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0 현장을 취재할 당시 다양한 가전제품의 향연속에서도 단연 빛을 발하는 서비스가 있었으니, 그 주인공은 바로 모바일 전용 숏폼 스트리밍 서비스 퀴비(Quibi)입니다. 당초 취재 계획에 없었으나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내용을 챙겼던 기억이 납니다.
퀴비는 화려했습니다. 모바일 중심의 광고형 OTT를 중심으로 숏폼 콘텐츠의 새로운 가능성 타진에 나선다는 비전은 선명했고, 무엇보다 스토리텔링이 탄탄했습니다. 월트 디즈니 회장을 역임하고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공동 창업자로 명성을 쌓은 제프리 카젠버그와 HP CEO를 지냈고 지금의 이베이를 키워낸 멕 휘트먼이 만나 탄생한 서비스라는 것만으로 충분히 관심을 받을 자격이 있었습니다. 제프리 카젠버그가 30년 지기 친구이자 은퇴를 준비하던 멕 휘트먼을 만나 세 시간 남짓 식사를 하며 설득해 퀴비로 의기투합했다는 이야기는 아름다운 '실버 성장영화'의 한 장면을 닮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세상에 등장한 퀴비는 어떻게 됐을까요. 10억달러의 투자금을 쓸어모은 후 지난 4월 6일 공식 런칭해 당일 앱 다운로드 수는 30만을 기록했고 첫 2주간 서비스앱의 다운로드는 270만건을 돌파했습니다. 새로운 모바일 전용 OTT의 등장에 세계는 열광했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습니다. 퀴비는 더 날아오르지 못했고 추락을 거듭하는 중입니다. 당장 비즈니스인사이더 등 외신은 22일 퀴비의 경영진들이 회사 매각을 준비하고 있다 보도했습니다. 숏폼 OTT간 경쟁심화와 차별화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퀴비의 약점은 화려하게 등장한 퀴비가 서비스 출시 4개월만에 휘청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23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퀴비의 실패 원인은 페이스북 및 구글, 유튜브 등 이동 중 숏폼 콘텐츠를 제공하는 다른 플랫폼과 비료해 차별화에 실패했고 과도한 저작권 개념으로 공유 기능이 없었던 점, 광고 기반 OTT의 한계, 모바일에 특화된 시청 방식이라는 턴스타일(Turnstyle)의 확장성 부재로 좁혀집니다.
현 상황에서 워싱턴포스트의 지적은 타당성이 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다만 그 내밀한 속사정을 살펴보려면 플랫폼의 정체성을 따져봐야 합니다.
퀴비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CES 2020 당시에도 느꼈지만 철저한 모바일 기반 숏폼 콘텐츠 OTT입니다.
하나하나 분절해서 살펴본다면, 우선 모바일에 특화된다는 것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 작은 화면을 기반으로 다양한 인터랙티브 기능을 제공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장점과 단점이 혼재되어 있어요. 장점은 스마트한 기능이 탑재된 내 손 안의 기기를 전제로 하기에 일반적인 동영상 시청과 다른 다양하고 의미있는 인터랙티브 기법(턴스타일)이 가능하다는 점과, 작은 하드웨어 기기를 중심으로 하기에 이동하면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대목입니다.
다만 화면이 작다는 점은 이동성과 휴대성을 살릴 수 있으나 대화면에 익숙한 이용자들을 완전히 품어낼 수 없다는 단점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정체성은 숏폼 콘텐츠라는 점. 방금 언급한 장점인 스마트한 인터랙티브 기능과 이동성 및 휴대성을 지향하는 상황에서 숏폼 콘텐츠 방식은 스낵컬처 로드맵을 펼치기에 제격입니다. 다만 이 방식은 퀴비만의 강점이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퀴비는 양질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모바일에 특화된 방식으로 풀어내 숏폼 콘텐츠 전략을 구사하지만, 이미 이와 비슷한 전략을 추구하는 곳은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등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쉬운 부분이 보인다
퀴비의 정체성을 분절하면 퀴비의 약점도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퀴비는 태생부터 작은 모바일 기기를 전제로 숏폼 콘텐츠를 제작하며 이와 관련된 다양한 강점을 어필할 기회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해당 전략은 시청자의 취향에 있어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대화면을 여전히 고수하는 고객층에 대한 이야기와는 별개로, 모바일 특화 전략을 구사한다면서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기반에 공유 기능이 존재하지 않고 필요이상의 시청행태를 강요하는 장면은 뼈 아픈 패착이기 때문입니다.
그 연장선에서 틱톡의 사례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틱톡은 퀴비와 동일한 숏폼 콘텐츠이지만 그 방식은 180도 다릅니다. 틱톡은 일반인이 콘텐츠를 제작하는 숏폼 양방향 플랫폼이지만 퀴비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는 숏폼 단방향 플랫폼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틱톡은 왜 성공하고 퀴비는 왜 실패했는가. 숏폼 콘텐츠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운명을 갈랐다는 말이 나옵니다. 우선 일상적인 모바일 플랫폼을 바탕으로 활동하는 숏폼 콘텐츠의 경우 이동성과 휴대성을 보장하며 스낵컬처 방식이 제격입니다만, 여기에서 성공할 수 있는 콘텐츠는 오리지널 콘텐츠 방식이 아닌 말 그대로 '날 것의 영상'이 더 어울립니다.
같은 숏폼 콘텐츠라고 해도 틱톡은 별 생각없이 즐길 수 있는 상황극이나 더빙 일색이며, 이는 스낵컬쳐에 제격이지만 퀴비는 달랐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기예르모 델 토로 등 할리우드 유명 감독들이 참여한 스토리가 있는 모바일 동영상 숏폼 콘텐츠라니.
사람들은 이동하면서 즐기는 숏폼 콘텐츠의 경우 큰 집중없이 간단히 즐기는 스낵을 원할 뿐입니다. 이 대목에서 퀴비는 시청자의 집중을 전제로 하는 거장의 콘텐츠를 애시당초 완벽한 몰입환경이 불가능한 모바일 환경에서 제공하는 순간 스텝이 꼬이고 맙니다. 콘텐츠의 특징이 모바일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상태에서 숏폼 콘텐츠를 제공하며 턴스타일을 접목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전략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이동하며 귀여운 아기의 신나고 진귀한 댄스영상을 보고 싶은데, 퀴비는 넷플릭스와 같은 장편 콘텐츠를 모바일 기기에서 집중해 시청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넷플릭스에 등장할 법한 장편영화를 10분으로 압축한 콘텐츠를 요상한 인터페이스에 묶어 '몰입'하라고 강요했습니다. 더 적나라한 예시를 든다면, 사람들은 이동하며 잠시 즐기는 댄스영상을 보고 싶은데 퀴비는 머리아픈 60분 분량의 자연 다큐멘터리를 10분으로 줄이고는 이런저런 인터랙티브 기술을 도입해 '소소'하게 '몰입'해라고 등 떠미는 격입니다.
특히 이러한 특성에 기인해 숏폼 콘텐츠의 경우 한국의 '짤방' 문화처럼 공유를 통한 함께 즐기기의 성격도 강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콘텐츠 저작권을 강화한 퀴비는 처음부터 틱톡,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약간 긴 콘텐츠 측면에서는? 유튜브의 상대가 되기에 어렵습니다. 심지어 유튜브와는 광고형 OTT라는 공통점까지 있어 더욱 어렵습니다.
카카오TV 매력적인 플랫폼 퀴비는 모바일을 전제로 했으나 단점이 너무 많았고, 숏폼 콘텐츠 전략을 가동했으나 그 방법론은 시장에 안착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몇 가지 소소한 단점이 있으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숏폼 콘텐츠 전략을 모바일과 연결하며 이 과정에서 특별한 한 방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카카오TV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요즘 오윤환 카카오TV 오리지널 스튜디오 제작총괄과 신종수 카카오M디지털콘텐츠사업본부장이 몇몇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불러주지 않아 조금 슬프지만...(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아서)이 이야기는 각설하고. 우선 카카오TV의 정체성을 엿보겠습니다. 왜 엿보냐면 인터뷰 안시켜줘서...여..여튼.
카카오TV는 지난 9월 1일 정식 런칭했습니다. 오리지널 콘텐츠를 구사하기에 넷플릭스, 퀴비와 비슷하고 숏폼 콘텐츠를 추구하기에 퀴비와 틱톡을 닮았습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카카오TV가 완전한 모바일 전략을 추구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카카오M 신종수 디지털콘텐츠사업본부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카카오M이 기획, 제작하는 카카오TV 오리지널 콘텐츠의 핵심 키워드는 모바일 오리엔티드(Mobile Oriented)”라며 모바일로도 볼 수 있는 콘텐츠가 아닌, 모바일로 보기 때문에 더욱 재미있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이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이건 퀴비와 매우 닮았습니다. 다만 퀴비처럼 턴스타일같은 요상한 인터랙티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일단은 모바일 기기로 즐길 수 있는 숏폼 콘텐츠라는 점에 더 주목하는 것 같습니다.
훌륭한 전략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숏폼 콘텐츠는 고정관념일 수 있겠지만, 틱톡처럼 말 그대로 생각없이 즐기는..소위 말하는 '보멍(보면서 멍 때리는) 영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청자의 생각 스펙트럼이 닿을 수 있는 최대치는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라이브 커머스가 최대치라고도 생각합니다. 오라클과 함께 월마트가 기를 쓰고 틱톡을 품으려는 것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이런 관점에서 카카오TV가 이효리와 웹툰 연애혁명 등등을 통해, 혹은 가짜사나이2와 같은 일부 흥미위주 콘텐츠를 수급한다면 당장의 효과는 있겠으나 장기적으로는 숏폼 콘텐츠의 라이브 커머스 진화에는 비할 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예전에 72초TV라는 웹드라마가 인기를 끌었을 당시, 그 인기가 매우 장기적으로 유지되지 않는 것을 봤기 때문입니다. 숏폼 콘텐츠의 성격을 따졌을 때. 극 중심의 콘텐츠는 물론 평타는 치지만 대세가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카카오TV의 스토리 텔링이 살아있는 오리지널 콘텐츠에 여러가지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모바일에 특화된 전략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퀴비는 요상한 시도(공포영화는 밤에 시청이 가능하거나 턴스타일을 지원하는 등)를 통해 모바일 시청 집중도를 높이려 했다 실패했는데, 카카오TV의 모바일 오리엔티드는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재미있는 콘텐츠를 카카오톡 기반 카카오TV에 올려두는 것이 모바일 오리엔티드는 아닐텐데.
물론 카카오TV는 그 답을 천천히 보여줄겁니다. 그리고 카카오톡이라는 강력한 마법의 모바일 메신저가 있으니 공유적 측면에서도 답을 찾아 폭발성을 보여줄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만 현 상황에서 카카오TV는 넷플릭스 일부에, 퀴비의 모바일 퍼스트 전략에, 틱톡의 숏폼 콘텐츠를 아우르면서 아직은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봅니다.
첨언하자면 넷플릭스와 퀴비, 틱톡의 그 어딘가에 있다고 할까. 그래도 요즘 콘텐츠가 잘 나가니까 어려운 길을 택한 카카오도 뭔가 계획이 있지 않을까. 뭐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