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한 울림을 남기다
국회에서 25일 자동차 온라인 거래제도 개선방안 정책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원래 취재 갈 생각은 아니었는데, 관련업계에 계신 분에게 흥미로운 말을 듣고 말았습니다. '헤이딜러 관련 토론회를 여는데, 대부분 국토부 분들의 의견이 많이 나올 것 같아요'.
상상의 나래를 펼쳤습니다. 헤이딜러 폐업 문제가 화두로 부상한 이후, 지난 12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국토교통 미래산업 조찬간담회에서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은 온라인 중고차 경매업 규제를 풀어줄 것을 시사했죠. 당시 언론에서는 '헤이딜러 다시 재개하나?' 등의 기사가 나오기도 했고요.
그런데 25일 관련 업계에 계신 말을 해석하자면 '앞에서는 규제를 완화할 것이라고 말하고, 실무자급에서는 반대로 가는 건가?'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헤이딜러 대표도 세미나 토론회에 참석하는데 '매우 급작스럽게 연락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요식행위? 오호라. 이거 그림 되겠네. 바로 이동했습니다. 여기서 헤이딜러 논란이 무엇인지는 제 기사의 일부를 인용하겠습니다.
[헤이딜러 논란은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이 지난해 11월 대표발의한 자동차 관리법 개정안이 발단이다. 본 개정안은 온라인 자동차 경매 업체도 오프라인 경매장(3300㎡ 이상 주차장, 200㎡ 이상 경매실)을 보유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며 지난해 12월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참석의원 191명 전원이 찬성표를 던졌고 본 개정안은 5일부터 효력이 발휘된 상태다.
문제는 이러한 법안이 헤이딜러와 같은 모바일 스타트업의 영업을 사실상 원천적으로 가로막는 대목이다. 헤이딜러는 모바일 중고차 중개를 주선하는 플랫폼 사업자며, 자동차를 팔고자 하는 사람이 사진과 연식 등을 입력하면 전국의 자동차 딜러들이 경매 방식으로 이를 매입하게 만드는 구조다. 상당한 인기를 얻으며 단기간에 궤도에 올랐다. 주간처리 물량이 800대에 이를 정도로 업계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직원도 15명에 달할 정도로 외연적 확장도 거듭했다.
이 지점에서 헤이딜러가 김성태 의원의 법안으로 폐업 절차를 밟자, 엄청난 비판에 직면했다. 결국 지난 12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국토교통 미래산업 조찬간담회에서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은 온라인 중고차 경매업 규제를 풀어줄 것을 시사하기도 했다. 헤이딜러의 부활에 서광이 비치는 순간이었다.]
폭풍전야
세미나가 열리는 국회 의원회관에 조금 일찍 갔음에도 불구하고, 자리가 거의 찼더군요.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습니다. 회의실 입구 앞 테이블에는 김성태 의원실 직원들이 있었는데 바닥에 손으로 쓴 팻말이 보이더군요.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누군가를 규탄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마 청중일부가 들고 회의실에 들어오려다 압수당한 것 같았습니다.
자리를 잡으려고 들어가니 이미 거의 만석. 어쩔 수 없이 앞쪽에 앉았습니다. 통상적으로 앞쪽은 행사와 관련된 사람들이 앉는 곳이라 피하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자리에 앉아 잠시 다른 기사를 좀 썼어요. 그때 굳은 표정의 청중들이 우르르 들어오더군요. 모두들 중고차 매매업체 관계자들 이었습니다. 표정이 심상치 않았어요.
그런데 행사 시작 직전, 제 옆에 누군가 앉는 겁니다. 의원실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니 뭔가 중요한 사람 같아서 힐끔힐끔 쳐다봤는데 헤이딜러 박진우 대표더군요! 핸섬한 얼굴에 지적인 안경(제가 한 때 꿈꾸었던 스타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재빨리 인사하고 명함을 드렸어요. 본인 명함이 없던 박 대표님은 제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시더군요. 이후 궁금한 것들을 말하고 싶었으나 세미나 이후 열릴 토론회에 집중하시는 것 같아 말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잔뜩 긴장한 얼굴이기도 하셨고요.
세미나가 시작됐습니다. 국민의례를 하더군요. 정말 오랜만에 국기 앞에서 맹세라는 것을 해봤습니다. 이어진 초반 분위기는 차분했습니다. 환영사가 조금 길었던 것을 빼고요. 그리고 김성태 의원이 등장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김성태 의원은 자신이 발의한 법안의 당위성을 설명했습니다. 시장의 신뢰와 소비자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자신이 법을 발의했고, 이는 당연한 의지라는 것을 피력했습니다. 다만 ICT 발전은 세계의 흐름이기 때문에 다양한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한국교통연구원 모창환 박사가 등장했습니다. 주제발표였어요.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현황을 소개했는데 약간 지나치게 길다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엄청난 고뇌의 흔적이 느껴졌습니다. 모 박사의 결론은 '온라인 업체의 영역을 확고하게 정하고 소비자 불만을 해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규제만 마련하는 선에서 이들을 인정한다. 그리고 오프라인 업체에도 상생의 기회를 주고 적극적으로 지원한다'였습니다. ICT 발전을 외면할 수 없으며, 각자의 반발을 잠 재우기 위해 '공공의 이익'을 최우선에 둔 원론적이지만 가장 깔끔한 답변이었습니다.
'전국 팔도 욕설 다 들었던 날'
사단은 모 박사의 주제발표가 끝나고 토론회를 위해 10분간 휴식에 들어갔을 때 시작됐습니다. 중고차 딜러(딜러라고 통칭하겠습니다) 한 분이 앞으로 나와 모 박사에게 "중고차에 대해서 뭘 안다고 이런 말을 하는 겁니까?"라고 소리쳤어요. 그분은 감정이 격한 듯 거친 말을 쏟아냈습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딜러들이 문제 삼은 부분은 시장 투명성이었어요. 주제발표에서 '중고차 관련 소비자 피해가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라는 말이 나왔는데, 이게 심기를 건드린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제가 느끼기에 그 말은 헤이딜러와 같은 온라인 업체 허위매물 등을 지적하기 위한 거였어요.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온라인 업체를 규제했던 부분을 지적한 건데 왜 딜러들이?'
이후 분위기가 험악해졌습니다. 딜러들은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를 치기 시작했어요. 그제야 본심이 조금 드러났습니다. 한 분이 '헤이딜러가 영업을 재개하면 우리들은 다 망한다!'고 소리쳤기 때문입니다. 그때 느꼈어요, 아! 딜러분들은 사업적인 이윤을 문제 삼고 있구나. 그러니까 이런겁니다. 헤이딜러 논란이 벌어지자 정부는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했어요. 그러자 이번에는 오프라인 업체들이 들고일어나는 겁니다.
이 지점에서 정부는 '공공성'을 내세웠어요. 공공성은 모든 잡다한 이슈를 집어삼킬 수 있는 블랙홀이니까요. 하지만. 딜러들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았던 겁니다. 새로운 유형의 경쟁업체가 등장했다는 점이 딜러 분노의 원천이었습니다.
당장 살벌한 말이 오갔습니다. '할복하겠다' '이 개##들, 니들이 뭘 안다고 ##이야?' '다 죽여버리겠다'라는 살기어린 말들이 난무합니다. 심지어 '창조경제가 젊은애들 몇몇 취업시키는 거야? 대신 우리들 다 죽으라는 거야?'라는 말도 나왔고, 주제발표 도중 자리를 뜬 김성태 의원을 다시 불러오라는 고함도 들렸습니다.(김성태 의원은 주제발표 도중 자리를 떴습니다. 다만 이는 매우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토론회 끝까지 듣는 의원은 본적이 없습니다.)
주제발표 도중 자리를 뜨는 김성태 의원
의원실 직원들과 한국교통연구원 소속 직원들은 진땀을 흘렸습니다. 진정을 시키고 토론회를 속개하려고 했으나 소동은 가라앉지 않았어요. 그 와중에 우르르 몰려든 딜러들은 공무원들을 욕하고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전국 팔도에서 소식 듣고 올라온 분들이라 난무하는 욕설도 정말 다양했다는 거예요. 전라도와 강원도, 경상도의 온갖 욕을 다 들어 봤습니다.
이렇게 상황이 점입가경으로 흐를 무렵, 토론회를 진행하려는 쪽과 이를 무시하려는 이들의 힘겨루기도 팽팽해졌습니다. 토론회를 위해 발제자들이 앞으로 나오자 단상을 점거하고 마이크를 빼앗더군요. 그때 한 젊은이가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는 자신을 '흥미가 있어 참관하러 온 일반인'이라며 "진정하고 이야기를 해보자"라고 용감하게 외쳤습니다. 하지만 그도 이내 '꺼져!'라는 외침과 조롱 속에 자리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후 5시를 넘길 무렵, 진정을 위한 타결이 살짝 엿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토론회는 무효며, 딜러들의 의견을 알릴 수 있는 패널을 포함해 다시 행사를 열라는 주장에 대해 의원실에서 '알았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조건부였어요. 오늘 토론회는 예정대로 열고, 2차 토론회를 다시 열자는 거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딜러들은 '토론회를 강행하려면 우리가 막겠다. 그래도 토론회를 연다면 오늘 안건이 언론에 보도되지 말아야한다'고 했습니다. 극적인 타결?
하지만 이는 한 딜러의 외침에 공허해졌습니다. "벌써 오늘 토론회 안건이 기사로 떴네! 떴어! 짜고 치는 고스톱이야!"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검색한 딜러의 외침이었습니다.
순간 저는 조용히 현장에서 기사를 송고한 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튀었습니다. 옆을 돌아보니 어느새 사라진 박진우 대표의 짐을 챙기기 위해 한 직원이 빠르게 손을 놀리고 있더군요... 만약 박 대표가 현장에 있었으면 큰 봉변을 당할 뻔했습니다.
모두 일리가 있다
총평입니다. 일단 제가 세미나 현장에서 보여진 딜러의 행동을 다소 부정적으로 묘사했으나, 그들이 무조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번 문제의 사안은 정부의 방식대로 공공성이 맞습니다. 법 개정으로 헤이딜러가 폐업된 것은 황당한 일이고, 규제 완화로 ICT 융합의 기조를 잡아가는 것은 당연하죠. 이 지점에서 시장 투명성과 소비자 피해를 막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 됩니다. 다만 차가운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그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간과하면 곤란해요. 딜러들의 격한 반응은 그 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으나 분명 일리가 있습니다. 우버와 택시기사들의 논쟁과 비슷한 겁니다. 우리는 아직 이러한 문제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어요.
게다가 온라인 기업의 규제를 완화하고 최대한 상생의 방안을 찾기 위한 정부의 고뇌도 심정적으로 이해가 갑니다. 공공성을 내세운 것은 탁월한 전략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번 토론회가 졸속으로 진행되었다는 비판은 면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너무 갑작스럽게, 너무 황당하게 빠르게 진행하려 했어요. 요식행위도 아니고 이러면 곤란하죠. 딜러들의 반발 중 이러한 면피성 행보도 분명 분노 유발인자 중 하나였습니다.
전 여기서 정말 다양한 시사점을 발견했습니다. 그중에서 이번 사태가 창조경제의 담론적 논쟁에서 비롯됐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습니다. 무엇이 창조경제일까요? ICT로 대표되는 새로운 사업을 일으키는 것? 그에 따른 구 사업 종사자들의 타격을 용인하는 것? 한 가지 우려스러운 대목은 이러한 충돌이 신구세대의 갈등으로 비화될 조짐이 보였다는 겁니다. '창조경제가 젊은애들 취업 좀 시켜주는 건가?'라는 절망은 우리가 제법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딜러들의 과격한 행동도 인정할 수는 없지만 나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창조경제를 스타트업에서 찾고, ICT 발전이라는 대세를 '그냥 따라가자'라는 말로 때우는 것이 아닐까요?
사실 모르겠습니다. 무엇이 옳은 판단이지. 모두 옳고,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그 치열한 고민이 끝나면 다시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헤이딜러가 살고(진심으로 이런 스타트업이 부흥했으면 좋겠습니다), 온오프라인이 공생하자는 정부의 주장은 정말 훌륭하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만 25일 확인한 딜러들의 감성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전에 쓴 제 기사 일부를 공유하겠습니다. 오늘은 잠을 설치겠네요.
[헤이딜러 논란은 추후 O2O 사업의 방향성을 정함에 있어 일종의 '성장통'이다. 물론 전도유망한 스타트업이 폐업의 지경에 이르는 것을 성장통이라는 한 단어에 녹아내기에는 매우 잔인한 행동이다. 다만 이러한 현상은 O2O 발전 로드맵이 패러다임을 구축한 기존 오프라인 강자에 대한 위협과, 추후 이에 따른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한 방향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전자의 경우 우버 코리아의 국내 시장 안착 불발로도 설명할 수 있고 공유경제의 허구성과도 연결된다. 후자의 경우 현재 O2O 사업자들이 온디맨드의 방향성을 대부분(전부는 아니지만) 취하며 플랫폼 사업자, 즉 중개업을 매개로 삼고 있는 현상에서 비롯되는 분위기다.
결국 정교하게 생각할 여지가 있다. 김성태 의원의 '본심'에 대한 비판을 하기 전, 그 개정안이 말하는 속성에 집중하자. 아주 터무니없는 규제를 남발하는 것이 아니다. 기회비용을 따져 적절한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어떨까? 김성태 의원실은 "(개정안 발의 전) 모바일 스타트업의 소비자 피해가 사라지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충분히 다른 여지를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O2O 전략을 최대한 정교하게 짜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도 하나의 기업이 아닌, 정부 차원의 총체적인 '기반'을 다져야 한다는 주장과 연결된다. 오프라인 매장의 장점(안정성)과 모바일 플랫폼(혁신성)의 장점을 수렴할 방법이 없을까? 헤이딜러의 경우 오프라인 매장과 연대할 수 있는 방안을 정부에서 미리 지원한다면 어떨까? 우버의 경우 택시기사라는 이익집단의 격렬한 반발로 무산됐지만 카카오택시는 택시기사라는 이익집단과의 협력으로 길을 찾았다. 당장의 수익성은 담보하지 못해도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이번 논란을 두고 '국회를 폭파하자'라는 등의 과격한 발언은 삼가하자. 내밀한 동기의 실체에만 집중해 열을 올리면 정신건강에만 나쁘다. 차라리 동기야 어떻든 주어진 현상에 대해 이를 어떻게 연결하고 조립할지 고민할 순간이다. 스타트업은 부흥해야 한다. 분노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