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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진홍 Apr 13. 2016

문화의 자기복제, 성지영과 싸이 손목에서 보다

"즐기는게 최고"

논어 옹야편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


이게 무슨 소린가 하면...배움의 경지를 세 단계로 나눈건데요. '안다는 것은 진리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요. 좋아한다는 것은 좋아만하지 완전히 얻지 못한 것이다. 즐긴다는 것은 완전히 얻어서 이를 즐긴다는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즐기는 자가 짱이라는 뜻이에요...아주 심오한 배움에 대한 성찰입니다. 저는 평소 논어를 가까이 두고 마음에 풍파가 일어날 때마다 경건한 마음으로 글귀를 읽...는 것은 개소리고요. 이말년 서유기에서 처음 들어봤습니다.

출처 이말년 서유기

그런데 제가 왜 이런 소리를 하느냐? 최근 해괴한 사진을 봤기 때문입니다. 11일 오후 서울 강남 코엑스 광장에 등장한 크고 아름다운 그것. 네. 우리의 강남구가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기념하기 위해 거대한 말춤 손목동작 형상화 조형물을 세웠어요. 15일 제막식을 한다고 합니다. 음. 네. 멋지군요. 외국인들에게 무한의 미로로 재탄생한 코엑스 지하몰과 더불어 또 하나의 흥미진진한 볼거리를 선사할 전망입니다. (기사보기)

출처 위키미디어

성남시 연쇄재활용마, 성지영 씨.
지난해 12월 경기도 성남시는 쓰레기를 적게 배출하고 분리수거를 확실히 하자는 취지로 분리배출전용 그물망 사용을 홍보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한 여인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는데요. 그런데 그 여인의 눈빛이 묘합니다.


네, 분명 홍보 마스코트입니다. 대한민국 지자체가 만든 홍보영상에 등장하는 캐릭터에요. 그런데 눈빛이 마치 뭐랄까...극단적으로 말하면 인생의 진리를 너무 일찍 알아버린 9살짜리 여자아이의 공허함을 닮았다고나 할까요. 맞습니다. 죽은 눈을 하고 있어요! 죽은 눈을 뜬체 기묘하게 비웃으며 나에게 재활용을 위한 분리배출전용 그물망 사용을 막 엄격하고 진지하게 설파하고 있어요!

이거 뭐야 무서워....(http://tv.seongnam.go.kr/w/3/2/1426)

자세히보면 눈에 하이라이트가 없습니다. 맞아요. 이건 죽은 눈입니다. 왜 성남시가 나에게 이런 짓을? 싸이코패스를 데려다 공익을 말하게 하다니. (설마 야..얀데레?) 영상에서 이름을 확인한 결과, 이 처자의 이름은 성지영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니까 죽은 눈을 한 성지영 씨가 나에게 분리배출전용 그물망 사용을 권하는 거죠. 죽은 눈을..죽은 눈을...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다음입니다. 네티즌들은 곧장 성지영 씨의 출생의 비밀을 캐기 시작했고, 그 결과 3D 만화도구인 코미포에서 탄생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체험판은 무료지만 정식버전은 유료고요 성지영이라는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데이터만으로 만들어졌다는 것도 알아냅니다. 대한민국 공무원이 체험판 플랫폼에서, 그것도 콕 집어 '죽은 눈'만 설정한 이유는 뭘까요? 지구 온난화 때문일까요?

출처=https://twitter.com/Matsuki_Ringo

이후에 다양한 패러디가 쏟아졌습니다. 성지영 씨가 피같은 무언가가 묻어있는(기..김치국물) 봉투를 들고 "분리수거를 하지 않으셨군요"라고 음산하게 중얼거린다던가 "괜찮아...성남시의 환경을 내가 지킬께..(그러니 넌..)"이라고 말을 겁니다. 4컥만화부터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자랑하는 애니까지 나오고, 심지어 자발적인 게임까지 만들어집니다!(그만해 이 미친놈들아)

출처=https://twitter.com/RH33Z

어?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인데...
성지영 씨 해프닝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최근 성남시는 성지영 씨 캐릭터에 활기(?)를 불어넣는 방식으로 논란을 잠재우려 했으나 우리의 네티즌들은 멈추지 않아요! 이제는 모에화와 얄딱꾸리한 그 무언가로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철저히 마이너적 관점에서 시작되어 파급력이 거세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실제로 성지영 패러디는 알려지지 않은 무수한(물론 그 중에는 많은 은둔고수들이 있지만) 네티즌의 손에 의해 점점 생명력을 얻고 있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 아닌가요?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보자고요.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세계 30개 나라에서 음반차트 1위에 올랐고 빌도드에서 7주간 2위를 지켰죠. 유튜브 조회는 25억건을 넘겼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선풍적 인기의 배경은 말 그대로 마이너적입니다. 화려하게 데뷔해 등장한 것이 아니라, 뉴미디어 플랫폼을 타고 소위 바이럴이 먹힌 케이스에요. 이걸 메이저가 발견하고 끌어올린 방식입니다.


물론 성지영 씨는 아무리 인기가 좋아도 메이저로 올라가기 어렵죠. 그럴 의도가 없을 뿐더러 그러면 고..곤란합니다. (모에까지는 가능해도 얀데레는...마..마음의 준비가..)


하지만 모바일 혁명이 시작되며 우리는 파급력과 영향력에 대한 새로운 공식을 목도하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원래라면 마이너에 묻힐 것이 유력한 아이템이 메이저로 부상했다고, 이를 철저히 메이저식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맞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합니다. 맞나요? 싸이 손목 조형물이 정말 맞다고 생각하세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파급력을 고작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었나요?

본문과는 상관없슴다. 출처=플리커

즐겨야 한다
성지영 씨는 어쩔 수 없다고 치고(제기랄 얀데레) 이제 우리는 문화 콘텐츠 파괴력에 대한 진지한 담론을 시작해야 합니다. 한류든 1인 미디어든 마찬가지에요. 뭔가 파급력이 있다면 우리는 항상 정부나 기업이 나서 막 체계적으로 관리하려고 합니다. 물론 필요한 일이에요. 하지만 그 간섭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문화 콘텐츠같은, 민족적 관념이 강하게 깃들어있는 콘텐츠는 억지로 부흥시킨다고 해도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차라리 그들이 좋아하게 만들어야 하고, 스스로 끊임없이 재창조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맞아요. 어려운 일인데다 당연히 정부와 기업도 이런 쪽으로 방향을 잡았으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간섭의 크기가 너무 강하다고 생각해요. 무작정 정부 형님들이 '이거 되겠는데?'라고 점찍고 제작자도 '오홍 땡큐'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면 너무 큰 욕심일까요. 차라리 그 보편적인 단어. 현지화를 최중심에 넣고 정부와 기업의 간섭이 좁혀지고 최소화된다면? 그래서 그들이 즐기게 만든다면.


뭐 쓰고 보니까 매우 당연한 말이네요. 하지만 최근 정부가 아직도 한류거리며 나대고(?) 한국형 알파고 만든다고 그러고 한국형 가상현실 만든다고 하니까 걱정이 되어서요..뉴미디어 플랫폼이 열렸으면 그 상황에 맞게 가자고요. 처음부터 화려할 필요도 없고, 마지막도 화려할 필요는 없잖아요? 손목 조형물은 너무 화려하단 말입니다.


PS. 물론 그렇다고 진흙에만 처박혀있자는 말은 아니에요. 길은 여러가지가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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