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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진홍 Jan 18. 2016

손정의 회장은 어떻게 성공했을까?

재미있는 상상을 더하자면...

일본 소프트뱅크가 창업 35주년을 맞았다고 합니다. 손정의 회장이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를 했네요. 그 인터뷰를 찬찬히 훑어보았습니다. 음, 감히 저 '따위'가(비하가 아닙니다. 당연한 상황판단) 어떻게 판단할 수 없지만 최소한 손정의 회장이 보여준 성공신화의 단면을 살필 수 있었다고 감히 말해봅니다. 그가 걸었던 스스로의 역사와 더불어, 그 인터뷰의 의미를 따져보겠습니다.

출처=위키디피아


첫 번째, 소프트뱅크 2.0의 의미입니다. 기업은 300년 정도 지속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 말을 들으니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일본 예능 중 최고의 장인을 뽑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합니다.


자세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데. 이런 방식이래요. 장인들이 등장해 누가 쇠구슬을 완벽하게 깎아내느냐를 두고 승부를 벌이는... 연예인들이 등장해 영양가 없는 농담만 주고받는 예능(모두가 그런 건 아니에요. 무도는 사랑입니다)에 익숙한 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습니다.


개인적이지만, 노래실력에 죽고 사는 '장인'도 좋지만 기술력과 기초과학을 두고 벌이는 일반인 오디션 프로그램이 하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물론 시청률은 장담할 수 없지만...ㅠㅠ


 회장의 300년 기업론도 결국 이러한 장인정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요. 일본에 유난히 오래된 기업이 많은 이유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떠오르는 생각, 소프트뱅크의 독특한 사풍입니다. 지난해 소프트뱅크를 '원격'으로 취재(라고 쓰고 구글링이라고 읽는다)한 적이 있는데, 소프트뱅크는 사업의 수익성을 따지며 기회를 놓치면 엄청난 문책을 당하지만 과감하게 사업을 추진하고 실패하면 도리어 인정받는다고 해요.


실적을 올린 사원에게 사장의 보유주식을 증여하는 ‘특별포상제도’를 실시한다는군요. 끝없이 정진하는 정신. 손정의 회장의 성공 비결이 아닐까요.


두 번째, 세계화와 승부수입니다. 손정의 회장은 세계화를 의무라고 말했는데요. 인터뷰에서 후계자의 존재와 세계화를 연결한 점이 새롭습니다. "일본의 경쟁력 저하와 함께 소프트뱅크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기에 지금 후계자를 발굴하고, 세계 규모의 사업 전개를 본격화시킬 시기에 와있다"라고 말했거든요.


저는 이 부분이 재미있었습니다. 니케시 아로라로 대표되는 후계자와 동시에 세계화를 연결한다. 스프린트의 실패에서 배운 게 있었던 걸까요. 최소한 이 대목은 왜 혈족도 아닌 니케시 아로라를 후계자로 세웠는지에 대한 답인 것 같습니다. 손정의 회장은 자신이 아닌 기업의 성장을 보고, 세계화를 노리기 위해 글로벌 인재를 후계자로 세운 겁니다. 물론 니케시 아로라에 대해서 "후각이 있다"고 칭하기도 했습니다.


세계화만 그의 강점이 아니라는 거죠. "니케시 아로라는 기술자며, IT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데다 구글을 실질적으로 경영해 온 바 있기 때문에 재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재미있습니다.


승부수는 뭐 많이 알려진 사실이에요. 따지고 보면 그의 인생이 승부수죠. 워낙 내용이 많아서. 이건 예전에 제가 쓴 기사 발췌로 소개합니다.

출처=소프트뱅크 홈페이지 캡쳐

[손 회장은 1957년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3세다. 할아버지 손중경은 1914년 밀항선을 타고 일본에 건너가 광산 노동자로 일하며 자리를 잡았으며... 중략.... 그는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후쿠오카 지역의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도 '최고의 학교를 만들어 보이겠다'며 당시 교장에게 사업 계획서를 제출하는 당돌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손정의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홀연히 미국으로 떠난다. 그리고 월반을 신청하는 즉시 3주 만에 대입자격시험 자격을 신청했다. 당시 영어로 진행되던 시험이 일본인인 자신에게 불공평하다며 사전을 참고해 시험을 칠 수 있도록 항의했고, 결국 이를 관철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그리고 손정의는 홀리 네임즈 대학교를 거쳐 1977년 명문 버클리대 분교 경제학부로 진학한다]


[ 대학생이던 그는 1년 동안 무려 250개의 발명을 해내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당시 그가 발명한 '일본어 입력, 영어 표기 번역 장비'는 100만 달러의 계약금으로 팔리기도 했다. 훗날 이 전자 번역기는 샤프에 매각되어 일본 전자신화의 시초가 된다. 여기에 일본에서 인기가 시들해진 스페이스인베더를 미국에 유통시켜 엄청난 수익을 남기기도 했다. 여세를 몰아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 유니손 월드라는 어엿한 회사를 설립했으나 귀국하겠다는 부모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본으로 돌아왔다].....이런 효자 같으니


[1997년과 1998년은 손정의는 물론 소프트뱅크 전체에 기념비적인 시간이다. 미국의 거부인 로스 페스와 합작을 바탕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뤘기 때문이다. 덕분에 1998년 1월 소프트뱅크의 주식은 일본 대장성의 허가를 받아 장외시장에서 2부를 거치지 않고 곧장 도쿄 증권거래소 제1부에 상장되었다. 유례가 없던 일이었다. 이후 손정의는 세계 미디어의 황제 루퍼트 머독과의 유명한 '기습 협상'을 계기로 디지털 위성방송 사업에도 진출한다]


[이후 행보는 거칠 것이 없었다. 1999년 나스닥재팬을 설립한 손정의는 2000년 소프트뱅크코리아를 통해 보안 전문 업체 시큐어소프트, 알리바바코리아, 헤이아니타코리아, 소프트뱅크 웹인스티튜트 등 한국의 4개 인터넷 업체에 109억 원을 투자하며 자신의 뿌리인 한국에도 본격 진출하기 시작했다. 또 일본은행 사상 처음으로 IT 업종이 은행업에 진출하는 첫 사례를 남기기도 했다]


[주머니 사정이 나빠졌어도 과감한 결단에 바탕을 둔 날카로운 '투자본능'도 여전히 꿈틀거렸다. 2004년 자신을 찾아온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에게 6분의 면담을 끝으로 2000만 달러를 투자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14년 후 결과가 말해준다. 신의 한 수였다]


[이후 그는 재팬텔레콤 인수, 당시 일본 꼴찌 통신사 보다폰 일본법인을 인수하며 통신계로 보폭을 넓혔으며 스티브 잡스의 든든한 조역자로 자리매김하며 '애플 열풍'에 일조했다]

출처=소프트뱅크 홈페이지 캡쳐


여기에서 손정의 회장이 인터뷰에서 성장을 위한 수단은 역시 인수합병이냐?라는 질문에 '쾌감'이라는 답을 한 부분. 왠지 이해가 됩니다. 승부의 연속에서 오는 쾌감. 인수합병은 그 거대한 결정체죠. 저는 왠지 손정의 회장이 김범수 카카오 의장과 닮았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마지막으로 손정의 회장은 혼다자동차를 설립한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郎)씨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직 손정의 회장이 무명이던 시절 그를 만났는데, 그가 자신에게 PC에 대해 이것저것 말하는 것을 인상깊게 기억한다고 하네요.


개인적이지만, 저는 손정의 회장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경영자가 혼다 소이치며, 스스로 그에 투영시켜왔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음 인터뷰 질문에 그가 '좋은 경영가는 높은 이상을 가진 것'이라고 말한 부분이 눈에 들어와요. 이 모든 것을 성공한 그에게 투영시키자면, 결국 좋은 경영자는 남이 보지 못한 부분을 보는 사람이고, 이를 위해서는 지극히 낮은 곳을 보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닐까요?


뭐 사실 적어보니 별거 없지만, 손정의 회장은 배짱과 승부수, 파격, 그 안에 숨어있는 치밀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인 그가 아무리 대단해도 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결국 '그의 사람'이 답이 아닐까요? 부족함을 채워주는 사람을 주변에 두는 것. 니케시 아로라를 봐도 알 수 있으며, 중국 한 고조도 마찬가지죠.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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