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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진홍 Apr 15. 2016

돈을 번다면, 그게 공유경제일까?

공유와 경제의 근원적 이야기

오랜만에 공유경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끄적여봅니다.


공유경제. 2008년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로렌스 레식 교수가 처음 사용한 말이며 한번 생산된 제품을 여럿이 공유하는 개념을 말하죠. 흔히 우버와 에어비앤비를 비롯해 한국의 코자자(코자자...꼭 자세히 알고싶은 곳!)와 쏘카, 모두의주차장 등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공유경제라는 개념이 진짜 2008년 처음 등장한 것일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공유경제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자본주의가 탄생하기전 공고하된 계급사회에서 주로 피지배층은 재화를 나누고 공유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생존의 문제니까요. 우리나라의 두레가 이런 범주에 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중세시대 유럽에서는 개인이 화덕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기에 마을마다 커다란 화덕을 피우고 공동으로 빵을 굽곤 했습니다.(헨젤과 그레텔 이야기 옥의 티;;;) 길드도 공유경제의 연장선상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추세는 자본주의의 시작, 계급제도의 종말로 사라집니다. 이제 공동으로 소유하고 소비하는 행위보다 '커다란 재화'를 노리는 대야망 시대가 열렸거든요. 능력이 있으면 노력만큼의 이윤을 챙기는 시대!


그런데 이게 또 문제인게, 자본주의가 안착하자 새로운 기득권이 탄생했습니다. 그들은 신천지를 먼저 차지하고 위로 향하는 사다리를 걷어버렸어요! 흙수저 시대의 시작입니다. 그런 이유로 대야망 시대의 자본주의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합니다. 버니 샌더스 열풍도 여기에 기인하고, 우리가 공유경제를 말하며 다시 새로운 패러다임을 발견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과거의 공유경제와 달리 지금의 공유경제는 다소 다릅니다. 원래 같은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의 공유경제에는 이를 운용하고 활용하는 플랫폼 사업자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봅시다. 과거의 공유경제는 경제보다 공유에 방점이 찍혔습니다. 그러니까 경제활동이 아니라 공동체가 공유하고 소비하는 방식이라는 뜻이에요. 경제민주화 담론과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얼핏 어울리지 않는 개념들이 묶여있어요. 어떻게 공유하고 소비하는 것이 경제랑 연결되죠? 두레를 하면 도움을 받지만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공동화덕을 사용하면 이득을 얻지만 다른 이들도 이득을 얻기에 경쟁이 될 수 없어요. 당연히 충돌에 의한 경제활동, 즉 플러스 알파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공유경제는 어떨까요? 내용은 과거의 공유경제와 비슷한데 내밀하게 보면 공유보다는 경제에 가깝습니다. 공유경제를 내세운 기업들이 O2O의 흐름을 타고 온디맨드 사업에 나서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공유해서 소비하는 행태를 모바일 혁명의 시대에서는 '고객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어 주는 서비스를 플랫폼 사업자가 제공하는 일'로 굳어졌다는 겁니다.


자연스럽게 파열음이 생깁니다. 우선 경제를 중심에 두기 때문에 기존 경제 플레이어들과 충돌해요. 우버와 택시기사들의 다툼이 대표적입니다. 여기에 아무래도 경제활동은 '프로'들이 하기 때문에 확실한 대가를 약속하게 되죠. 그러다 보니 숙제 대행 서비스가 공유경제로 변신하는 겁니다.


하지만 제일 큰 파열음은 정체성입니다. 플랫폼 사업자가 주도하기 때문에 공유되는 재화를 억지로 늘리는 방식을 추구하고, 이 과정에서 기존 플레이어와의 충돌이 재연된다는 겁니다. 아주 무한루프에요 그냥. 온디맨드의 경제적 불평등 현상에 따른 비정규직 양산도 몇몇 개도국을 중심으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지금의 공유경제는 과거의 공유경제와 다르기 때문에 아예 공유보다 경제에 방점을 찍어야 합니다. 가면을 벗어야 해요. 공유경제는 공익사업을 중심으로 하는 재화의 공동소비에 맡기고, 삶의 방식에 체화시키는 쪽으로 추진하는 쪽이 어떨까요? 차라리 온디맨드 업체라고 커밍아웃 하는게 어떨까요. 제2차 공유경제라고 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개소리도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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