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진홍 Feb 15. 2021

다국적 스타트업 쿠팡 상장, 국뽕은 필요없다

애매하고 모호하며 촌스러운 이야기

이커머스 강자 쿠팡이 12일(현지시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클래스A 보통주(이하 보통주) 상장을 위해 S-1 양식에 따라 신고서를 제출했습니다. 'CPNG' 종목코드(Trading Symbol)로 정했으며 별다른 이슈가 없다면 3월 중순 뉴욕증시 데뷔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쿠팡의 상장 소식에 국내 스타트업 업계는 환호하고 있습니다. 최근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와 기업결합을 위한 9부능선을 넘고, 아자르의 하이퍼커넥트가 미국의 매치그룹에 인수되기로 결정되는 등 조단위 스타트업 엑시트 전략들이 속속 등장한 가운데 쿠팡이 또 하나의 '신화'를 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정부도 쿠팡의 성과에 환호하고 있습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4일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 유니콘 기업의 쾌거"라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 혁신의 중요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정부는 벤처·창업 생태계 강화 등을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쿠팡의 성과를 두고 일각에서는 업계의 성공을 축하하면서도 냉정한 상황판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화려한 축제의 퍼레이드가 이어지는 가운데 감히 누가 초를 치는 망령된 언사를 내뱉는다는 말입니까. 그 불경하고 고리타분한 내막을 따져보겠습니다.

차등의결권

김범석 쿠팡 창업주(현 의장)는 지난 2011년 8월 창립 1주년 간담회에서 "나스닥에 직접 상장해 세계로 도약하겠다"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 이후 쿠팡은 막대한 투자를 반복하며 인프라를 확충했으며, 상장을 위해 실탄을 확보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시장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엄청난 자금을 유치해 인프라 확충에 쏟아붓는 치킨게임을 반복하면서 줄타기에 나서는 한편, 이러한 아슬아슬함을 한번에 해소할 수 있는 상장이라는 마법의 가루를 찾아 떠난 여정입니다. 그리고 쿠팡은 비록 2년만에 나스닥은 아니지만 10년만에 뉴욕증시 입성을 앞두게 됐습니다. 


쿠팡의 뉴욕증시 상장 자체도 용감한 시도로 보입니다. 


나스닥과 비교해 상장요건도 까다롭고 거래소가 공포의 상장폐지권한까지 가진 뉴욕증시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몸값이 50억달러 수준으로 수직상승한 상태에서 재무지표에 대한 자신감이 커졌고 세계 최대 자본시장인 뉴욕증시에서 대규모 자금을 빠르게 확충하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나아가 코스닥은 4년 연속 영업손실이 벌어지면 관리종목에 지정되지만 뉴욕증시는 이를 크게 문제삼지 않습니다. 막대한 적자를 감수하고 투자를 단행하는 쿠팡의 특성을 고려하면 뉴욕증시는 당연한 선택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립니다.


차등의결권을 운용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평가도 나옵니다.


쿠팡 주식은 클래스A 보통주와 클래스B 보통주로 구성되며 여기서 클래스B는 클래스A에 비해 주당 29배의 의결권이 있는 슈퍼주식입니다. 이를 김 의장이 보유한다는 설명입니다. 


왜 이런 번거러운 짓을 할까요? 스타트업은 투자를 유치하면서 조금씩 창업주의 지분이 희석되기 마련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창업주들이 본인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슈퍼주식 제도를 적극 이용합니다. 안정적인 경영을 위해서죠. 


결국 쿠팡도 투자자들의 동의를 받아 추후 상장이 된 후에도 김 의장 중심의 경영을 위해 슈퍼주식 제도를 활용하기로 결정했고, 이는 쿠팡이 뉴욕증시로 가게 된 결정적 이유 중 하나로 보입니다. 한국에서는 차등의결권 제도가 불법이거든요.


물론 차등의결권 제도가 무조건 '선'은 아닙니다. 차등의결권 이외에도 경영권 방어수단이 존재하는데다 이 제도가 오너의 무조건적인 횡포에 고삐를 풀어줄 수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다만 쿠팡이 차등의결권을 의식해 뉴욕증시로 떠났다는 사실은 어느정도 신빙성이 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한국증시 입장에서는 대어를 놓친 셈입니다. 다소 씁쓸합니다.


미국과 일본의 축제

쿠팡의 뉴욕증시 상장으로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는 대박을 쳤습니다. 쿠팡의 상장이 알리바바의 2014년 뉴욕증시 상장 규모를 압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소프트뱅크 산하 비전펀드는 2015년과 2018년 두차례에 걸쳐 27억달러를 쿠팡에 투자해 지분 38%를 확보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일각의 예측대로 쿠팡의 기업가치가 500억달러에 달할 경우 소프트뱅크가 보유한 쿠팡 지분 가치는 190억달러가 됩니다. 잭팟입니다. 쿠팡의 상장으로 미소를 머금은 곳은, 일본 소프트뱅크가 이끄는 비전펀드라는 뜻입니다.


물론 이러한 상황판단은 상당히 촌스러운 일입니다. 


따지고 보면 국내 유니콘으로 통하는 스타트업들 중 국내 VC(벤처캐피탈)에 제대로 된 시드투자를 받은 사례가 없습니다. 국내 유망 스타트업, 유니콘들은 대부분 해외 VC로부터 투자를 받으니 소프트뱅크가 쿠팡에 투자해 막대한 돈을 벌어 상장에 대한 수혜를 흠뻑 가져간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구석이며 잊고 넘어가야 합니다. 


다만 쿠팡의 상장이 한국 법인인 쿠팡주식회사의 지분 100%를 가진 미국 법인 쿠팡LLC가 쿠팡INC로 전환한 뒤 상장한다는 점은 아무래도 씁쓸한 구석이 있습니다. 


미국 국적을 가진 김범석 의장이 한국에서 비즈니스하는 한국 쿠팡을 지배하는 미국 쿠팡을 상장한다는 점.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만 과연 쿠팡의 상장을 두고 '한국에서 이렇게 환호할 일인가?'라는 생각은 들게 만듭니다.


한국계 미국인이 만든 미국 회사가 일본 자금과 중동의 자금을 수혈받아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수행하다가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됩니다. 


업계의 중요한 이정표를 세우는 일이라 관계자들은 촉각을 곤두세울 수 있는 일이지만, 과연 그 과정에 있어 정부가 '한국 유니콘의 쾌거'라고 엄지를 들어올릴 필요가 있었을까.


국경없는 세계

최근 코로나19로 이커머스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네이버와 쿠팡의 양대산맥이 버티고 섰고, 그 너머에 아마존과 손잡은 11번가 등 쟁쟁한 플레이어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쿠팡이라는 기업은 테크기업에 충실한 전략을 바탕으로 의미있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업계의 이정표를 세웠고, 한국 기반 스타트업 비즈니스에 있어 상당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한다는 점만 빼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미국과 중동, 일본을 넘나드는 글로벌 스펙트럼을 자랑하지만 글로벌 시대를 맞아 국경이 없는 ICT 초연결 시대에서 이 무슨 고리타분한 소리란 말입니까. 


다만 미국과 중동, 일본을 넘나드는 다국적 스타트업의 성과에 한국 스타트업 업계가 필요이상 환호하는 한편 홍남기 부총리까지 나서 '한국 유니콘의 쾌거'라 부르는 것은 약간 이질적입니다. 한국 이커머스 시장의 가능성을 재조명하면서 다양한 가능성 타진을 위한 스포트라이트는 필요하겠지만, 우리가 쿠팡 상장을 통해 '국뽕'에 빠질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조금, 냉정해집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