정에서 콘텐츠는 다시 플랫폼에 종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다음만 봐도, '추천 탭'이 모두 인링크에요. 언론사 콘텐츠는 원 오브 뎀이 되고, 언론사들이 아웃링크를 겁내고, 독자들은 인링크가 좋고, 콘텐츠 큐레이션 비즈니스는 각광을 받고, CP 언론사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고, 신진 콘텐츠 사업자들은 기회를 엿보고, 플랫폼은 회심의 미소를 머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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