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세상은 다양하다...믿음이 없다?
IT기자 입장에서 미국과 중국의 충돌을 지켜보면서, 또 정보를 얻고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중국은 왜 친구가 없을까?' 실제로 미중 무역전쟁 당시만해도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 무역주의에 질려버린 유럽이(지금도 질려있기는 하지만) 화웨이 장비를 속속 차용했으나 코로나19, 홍콩 국가보안법 등 끝판 전쟁이 시작되자 다시 미국의 옆에 서는 것을 보고 좀 의아하기는 했습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도 유럽 만큼은 아니지만 슬슬 중국 대신 미국의 편에 서는 분위기가 노골적이라, 이런 의구심은 더 커집니다.
혹자는 '당연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특히 국내에서는 중국을 믿지못하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개입 등 상대적으로 생생한 역사의 기억이 있기에, 또 큰 나라인 중국의 인근에 붙어있는 상황에서 '반중 정서'가 퍼질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왜 다른 나라들은 중국과 이렇게 척을 지려고 할까.
다만, 사실 이 질문은 이렇게 바꿔야 합니다. '왜 세계는 (질릴 정도로 짜증나도, 심지어 트럼프가 대통령이어도!) 미국을 선택할까?'
외로운 중국
미국과 중국이 신나게 싸우고 있습니다.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 백신과 중국이라는 두 개의 카드로 사실상 대선 슬로건을 정한 상태며 중국은 크게 반발하면서도 일단 정중동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통째로 틱톡을 빼앗길 수 있는 상황이야, 중국이 2010년 만리장화벽을 세워 이미 비슷한 행동을 매우 광범위하게 벌였기 때문에 마땅한 대항카드도 없고 할 말도 없지만(....) 다른 상황에 대해서도 딱히 선을 넘지 않으려는 분위기는 매우 역력합니다.
실제로 미국이 영사관을 폐쇄하니 중국도 폐쇄하고, 그 방식이나 파급력도 매우 정밀하게 계산한 분위기입니다. 미중 무역전쟁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국이 10을 때리면 중국이 10을 때리고 미국이 5를 때리면 중국도 5를 때립니다. '너가 때리니까 나도 때리는데 그 이상은 하지 않겠어'
이유야 뭐 간단합니다. 당장 미국에 맞설 힘을 키우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 여기서 중국이 이기려면 무슨 생각을 할까요? 힘을 합치는 겁니다. 즉 친구가 필요합니다. 친구와 손을 잡고 미국을 뛰어넘는 영향력을 확보하는 순간 미국이 5를 때리면 당당하게 10을 때릴 수 있는 겁니다.
문제는 중국의 친구가 없다는 점. 미국 보호 무역주의에 질린 유럽이 한 때 중국과 손을 잡았으나 지금은 야멸차게 뿌리쳤고, 심지어 화웨이와 매우 친했던(?) 영국은 브렌시트를 앞 둔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아 지금은 아예 철저한 중국과 거리두기를 하고 있습니다. 5G 상용화 시기를 무려 2~3년이나 늦추는 초강수를 두며 기존 중국 화웨이 장비까지 뜯어내는 중입니다.
인도? 아프리카? 아시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은 막대한 차이나머니를 살포하고 야심만만한 일대일로를 추구했으나 지금은 모두 옛 일이 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히라카와 히토시 일본 나고야대 명예교수대 교수가 '저술한 글로벌 경제에서 중국의 경제발전 메커니즘과 일대일로 구상'에 따르면 3월 이후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 건설은 중지됐고, 인도네시아에서는 고속철도공사, 캄보디아에서는 시아누크빌 경제특구 건설이 멈췄습니다.
심지어 그나마 중국에 우호적이던 아프리카도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중국과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아프리카연합(AU) 본부 건설 자금을 중국이 대고, 중국이 우간다에 총연장 2400km에 이르는 광섬유케이블 설치를 지원하는 등 밀월의 강도는 상당히 강했지만 코로나19가 모든 것을 바꿔버렸습니다. 중국이 탄자니아 항구 건설을 지원하고 해당 항구를 99년간 갖도록 하는 계약이 체결된 가운데 지난 5월 존 마구풀리 탄자니아 대통령은 이 모든 협력을 두고 "전 정권이 술에 취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계약"이라 일축하며 사실상 백지화시키기도 했습니다.
돈은 돈대로 받아놓고, 미국이 적당히 짜증나게 굴 때는 중국의 손을 슬슬 잡던 이들이 왜 끝짱싸움이 시작되자 모두 중국과 등을 돌리는 것일까. 중국도 여기에 대한 고민이 깊은가 봅니다. 중국 정부가 68개 개발도상국에 빌려준 돈이 1017억달러(120조원)에 달하는데, 도대체 왜?
이러한 현상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크게 3가지로 보입니다. 바로 장기전 대응, 우군 확보, 그리고 분석.
장기전 대응은 중국 특유의 전략이기도 합니다. 만만디. 국공내전 당시 농촌을 중심으로 장기적인 전투를 진행하며 서서히 힘을 기르는 전략입니다. 실제로 중국 공산당 정치국은 제14차 5개년 경제개발 계획을 통해 당장의 글로벌 전략이 아닌 이른바 내수중심전략을 수립했고, 시진핑 주석은 남부에 물난리가 나고 있음에도 동부지역 산업개발을 독려해 상대적으로 공업발달이 이뤄진 서부지역의 타격을 상쇄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우군 확보는 당연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혼자니까. 친구를 구해야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습니다. 앨릭스 에이자 미 보건복지부 장관의 대만 방문에 격렬히 반응하면서도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으로 돌아선 남태평양 솔루션제도에 아낌없는 사랑을 쏟아붓는 일이 반복되는 이유입니다.
미국 텃밭인 남미 및 카리브해 지역 국가들을 대상으로는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7월 23일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멕시코, 아르헨티나, 바베이도스, 칠레, 콜롬비아 등 남미 국가들 외교장관과 함께 코로나19 대응 외교장관 특별 화상회의를 열었고, 이 자리에서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항하자"는 메시지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당연히 해야할 일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지금 현상에 대한 원인 분석.
중국의 대표적인 천재이자 매파 중 하나로 꼽히는 중국 국방대학 전략연구소 다이쉬 교수는 지난 3월 미중 분쟁을 두고 재미있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미중 갈등에서 중국이 놓친 4가지 요인을 두고 '미국의 원한이 이렇게 클 줄 몰랐다. 미국의 수법이 이토록 악독할 줄 몰랐다. 미국에 얻어맞는데 편들어 주는 나라 하나 없다. 중국 때리기에 미국의 공화당-민주당이 따로 없다'로 요약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미국에 얻어맞는데 편들어 주는 나라 하나 없다'에 시선이 집중됩니다. 그는 "세계 각 국은 중국이 자기들을 위협하고 있다 느낀다"면서 "각 국이 중국이 아닌 미국의 편을 드는 이유"라고 봤습니다.
다이쉬 교수의 분석은 상당히 날카롭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맞습니다. 각 국은 중국이 자기들을 위협한다고 생각하기에, 평화로울때는 차이나머니도 받고 이런저런 협조도 하지만 마지막 순간 돌아서는 분위기가 연출됩니다.
하지만 이 명제를 거꾸로 생각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세계는 계속 미국을 지지하는가' (여기부터는 사견이 잔뜩 들어갑니다.)
중국.
왜 세계는 중국이 아닌 미국을 택할까. 일차적으로는 미국의 힘이 아직은 중국을 앞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편을 들 수 없습니다. 지금이야 미국이 약간 맛이 갔지만, 그래도 2차 세계대전 후 세계에 쌓아둔 강력한 영향력은 여전히 유효하며 튼튼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치 제국과 싸운 연합군의 주축이자 소비에트연합과의 지루한 냉전을 기어이 승리로 이끈 미국에 대한 경외감은 의외로 곳곳에 배어 있습니다. 자유진영의 큰형님! 영향력과 더불어 미국에 대한 경외감은 '그래도 마지막에는 미국을 택하는' 논리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길게 생각하면, 지금 각 국이 미국 대신 온전히 중국을 택하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중국의 힘이 점점 강해지고 있거든요. 중국이 GDP 기준 조만간 미국을 압도할 가능성이 높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가장 빠르게 경제를 회복시키는 것도 사실입니다. 실제로 올해 2분기 주요국 경제성장률을 살펴보면 미국은 -9.5%지만 중국은 +11.5%입니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중국과 척을 지는 것보다는 최소한의 협력고리를 가져가는 것이 상식인데, 세상은 그렇지 않네요.
세상이 중국 마음처럼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아마 중국이 세계에 믿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일겁니다.
실제로 중국이라는 나라는 일당독재체제며 경직되어 있습니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나 대놓고 국지적 도발을 일으키고 그 모든 작업이 하나의 권력과 체제에서 나오는 구조입니다. 이러한 중국이 세계의 패권을 잡는다? 아직 잡지 못했기 때문에 각 국은 중국을 경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이냐? 사실 미국도 크게 다를 것 없습니다. 기름을 위해 중동에서 전쟁을 일으키고 입맛에 맞게 각 국의 정권을 마음대로 뒤집었습니다. 횡포의 절대치로 보자면, 중국이 국제무대 전면에 나선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에 아마 미국이 훨씬 압도할 겁니다. 더 고약한 짓을 많이 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미국은 대의명분에 강했습니다. 중국은 중화. 즉 자신들을 중심에 두고 모든 세계질서를 재편한다는 의식이 강했지만 미국은 최소한 겉으로는 '세계평화' 운운하며 대의명분을 더 고차원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격상시키는 골때리는 전략이 있었습니다. 중국 중심의 중국의 소프트위어 파워보다 미국의 다소 역겨운 소프트웨어 파워가 당연히 더 잘 먹힙니다. 각 국이 '그래도 미국'을 택하는 이유입니다.
여기에 시간의 마법도 있습니다.
솔직히 홍콩이나 신장 위구르 사태만 봐도, 매우 끔찍한 인권탄압의 현장인 것은 자명합니다. 그런데 이를 비판하는 나라가 미국과 영국이라니. 미국은 수 많은 인디언들을 학살하고 그들을 보호구역으로 밀어넣은 인간 사냥꾼들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국이요? 제국주의의 원산인 영국이 전 세계에 저지른 패악질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미국과 영국은 그들의 패악질을 적당히 숨길 수 있는 시간을 벌었고, 또 이를 미화시키는 소프트웨어 작업들이 이뤄질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중국은 그럴 시간도 없었습니다. 여기에 세계로 뻗어나가려는 대의명분마저 중국 중심이라니.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미국의 방식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소위 자유세계라는 이들은 따지고 보면 1%의 귀족들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역사주의 시대의 산물로 볼 수 있겠지만,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다원주의를 원칙으로 합니다. 그리고 간혹 이 다원주의가 사회의 불합리함을 분출시키고 공론화시킬 수 있는 무대가 되기도 합니다. 느리지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들거든요. 표면적이지만 다른 주장, 즉 이견에도 일단 귀는 기울인다는 사회의 체제. 중국이 가지고 있지 못한 강점입니다. 최소한 이 강점은 다른건 몰라도 우군확보에는 매우 유리합니다. '저 놈을 따랐을때 내가 손해보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래도 재네는 최소한 이야기는 들어보는 문화지'
물론 중국도 그럴 수 있습니다. 특히 외교에서는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중국은 사회 자체가 일당체제입니다. '저 놈을 따랐을 때 내가 손해보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냥 일사분란함의 객체가 될 뿐이겠지' 딱히 중국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어떤 미친자가 '아름다운 중국!'을 외치며 자신을 맡기겠습니까.
여기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는 배경을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혹자는 지구촌 시대가 온다고 하지만 왠걸요. 아직 인류는 민족과 국가 단위의 공동체 이상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글로벌 사물인터넷 시장이 생각보다 커지지 않아 소프트뱅크가 암을 매각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이 글로벌 질서를 좌우한다지만 제3지대, 제4지대는 여전히 남아 자신들만의 세계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네. 아직 지구제국은 만들어 질 수 없으며, 이러한 배경이 '그래도 세계평화'를 말하는 미국의 방향과 일치합니다. 세계평화는 모든 것을 미국 중심이 아닌(원하기는 하겠지만) 각 객체의 존재를 전제로 합니다. 이렇게 느슨한 연대 정도일 뿐인데, '미국에 대항해 중국으로 일치단결하자'는 메시지가 통할리가. 내가 왜?
유연함
사실 중국만큼 대의명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삼국지에서 조조가 허수아비 황제를 어떻게든 품었던 것도 대의명분의 중요성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느슨한 연대에 대한 노하우도 있습니다. 유럽과 비교해 중국은 상대적으로 봉건주의 시대의 노하우도 깊은 편이거든요.
유연함도 있습니다. 돌궐이나 몽고, 만주족 등과 때로는 싸우고 화합하며 심지어 집어 먹히면서도 그들과의 시너지를 노렸습니다. 먼 나라에는 적당한 조공체제를 도입해 현지 지도자를 인정해주는 관습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은 말 그대로 위대한 중국 아래로 헤쳐모여라 외치고만 있습니다. 왜 그럴까...전 아이러니하지만 지난 제국주의 시절 서세동점의 아픔이 그 만큼 컸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꺾인 자존심을 다시 살리기 위해, 아시아의 맹주였던 예전 영광된 추억만 취사선택하며 지금의 중국이 만들어진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무대는 완벽하죠. 만주족 천하였던 중국은 청나라 시절 서구열감의 먹잇감이 되었고, 한족들은 청나라의 시대에 이어 제국주의 시절, 심지어 일본에게도 후두러 맞았던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서구열강의 방식이 아닌 공산주의 방식으로 체제를 수립해 끝까지 살아남아 자유주의 진영의 미국과 맞설 수준이 됐습니다. 날 맨날 때리던 놈이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사고방식으로 무장해 막대한 힘을 키웠던 겁니다. 과거의 패배감과 지금의 묘한 승리감에 도취되는 순간, 지금의 중국이 탄생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이 대만 독립에 불같이 화를 내고 홍콩 국가보안법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정신역사의 흐름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