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진홍 Apr 19. 2016

"대표님, 진짜 긍정적인 마인드는요..."

혁신을 보여주는 것과 증명하는 것

1998년 월드컵 당시 한국 대표팀 감독은 차붐, 네. 맞습니다. 한국축구가 배출한 불세출의 영웅인 차범근 현 스포츠 해설가였습니다. 당시 국민들은 차붐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이 세계의 강호들과 당당하게 맞서 16강에 오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요. 하지만 조별예선에서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네덜란드에게 5:0 대패를 당하고 맙니다. 국민은 분노했고, 차범근 감독은 월드컵이 끝나기도 전 전격적으로 경질되고 말았습니다. 

출처=위키미디어

성공에 대한 자신감
오늘은 다소 미묘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쓸까 말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 뭔가 정리도 할겸, 아니 사실은 제 복잡한 마음을 찬찬히 꺼내어 햇볕에 말려 볼겸 고심 끝에 해경을 해체...가 아니라 고심 끝에 몇 자 적어보려 합니다.


지난 16일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의미심장한 글을 적었습니다. 아래와 같습니다. 


[사업은 언제나 성공보다는 실패할 경우가 많다.때문에 성공보다는 실패를 예측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맞을 확률이 높다.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생각보다는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이 더 똑똑해 보이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런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소위 전문가로 불리운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늘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 중에 세상을 바꾼 사람이 있던가. 그들은 의견만 제시할 뿐 세상을 바꾸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성공한 사업은 그 시대의 전문가(?)들이 비관적으로 바라봤던 곳에서 이루어졌다.]


그냥 얼핏봐도 김봉진 대표가 하고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실적 이야기를 해야합니다. 지난 13일 우아한형제들은 감사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영업손실은 248억8600만 원으로 전년도 149억8200만 원에 비해 무려 66%가 늘어났다고 밝혔습니다. 손손실 규모도 248억9500만 원을 기록해 전년도 158억9600만 원과 비교하면 57%가 늘어났어요.


이러한 소식이 알려지자 언론에서는 우아한형제들을 우려하는 기사가 마구 등장했습니다. 그냥 전통적인 관성에 따라 작성된 기사라고 말할 수 있지만 냉정히 말해 틀린 말은 아닌 기사들입니다.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업을 확장하는 배달의민족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제기.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밍밍하죠.


그 직후 김봉진 대표가 페이스북에 자신의 소회를 적었고, 공교롭게도 18일 우아한형제들에 대한 힐하우스 캐피탈 그룹의 570억 원 투자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약간 나간 해석이기는 하지만 실적공개를 통해 우아한형제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김봉진 대표가 '걱정하지 마라, 비전이 있으니 투자 받는다'라는 실제적인 증거와 멘트를 대답으로 마련한 것이 아닐까요?


이런 관점에서 김봉진 대표의 글을 잘 살피면 이런 해석이 가능합니다. "우리의 실패를 말하는 사람들은 일견 똑똑해 보이지만, 세상은 나와 같은 긍정적인 마인드에서 변한다"라는 메시지. 이는 "우리의 실패를 예견하는 자는 모두 부정주의자"라는 해석으로 발전합니다. 


더 나아가면 "우리의 성공을 믿는 자는 긍정주의자이며 스타트업 업계를 믿는 우군이자 내 편, 우리의 성공을 믿지 않는 자는 부정주의자이자 스타트업 업계를 믿지않는 불만분자이자 내 적"이라는 공식도 가능합니다. 네? 너무 확대해석한 것 아니냐고요? 김봉진 대표의 글을 다시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명확한 피아구별이 보이지 않나요? '늘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 중에 세상을 바꾼 사람이 있던가. 그들은 의견만 제시할 뿐 세상을 바꾸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출처=우아한형제들

불편한 지점
김봉진 대표는 화려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화려함을 바탕으로 비전을 가지고 혁신을 추구하는 사업가라는 점은, 그 누구보다 업계를 취재하는 기자인 제가 잘 압니다. 미리 밝혀두는 점은, 저는 배달의민족을 포함해 대한민국 모든 스타트업을 '상식적인 선'에서 응원합니다. 


하지만 김봉진 대표의 글에는 불편한 점을 느낍니다. 먼저 전제된 의식이에요. 김봉진 대표는 자신이 혁신을 이루고 있는데 소위 부정적인 사람들로부터 부당한 공격을 당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겨요. 제가 당사자가 아닌 관계로 체감하기는 어렵지만 심정적으로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이게 부당한 공격일까요? 냉정하게 말해 배달의민족이 100% 보장된 성공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익이 나지 않으면 무너지는 기업의 속성을 말합시다. 아무리 혁신을 위해 뛰고 있으며, 그것이 진실이라고 해도 냉정한 게임의 법칙은 다른 문제입니다. 그 과정에서 김봉진 대표가 외부의 지적에 너무 감정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김봉진 대표의 글이 정말 긍정적인 뉘앙스로 발전하려면 "냉정한 잣대가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비전이 있으니 실력으로 보여주겠다"고 말하는 편이 나았습니다. 나의 혁신을 믿는 사람을 긍정주의자로, 나의 혁신을 믿지 않는 사람을 부정주의자로 구분하는것 자체가 이미 틀렸습니다.


물론 부당한 공격도 있겠죠. 김봉진 대표는 아마 이런쪽에 집중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1998년 월드컵 당시 차범근 감독 경질처럼 우리는 영웅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으니까요. 불편한 시기심과 오해에 분노를 느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철저하게 플레이어 입장에서 '내 혁신이 맞다'고 주장하는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는 설득을 통한 단계적 성공이 진짜 사업가의 숙명이 아닐까요? '왜 나를 인정하지 않는가'라는 소리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디테일하게 들어가서, 부정적인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 나쁜가?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사업을 영위하는 입장에서 부정적인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 싫겠죠. 개중에는 어설픈 전문가도 있는 데다가 시기와 질투로 뭉친 파괴주의자들도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건설적인 지적질, 필요한 보완재까지 도매급으로 거부하면 이는 파쇼입니다. 물론 선택은 김봉진 대표의 몫이에요.


마지막으로 이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 자주 봤는데요. 종종 '나는 나를 위해서, 그리고 사회를 위해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신념에 빠져 자신의 처지를 우월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가끔 보입니다. 물론 그 신념을 탓하는건 아닙니다. 필요한 동력일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러한 신념은 폐쇄적인데다 아집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제일 걱정되는 부분은 이러한 기이한 균열이 실제 냉정한 게임의 법칙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내가 하는 일이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고 믿는 것은 좋습니다. 그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이런 의식이 뭉칠수록 업계에는 관행이라는게 생깁니다. 더벤처스 사태가 왜 발생했는지, 저는 이 부분에서도 집어내고 싶어요. 여담이지만 새로운 창조경제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스타트업이 성공해야 한다는 주장. 저는 200% 찬성합니다. 하지만 스타트업만을 위한 성공은 반대합니다. 세상에는 스타트업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출처=배민

말이 길었네요...
말이 길었습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쿠팡과 배달의민족을 비롯해 옐로모바일까지. 이들 중 누가 성공하고 누가 무너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전략의 수립과 시장의 반응. 그리고 회사가 추구하는 타이밍에 대한 주도권이 온전히 자신에게 있다면 반드시 성공하겠으며, 반대는 당연히 쓰러지겠죠.


그리고 입에 발린 말이 아닙니다. 다른 곳도 아닌 배달의민족은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합니다. 푸드테크의 방향성과 기타 다양한 시너지를 고려하면 김봉진 대표의 실력과 조직의 능력을 간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어요. 


하지만 아무리 진실이라도 내 진실을 알아주지 못하는 자들의 비판에 버티지 못하거나. 혹은 편가르기를 한다면 진짜 문제는 배달의민족이 성공한 후에 발생합니다. 넓어진 생태계만큼이나 다양한 목소리가 넘실거릴텐데, 편협한 생각으로 버틸 수 있겠습니까. 성공 이후 거대한 조직에 균열이 가면 그 피해는 누가 감당하나요?


현재 O2O를 포함해 다양한 스타트업의 비전과, 이를 둘러싼 이윤적 논쟁이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담합니다. 문제는 단순해요. 버티고 버텨 비전을 잡아내면 승리. 그렇지 못하면 패배. 이 당연한 게임의 법칙에서 김봉진 대표는 어떻게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나요? 건설적이거나 혹은 의미가 없는 지적을 뚫고 모험을 떠날 준비는 되었나요? 선크림 챙기고 완벽한 준비를 한 상태에서 모두의 환호속에 파묻혀야만 모험을 떠날 수 있나요?묻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16일 김봉진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또 하나의 포스팅을 소개합니다. 부디, 오류가 없는 판단이 아니길 빕니다.


[오류가 없는 판단은 있을 수 없다

자신이 잘못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주 확실하다고 믿는 의견이 사실은 쉽게 범할 수 있는 오류의 한 가지가 예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쉽사리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작가의 이전글 돈을 번다면, 그게 공유경제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