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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진홍 Jul 31. 2021

메타버스와 무릉도원

도피처, 그리고 이상향인가

제 고향인 강원도 동해시에는 무릉계곡이 있습니다. 어릴때부터 워낙 자주 다녀서 눈 감고도 다닌다며 큰소리치다 용추폭포의 원혼이 될 뻔한, 저에게는 아주 낭만적인 추억이 가득한 아름다운 계곡입니다.


어릴때는 몰랐지만 무릉계곡은 고려시대에 이승휴가 머물며 '제왕운기'를 집필하였고 신선들이 노다닐 정도로 아름다워 무릉도원으로 불리기도 한답니다. 코로나가 끝나면 많이들 오셔서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어주십사라는 당부의 말씀과 함께, 갑자기 메타버스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이상해...
메타버스 전성시대라고 합니다. 엔비디아에서 가죽자킷 수집으로 유명한 젠슨 황 아재가 확 띄운 후 코로나19로 언택트 트렌드가 강해지자 시대의 대세로 부상할 기세를 보이는 아이템이죠. 페이스북이 오큘러스를 인수한 후 호라이즌을 가동하더니 이제는 애플 팀쿡의 저주에서 벗어나 나만의 세상을 구상하겠다며 메타버스를 전면에 내걸기도 했죠. 그러고보면 페이스북은 페이스북 라이트, 프로젝트 노비 등등을 통해 어떻게든 자체 플랫폼을 만들어 안드로이드와 더불어 이제는 지긋지긋한 iOS에서 벗어나고 싶어 아주 안달이 난 것 같습니다...


각설하고. 메타버스가 뜬다고 하는데. 이게 좀 개인적으로는 이상합니다. 메타버스가 과연 뭐냐는 것이죠...


메타버스가 뭐냐?고 물으면 혹자는 제페토 로블록스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조금 무식한 말일수 있으나 제페토나 로블록스는 제 눈에는 자유도가 매우 높은 게임 플랫폼으로만 보입니다. 그럼 누군가는 레디 플레이어원 영화를 보라고 하는데 글쎄요. 제 눈에는 유저들을 선동(?)해 가상현실 오아시스를 장악하고 다이아몬드 수저로 등극, 어여쁜 여친과 함께 '오프라인' 고급 사무실에서 하하하 웃는 주인공의 표정만 떠오릅니다. 'VR 등에 너무 빠지지 말아라. 현실이 아름답고 중요하다'라는 결론인 영화인 것 같은데 글쎄요...이게 메타버스 영화란 말인가?


관련 전문가, 혹은 기업 대표님들을 만나면 물어보기도 합니다. 그럼 둘로 갈려요. "원래 있던건데 5G 등 시대가 발전하고 온택트 트렌드로 중요해진 기술이자 장사하려고 파는 레토릭" "새로운 미래 비전"

심지어 메타버스의 지향점도 다릅니다. "시공간을 초월한 상호작용의 최종 목적지" "새로운 공간에서의 자유로움" "현실과 연결된 온오프라인의 융합된 자아" "아는척 할 수 있는 돈 되는 포인트" 어려워.....이상해....

도피처, 이상향
사견입니다.

메타버스는 원래 있던 존재가 맞는거 같습니다. 마약조직과 싸우는 한국계 피자배달부의 분투를 그린 소설을 보면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온오프라인의 융합이 메타버스의 원형이 아닐까. 다만 5G 등 네트워크 및 AI와 클라우드 기술로 무장하고 아바타라는 또 다른 나를 통해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연결고리를 가진 상태에서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신기한 모험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 그러니까 메타버스는 완전한 신세계로의 이동이 아니라 현실의 내가 새로운 나(아바타)를 만드는 순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모두 포함하고, 현실에서 하기 어려운 재미난 일들을 마음껏 하며 그 안에서 나와 비슷한 초월적 존재인 다른 이들과 호흡하는 것이 아닐까....일종의 유흥이 아닐까.


전 무릉계곡 아니 무릉도원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도교가 떠올라요.


중국 전한시대. 워낙 팍팍해 살기 어려운 시기에는 종교적 구원이 시대를 휩쓸고 사람들을 매료시키죠. 국룰입니다. 이때 도교가 유행하게 됩니다. 세상이 어려우니 새로운 세상이 있을거야. 열심히 수련하면 좋은 곳, 무릉도원에 갈 수 있어. 북유럽의 발할라나 기독교의 천국과 비슷하지요.


실제로 도교의 신선은 처음에는 '선골'이어야만 될 수 있었습니다. 봉신연의에 보면 그렇게 적혀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누구나 신선이 될 수 있다는 개념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코로나와 여러가지 양극화에 지친 힘든 사람들을 무릉도원. 즉 신선들이 사는 강원도 동해시로 유혹하는 것이지요.


메타버스를 이해하고 제대로 활용하려면, 메타버스와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이러한 이상향으로의 도피가 극적인 기술의 발전으로 전환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선골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코딩을 하지 못해도) 수련만 하면(플랫폼에 가입하면) 신선이 되어 무릉도원으로 간다(메타버스에 입장할 수 있다)


메타버스를 거창한 개념으로 이해하지 말고. 우리 인류가 언제나 어려울 때 겪었던 이상향으로의 도피를 메타버스 열풍에 덧대어 해석하는 것은 어떨까요. 


신선은 무릉도원에 있다가 지상의 정치에도 개입하면서 봉신연의를 그려냅니다. 메타버스에 가입한 난 언제든 오프라인에 돌아와 내 친구에게 자랑을 하죠. 


무릉도원에서는 도끼자루가 바둑을 두고 놀 수 있습니다. 메타버스에서는 내가 꿈꾸던 시공간을 초월한 상호작용과 파격적인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무릉도원에서 신선들과 신나게 내기바둑을 두며 선녀들과 화끈..아닙니다. 메타버스에서는 나와 같은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세상에 들어온 다양한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습니다.

헛소리를 마치며
물론 메타버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고 이해가 있습니다. 저는 ICT 업계를 취재하며 진지하게 메타버스 시대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그 가능성에 당당히 한 표를 던집니다.


다만 메타버스는 생각보다 새로운 개념이 아니고(사실 이제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기보다 이제는 새로운 기술로 이미 존재하는 패러다임의 재해석만 일어날 것으로 믿습니다) 우리가 항상 어렵고 힘들때 찾았던 이상향으로의 도피와 유희가 메타버스의 본질이 아닐까 합니다. 기술은 메타버스로 우리를 매끄럽게 끌어들이는 매개이지요.


그런 의미로 제페토나, 로블록스는 현 상황에서 메타버스 플랫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D 디스플레이에 몰입의 사운드가 없이 그저 광활한 세상만 정교하게 체험하는 것은, 학창시절에 주사위를 굴리며 판타지 등장 인물들의 역할게임을 한 것보다도 메타버스의 개념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한 도피. 상상력을 채울 수 있는 몰입과 유희가 가능해야 합니다. 여기서 메타버스와 관련된 논의가 시작되고, 이해가 되어야 제대로 된 '준비'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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