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구두를 신었을까"
기자생활을 하면서 선배에게 참 많이 혼나고, 지적받았던 부분이 바로 '디테일'입니다. 촬영을 업으로 삼았을 무렵에는 무심코 앵글을 위에서 아래로만 잡아(키가 조금 큰 편이라) 피사체를 깔아 뭉개면 "섬세하지 못한 놈"이라는 지적을 받았고, 펜을 굴리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조언을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선배는 제가 너무 디테일을 놓치니까 "눈이라도 가늘게 뜨고 다녀라"는 장난같은 조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대학 시절 나름 훈남 소리 듣다가 지금 눈이 작은 쫌생이가 된 것은 그 선배 때문입니다.(죄송합니다)
사실 아직도 모르는 것 투성이인 형편없는 기자지만 지금은 어렴풋이 선배의 조언이 이해되기도 합니다. 인공지능이 기사를 쓰는 시대에 기자가 살아남으려면, 이 사회에서 쓸모를 인정받으려면 기자는 작은 것 하나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파고들어야 한다는 것을요. 그리고 다양한 가능성을 서로 연결해 누구도 보지 못했던 부분을 통찰력처럼 끌어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 그럴 수 없지만, 아마 그런 날이 오겠죠?
서론이 길었습니다. 결국 디테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선'을 넘지는 말아야 겠지만, 디테일에 집중해 더듬을 가치가 있는 여지를 하나로 묶어보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오늘 하고싶은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제가 하는 이야기는 진실과 거리가 멀 수 있지만,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여지 정도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에이, 솔직히 말하면 그냥 음모론이에요.
이재용 부회장과 구두(신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구두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16일 업계에 돌았습니다. 지난 10일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한 이재용 부회장이 센터에 입주해 있는 브러셔라는 업체에 들러 수제화를 구입하고, 그 가격을 나중에 치르면서 갤럭시S7을 선물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구두의 가격은 18만9000원이었다고 하네요.
이 이야기를 듣고 사실인지 삼성그룹에 문의했습니다. 삼성그룹은 "확인할 수 없다"는 말을 하더군요. 좋은 현안이지만 코멘트를 아끼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브러셔에 직접 연락을 해봤어요. 갑작스러운 연락이었지만 이경민 브러셔 대표는 친절하게 "알려진 모든 것이 사실이며 갤럭시S7 선물도 받았다"고 확인해줬습니다.
제 짧은 확인취재는 여기서 끝났습니다. 곰곰히 생각을 했어요. 아무리 삼성을 출입하는 기자지만 엄청난 이슈도 아닌데 그냥 묻어두고 갈까? 아니면 그냥 간단하게 단신으로 처리할까? 그런데 '신발'이라는 키워드와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의 존재감. 그리고 이 부회장의 이미지 전략 등 재미있는 아이템 연결고리가 떠올랐습니다. 기사는 무리라도, 목숨걸고 덤벼들 취재는 아니지만 이 사소한 디테일에서 뭔가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먼저 전제되어야 할 점은,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10일 브러셔 매장을 찾았을 당시 센터에는 기자들이 꽤 있었습니다. 공식적인 자리는 아니었지만 기자들은 직업 특성상 이재용 부회장의 동선을 주시하고 있었을 것이며, 신발 구입 소식은 소소하게나마 알려질 여지가 '이미'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재용 부회장은 평범한 우리처럼 신발을 신어보고 구매의사를 밝혔습니다.
이를 이미지 마케팅으로 생각하면 너무 나간 것일까요? 지난해 야구경기를 관람하던 이재용 부회장이 연상됩니다. 한 청년이 이재용 부회장을 발견하고 당당히 사인을 요청하자 이재용 부회장은 경호원을 물리치고 웃으며 받아줬죠. 이재용 부회장의 소탈함은 대중에게 익히 알려진 사실이죠. 이번에도 비슷한 패턴입니다. 물론 이는 이재용 부회장이 정말 소탈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신발이라는 아이템도 흥미를 끕니다. 솔티트벤처라는 회사가 있어요. 삼성전자 사내벤처에서 출발해 최근 MWC 2016에 등장하기도 했는데, 센터의 지원을 받기도 합니다.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은 함께 센터를 방문해(이재용 부회장은 브러셔 방문 후) 솔티드벤처의 신제품을 함께 둘러보았습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삼성전자 사내벤처인 솔티드벤처를 보며 이재용 부회장에게 "자식 장가 보낸 것 같지 않느냐"라는 말을 건내기도 했습니다.
사실 연결고리가 약하기는 하지만, 지난 10일 이재용 부회장은 신발과 두 번 엮이네요. 상상을 보태자면 설마 고도의 마케팅?? 또 하나. 센터는 말 그대로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곳이죠. 삼성이 그리는 창조경제의 핵심 중 하나인 벤처기업 부흥의 밑그림?
마지막으로 갤럭시S7을 선물로 준 대목입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 갤럭시S6 런칭 당시에도 기자들을 만나면 갑자기 "기다려 보라"며 대뜸 스마트폰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브러셔에 비슷한 선물을 한거에요. 아니 요건. 제품을 알리는 적극적인 경영진의 자세?
헛소리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이 글은 제가 몸 담고 있는 이코노믹리뷰의 IT여담 코너에 실을 예정이었습니다. IT여담은 소소한 취재 뒷 이야기를 편하게 풀어가는 곳이거든요. 그런데 쓰면 쓸수록 이건 아무리 IT여담이라도 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브런치에 조심스럽게 남깁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디테일에 집중하면서 연결고리를 찾아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은 계속 할겁니다. 다만 이 현안은 말 그대로 상상이고, 그냥 이런식으로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 미친놈이 있다는 것도 있는 그냥 뭐 그렇다는....유희의 일종으로 봐주세요.
다만 제가 하고싶은 말은 단 하나. 디테일에 집중하고 너무 상상의 나라로만 도망가지 않는다면 뭔가 보일 수 있으며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런 생각도 가능하다'는 것. 딱 요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