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색의 극치니까 문제지
플랫폼 비즈니스에 관심이 조금 있다보니 이와 관련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알게되는데, 뭐 이제는 다들 알지만 온디맨드 플랫폼 비즈니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네. 긱 이코노미와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뭐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고, 취재를 하며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풀어보려고요. 이 과정에서 '이 새끼는 뭔데 이런 헛소리를 하지'라고 말하실 수 있을 것 같아 미리 밝혀두지만. 사견입니다. 좀 현실성 없는 이야기를 해보려고요.
플랫폼 노동자
조금 된 이야기인데, 한 플랫폼 업계 관계자를 사석에서 만났을 때입니다. 그는 배달 라이더를 관리하는 업종에 있는 사람이었는데, 어쩌다 일 이야기를 하다보니 배달 라이더에 대해 이렇게 표현을 하더라고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 그리고 씁쓸하게 웃었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이라는 말에 무엇이 담겨있을까요. 여러가지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당시 그 업계 종사자의 분위기와 말투, 뉘앙스로 미루어보건데 절대 긍정적인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쉽게 말해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9시 출근, 6시 퇴근은 죽어도 하기 싫어하고 한 철 벌어 한 몫 벌어 나머지는 놀고싶어 하는 사람들' 뭐 여기까지는 오케이. 그런데 또 다른 뉘앙스가 나옵니다. '그러면서 받고 싶어하는 것은 다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
자. '9시 출근, 6시 퇴근은 죽어도 하기 싫어하고 한 철 벌어 한 몫 벌어 나머지는 놀고싶어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물론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면 곤란하지요. 그러나 당시 그 발언을 천천히 생각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실제로 배달 라이더들을 종종 만나기는 했는데, 저도 그들이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이라는 점은 일정정도 동의합니다. 생각의 시작부터 약간 달랐습니다. '나는 자유롭게 일하며, 자유롭게 쉬고 싶다.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 일을 많이 하고, 적게 벌고 싶으면 일을 적게 하고 싶다'. 이건 나쁜게 아니에요. 그럴 수 있습니다!(자도 그러고 싶어요)
딱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긱 이코노미는 최고의 선택입니다. 플랫폼과 배달 라이더, 즉 플랫폼 노동자의 니즈가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플랫폼 입장에서는 정직원을 채용해 많은 비용이 드는 것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일이 필요할때만 불러 일을 시킬 수 있는 플랫폼 노동자는 효율적인 비즈니스 동력입니다. 플랫폼 노동자요? 당연히 좋죠. 9시 출근 6시 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부장 잔소리 듣지 않아도 되고, 플랫폼과 동등한 입장에서 계약을 맺고 원하는 만큼 일을 하고 원하는 만큼 돈을 벌면 되니까요. 아마 짐작하건데, 긱 이코노미는 이런 출발점을 전제로 할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9시 출근, 6시 퇴근은 죽어도 하기 싫어하고 한 철 벌어 한 몫 벌어 나머지는 놀고싶어 하는 사람들' 다음에 나오는 '그러면서 받고 싶어하는 것은 다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는 반응을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니. 조화로운 긱 이코노미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지?
네.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말해두지만 긱 이코노미는 나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의미로 좋은 방식일 수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긱 이코노미의 아름답고 조화로운 초반의 규칙들이 무너지면서 발생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긱 이코노미 예찬론자들이 간과한 현실의 문제일 수 있겠네요.
먼저 일감과 돈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 역시 일반화의 오류는 위험하겠지만, 플랫폼 노동자들이 많은 돈을 가진 부자일 가능성은 상당히 낮은 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을 필요로 하는 기간에 나에게 일을 줄 수 있는 플랫폼의 권력이 강해지는 현상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긱 이코노미의 전제조건은 플랫폼과 플랫폼 노동자의 권한이 평등해야 한다는 점인데, 플랫폼이 공급의 니즈를 플랫폼 노동자에게 배분하는 순간 권력의 상하관계가 발생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플랫폼 노동자의 숫자보다 플랫폼이 줄 수 있는 일거리가 적다면? 상황은 더 심각해지는 거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대학 때 용돈이 떨어지면 새벽에 인력소개소에 종종 나가고는 했습니다. 비록 잡부지만 하루 일하면 5만원 정도 줬거든요 당시에. 그날도 저는 새벽에 졸린 눈 부비고 일어나 인력소개소에 갔습니다. 아유 그런데 저처럼 잡부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북적이고 있네요? 그 때 소장님이 슬쩍 주변을 보고는 자기와 친한 사람만 연결을 하고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이런 젠장. 졸린눈 부비며 어렵게 갔는데 허탕이라니. 하지만 뭐 어쩝니까. 다시 집에 돌아와 어제 씹어먹던 김 세트나 집어 들어야죠.,,,네. 요런 느낌입니다. 플랫폼의 권력. 돈과 일거리를 쥔 자의 힘은 강력하고, 저에게 당시 그 소장님은 부처님 하느님이었습니다. 일 못하게 되면 개새*였고요. 껄껄.(그때 허탕치고 나가면서 법규하다 걸렸는데 '나한테 하는거야 학생?'이라고 물으셨죠. 아니라고 웃으며 후다닥 나갔는데 사실 맞아요. 혹시 약 15년전 인련사무소 운영하시다가 왠 볍신에게 법규를 받으신 분이 있으시다면 이 자리를 빌어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자. 여기서 하나더 살펴야 할것은...이러한 플랫폼과 플랫폼 노동자의 권력지형은 시간이 갈수록 더 공고해진다는 점입니다. 모바일 시대가 열리고 020가 만개하면서 온디맨드까지 내달린 상태에서, 점점 많은 서비스 수요자들은 매력적으로 보이는 온디맨드 플랫폼에 몰리고 있습니다. 배달의민족, 요기요, 다방, 직방, 여기어때, 야놀자를 보면 점주들이나 부동산 업소, 숙박점주들 모두 O2O 플랫폼에 내는 광고비가 아까워 죽겠다면서 모두들 모여들죠? 이건 시대의 대세입니다. 이러다 보니 일감도 플랫폼에 집중되고, 플랫폼 노동자들은 더 종속이 되죠.
이 지점에서 플랫폼의 사정을 봅시다. 이들은 당장 대규모의 정직원을 고용해 막대한 비용을 치르기에는 사정이 여의치 않아요. 심지어 법적인 문제도 있고요. 여기서 자유로운 영혼들을 필요한 때에만 불러와 일을 시키는 것은 정말 최고의 선택이죠. 미국에서도 한다는 긱 이코노미라잖아요. 선진국에서 하면 다 좋은거지 뭐. 심지어, 플랫폼 노동자들은 종속이 되고있네요? 오 굿.
그런데 문제는. 현실의 사업이라는게 참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거에요. 소비자의 눈높이는 높아지고 있는데 별다른 교육없이 그때그때 투입되는 플랫폼 노동자들이 그 기준을 맞출 수 있을까요? 천만에. 심지어 VCNC 타다의 경우를 보면 서비스의 핵심 가치가 '친절함'이에요. 야. 이 괴리감을 어떻게 메우지.
현재 플랫폼들은 이 문제를 아주 쉽게 풀어가려고 합니다. 돈이죠. 그들은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말합니다. "서비스의 질은 지켜야해. 그러니까 내가 너희들에게 개입을 좀 할께. 왜? 싫어? 난 이해가 되지않네. 일을 많이 하면 너 돈 많이 벌 수 있다니까?" 여기에는 자유로운 영혼들에 대한 내밀한 의식이 잔잔하게 흐릅니다. "너희들은 자유로운 영혼이잖아?"
....사단이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등한 지위가 깨진 상태에서, 플랫폼은 어려운 말로 하면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일으키고, 플랫폼들은 현장에서의 괴리감을 긱 이코노미의 유연한 돈벌이로 퉁치려고 하니까 답이 나오지 않는 겁니다. 세상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그래서 긱 이코노미가 허상이라는 말이 나오나 봅니다.
이 사단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솔직히 없을 것 같은데...하나 굳이 말하자면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플랫폼이 플랫폼 노동자들로만 서비스를 해도 질 높은 비즈니스를 영위할 수 있도록, 기술로 보완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목표는 조금 극단적일 수 있는데, 전업 플랫폼 노동자들이 진입하지 않는 방향이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이건 또 무슨소리냐. VCNC 이야기를 하자면 말입니다. 타다 드라이버 중 소득이 불규칙적이고 시간이 여유로운 직업군일 경우 상당히 만족감이 높았습니다. 배우나 모델일을 하는..네. 프리랜서. 이들은 굳이 생업이라면 프리랜서고, 타다 드라이버는 일종의 부업입니다. 이럴 경우 플랫폼과 플랫폼 노동자의 관계는 상당히 회복됩니다. 생업이 프리랜서인 사람들은 타다에 굳이 목을 맬 이유가 없어요. 타다 드라이버 일이 없으면 아쉽고, 있으면 땡큐인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플랫폼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허점을 메울 수 있는 기술. 즉 이동경로 최적화 알고리즘 등을 동원하는 것이 답입니다.
좀 두서없이 이야기를 했는데 정리를 하겠습니다. 지금 플랫폼과 플랫폼 노동자들의 분쟁은 말입니다. 권력의 상하 및 종속 등의 이슈에서 비롯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분쟁을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방법은 기술입니다. 기술로 플랫폼의 허점을 메우면서 플랫폼 노동자의 비중을 다소 줄이는 겁니다. 여기서 전제되어야 할 것. 전업 플랫폼 노동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프리랜서가 생업이고 부업으로 플랫폼 노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만으로 비즈니스를 꾸리는 것입니다. 이들은 기술이 플랫폼을 보완하면서 자유롭게 좁아지는 플랫폼 노동자의 입지를 감내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전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도 현실성은 없지요. 플랫폼을 키우고 싶어하는 기업에게 노동자들의 '풀'을 줄이라고 하는건 말도 않되는 개소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플랫폼으로 들어와 일을 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는 전업 플랫폼 노동자들에게도 제 의견은 때려죽일 놈의 의견일겁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긱 이코노미는 여러가지 현실적인 제약을 고려할 때..스트리밍처럼 온라인 베이스가 아니고 현실의 O2O를 기반으로 한다면 절대 주류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생각할 때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플레이어는 될 수 있습니다. 시장은 작아져도, 이것이 플랫폼 노동자 이슈를 제거하고, 궁극적으로는 안정적인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승자독식과 때려부수기
플랫폼 비즈니스는 원래 승자독식입니다. 간혹 플랫폼 시장 독과점 문제가 나오는데, 전 모든 정치 사회 문화계에서 이를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승자독식이 벌어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플랫폼 비즈니스는 승자독식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흘러갈거고, 그때마다 여론이 나서 이를 분쇄하는 겁니다. 그럼 해당 플랫폼은 피봇을 하든 쪼개지던 다시 움직일거고 그때 또 부수고...쓰고보니 이거 미친놈이네...근데 이런 방식이 이뤄지는거 맞다고 봅니다. 이러다가 혁명이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긱 이코노미도 제 주장대로라면 좁은 시장에서 아마 승자독식할 겁니다. 그 때마다 여론이 나서 쪼개고 다시 일으키고. 이 과정에서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다 때려부수자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길을 주면서 더 많은 다양성을 보장하고, 또 그러면서 승자독식을 인정하고 또 부수자. 뭐 이런겁니다.
여기서 플랫폼 노동자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전업 플랫폼 노동자를 없애자는 주장은 사실 현실성이 없고, O2O 시대가 열리며 더 어려운 주장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위에 설명한 플랫폼 때려 부수기와 비슷합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진짜 현실이 되었을 때 한번 해체해보자. 그 틈에서. 해체의 과정에서 우리는 또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