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15일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서울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유튜브 키즈 콘텐츠, 이제 성평등 관점을 고민할 때’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키즈 콘텐츠 업계의 성평등 부재 현상을 지적한 자리였는데, 당시 현장에 있던 저는 유튜버 생태계를 취재하는 입장에서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던 잘못이 실체적인 사례로 끄집어내진것을 보며 약간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실제로 당시 현장에서는 성역할 고정관념 조장을 보여주는 사례로 콘텐츠에 출연한 여아가 ‘돌봄노동’ 관련 놀이를 즐기지만 남아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지적됐고, 각 키즈 콘텐츠 채널의 경우 여아 시청자가 많으면 핑크, 남아 시청자가 많으면 블루가 많다는 설명도 나왔습니다. <헤이지니>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지니가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체험을 하며 “지니가 늙어보여요”라는 말을 하는데, 언론연대는 이를 ‘늙은 것=슬픈 것’이라는 전제를 시사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사실 이러한 성평등 부재 의식은 우리의 삶에 알게 모르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또 레거시 플랫폼에서도 간혹 이러한 문제가 불거지기도 하죠. 그러나 유튜브의 경우 일반인이 콘텐츠를 제작한다는 전제로 시작하다보니 이런 사례가 더욱 여과없이 노출되는 경향이 있으며, 그런 유튜브가 인기를 끌다보니 이러한 사례가 해프닝이 아닌 '사건'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우연히 다른 업계 취재원을 만났는데 어쩌다 보니 당시의 이야기를 하게 됐습니다. 당시의 문답을 기억나는대로 풀어볼게요.
나 : "처음에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들으니 이거 조금 심각하다는 느낌이 들던데요" 그 : "최기자, 요즘은 그거 당연한거야. 세상이 다 그래" 나 : "무슨 말이에요?" 그 : "최기자 만화 좋아해? 옛날에는 말이야 만화가가 되려면 문하생으로 들어가 고생하고 길들여지며 실력을 쌓은 후 세상에 나왔어. 그런데 지금은 말이야. 웹툰 시대가 되면서 만화가가 되기위한 진입장벽이 엄청나게 낮아졌다고. 굳이 문하생으로 들어가 고생할 이유가 없어요. 네** 웹툰 봐바. 일진물 대충 흥미롭게 그린 설익은 작품들이 대박을 치고 있어. 솔직히 이게 프로의 실력인가 싶은 작품도 많은데 완전 대박치는게 한두개가 아니야. 이게 무슨 뜻이겠어? 대중은 거장의 밑에서 고생하며 피나는 노력을 감수하는 작가를 원하는게 아니야. 어설프고 말초적이고 말도 않되는 작품이라도 재밌으면 장땡이라고. 그런 세상이야. 유튜브도 마찬가지지. 막대한 자금력과 기획력으로 지킬거 다 지키면서 만드는 방송보다 이제는 말초적이고 별 고민도 없는 유튜브 영상이 더 인기가 많잖아? 그런 사람들이 성역할 뭐 그런거에 신경이나 쓰겠어? 어쩌면 당연한거야. 세상이 그렇게 변해가는 거라고" 나 :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게 좋은걸까요? 나쁜걸까요?" 그 : "시스템에 갇혀 만들어진 작품만 보는건 재미없어. 그런 측면에서 웹툰이나 유튜브처럼 기존 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콘텐츠들이, 옛날이라면 절대 세상에 나오기 어려웠던 말초적인 콘텐츠들이 범람하는 것도 재미있는 현상이지. 다만 아쉽기는 해. 세상이 격이 떨어진다고 할까...아마 유튜브 성역할 논란같은 거. 계속 나올거야. 이거 안끝나"
가짜사나이 "인성 문제있어? "개인주의야" 등등 숱한 유행어를 남겼던 유튜브 피지컬 갤러리 가짜사나이가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1기에서 등장한 이근 대위를 비롯해 유튜버 김계란과 로건, 정은주 등 많은 등장인물들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으나 지금은 콘텐츠 기획 자체가 표류하고 있습니다.
지난 1일에는 2기가 시작돼 열흘 만에 4화까지의 누적 조회수 3000만회를 넘겼던, 조만간 1억건의 조회수를 달려가던 가짜사나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처음 논란은 가학성에서 시작됐습니다. 교관들의 강압적인 훈련장면이 시청자들의 반감을 샀던거죠.
본격적인 논란은 이근 대위의 '빚투' 사건과 에이전트H의 학교폭력 의혹이 불거지며 시작됐습니다. 다만 여기까지는 일정정도 '방어'가 되는 순간이었는데, 이근 대위의 성추행 의혹과 폭력 의혹이 터지며 사태는 종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나아가 몸캠 논란 및 이를 여과없이 폭로한 유튜버 정배우, 또 가세연의 연예부장이 논란에 기름을 부으며 상황은 아사리판이 됐습니다. 디씨에서는 가짜뉴스를 만들다 적발되지 않나. 폭로전이 벌어지며 가족들이 고통을 받지 않나. *판입니다. 결국 가짜사나이는 모든 콘텐츠를 내리고 말았습니다.
다만 정의구현(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지지합니다?)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최근 논란에 대한 가치판단은 굳이 여기서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 논란이 유튜버 생태계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점에만 주목해 보겠습니다.
사실 이근 대위나 김계란 등 유튜버들은 전문 방송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은 잘 기획된 유튜브 콘텐츠 기획의 아래에 소구되며 전문 방송인과 같은 지위를 확보했던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이근 대위가 가짜사나이의 인기에 힘입어 공중파 방송까지 출연한 사례는 1인 크리에이터의 전형적인 성공 방정식을 보여줍니다. 1인 크리에이터 시장에서 MCN의 지원을 받아 크리에이터의 매력을 증폭시켜 다양한 미디어 파이프 라인에 진출하는 것은, 의미있고 성공적인 전략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핵심 키워드는, 이근 대위 등 유튜버들이 전문 방송인이 아니기 때문에 '미처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대목은 매우 중요한 지점입니다. 방송인이 되기 전 자기관리를 통한 체계적인 스펙을 쌓거나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며, 이는 곧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K팝 스타가 되기위해 소속사의 문을 두드린 많은 청춘들이 왜 외부와의 소통이 단절된 기숙사에서 합숙을 할까요. 왜 많은 청춘들이 연예계에 진출하기 전 모범생 이미지를 쌓고 굳이 전교회장을 하려고 할까요. 그들은 만들어지기 때문이며, 만들어져야 이후 인기를 끌었을때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넷플릭스에서 방영중인 '블랙핑크:세상을 밝혀라'를 시청하면서 내내 불편함을 느끼면서, 이내 고개를 끄덕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맞습니다. 가짜사나이의 최대 리스크는, 인기를 끈 유튜버들이 만들어지지 않고, 공인이 되려는 준비가 없었으며, 그저 우리와 함께 살아오던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이건 유튜버 생태계를 앞으로 지속적으로 따라다닐 유령입니다. 특히 예능 프로그램 업계가 식상한 꽁트에서 리얼버라이어티로 넘어온 후 지금은 아예 연예인을 일반인으로 변신시켜 관음증에 가까운 관찰을 통해 기존 연예인들의 세상을 더욱 벗어나려고 할수록, 그리고 시청자들이 TV에 나오는 평범한 이들의 일상을 보며 알수없는 파격적인 흥미를 느끼면 느낄수록 더 심해질겁니다.
평범했던 유튜버들은, 공인이 될 준비가 부족했던 이들은 인기를 끌 것이며 레거시의 주목도 받을 일이 많아질 겁니다. 그 만큼 논란도 많아질겁니다. 옛날이었으면 절대 방송에 나오지 않았을 이들이 홍수처럼 밀려오지만 그들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고. 성평등 논란에는 신경도 쓰지 못하고, 가학적인 콘텐츠를 만들거나 과거 논란에 발목이 잡히는 경우도 많아질 겁니다. "계속 나올거야. 안끝나"
답은? 유튜버 생태계는 고민에 빠져있습니다. 돈을 어떻게 벌 것인가. 브랜디드 콘텐츠에 집중하자니 한계가 너무 뚜렷하고, 콘텐츠의 퀄리티를 살려야 하지만 CG를 넣는쪽으로 빠지며 '우리가 지상파만큼 잘해요'라는 별 의미없는 자만에 빠지는 주화입마에 걸립니다. 그렇다고 기발한 기획으로 콘텐츠 퀄리티를 하자니 그건 미디어의 신이 와도 어렵고, 가학적으로 흐르는 주화입마가 또 기다리고 있는 형국입니다. 누군가는 PC방서 담배 300개를 피웠다죠.
라이브 커머스가 뜨면서 커머스와의 결합이 눈길을 끌지만 이는 중국 왕홍과 같은 인플루언서 중심의 무대가 아닙니다. 라이브 커머스에서 인플루언서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상품과 이를 고객에게 제공하는 플랫폼이거든요.
그렇다면 정면돌파인데. MCN의 도움을 받아 인플루언서의 매력을 극대화시키는 겁니다. 그런데 이건 가짜사나이의 슬픈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또 매우 높습니다. 물론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면 되는거 아니냐. 안타깝게도 그 시장을 지탱할 돈이 벌리지 않습니다. 유명 MCN 업체 재무재표를 까보고 유튜버들 뒷광고 논란이 나온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심지어 인플루언서 유튜버들은 시청자들과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 친밀함을 지키면서 돈을 번다? 글쎄요?
외통수입니다. 특히 요즘처럼 유튜버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시장이 아사리판으로 흐르면 외통수는 더욱 꽉 막힙니다. 그 연장선에서 또 우후죽순 유튜버들은 계속 나타나고 논란을 일으키며 시장 전체가 매도당하고 있습니다. 이 복잡한 고차 방정식을 풀 그 날은 언제 올까요? 그래서 답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새로운 바람이 불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