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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진홍 Jul 07. 2016

적과의 동침을 허하라? 케이블 업계의 ‘절박함’

애증의 관계?

일관성은 중요합니다. 신념의 문제이기도 하며, 우리는 통상적으로 일관성이 없는 사람이나 조직을 쉽게 믿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락가락하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어려운 일이에요. 다만 일관성이 무너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황이 변하거나, 혹은 그 이상을 상회하는 절박함이 발생하는 경우에요. 이런 경우 이견의 여지는 있으나 일정정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깁니다.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은 법이에요.    


공정거래위원회의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인수 불허 결정이 화두입니다. 세세하게 돌아가는 상황은 모두가 알고 있으니 이번에는 일관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정확히는 ‘오락가락’에 대한 진지한 고찰입니다.   

절벽 위 케이블, “신념은 변하는 거야”

공정위 발표 후 케이블 업계가 반발하고 있습니다. SK텔레콤이야 말할 것도 없으며, 케이블 업계는 말 그대로 충격과 공포에 빠진 분위기입니다.     


이는 유료방송의 패권과 관련이 있습니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가 지난 3일 발표한 '2016년 4월 ICT주요품목동향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4월말 기준 IPTV 가입자는 총 1308만 명으로 집계됩니다. 지난해 1147만명과 비교하면 14.0%가 늘어났으며 2014년 1084만 명으로 1000만 시대를 돌파한 후 거침없는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에요. 하지만 케이블 방송 가입자수는 2009년 1500만 명을 넘어섰으나 이후 연간 약 9만 명씩 감소하고 있습니다. 완벽하게 밀리고 있어요.    

결국 케이블 사업자 입장에서 탈출구를 찾아야 하는데, 공정위는 유일한 탈출구처럼 보이는 인수합병의 길을 완벽하게 막아섰습니다. 여기서 지역 점유율 독과점 및 전체 점유율 독과점, 통합 방송법 기조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막혔어요.    


자, 이런 상황에서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는 7일 공개질의서를 통해 공정위의 판단을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지점이 보입니다. 네 번째 질의입니다. 한 번 보시죠.  

  

[넷째, 위원회는 이번 인수합병에 대해 이동통신 1위 SK텔레콤이 유료방송사를 흡수하는 형태이다 보니 지배력전이 문제를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가 결합판매 제도개선에 나서고 있고, 이번 인수합병 심사에서도 ‘동등할인‧동등결합 도입’ 등 이동통신 지배력 전이를 금지할 수 있는 조건을 붙여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미 유료방송 플랫폼을 1~2개씩 보유하고 있는 통신사들의 ‘방송 끼워 팔기’ 등 지배력 전이 문제는 비단 SK텔레콤뿐만 아니라 전체 방송통신업계에 걸친 사안이며,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인수합병 불허는 이동통신 지배력 전이 방지를 위한 미봉책이 될 수 있겠지만, 이로 인해 케이블TV업계는 구조개편을 통한 경쟁력 확보 통로가 차단된 채 지속적인 가입자 감소를 겪어야 하는 등 불이익을 받아야 합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방송통신 시장 공정경쟁을 오히려 저해할 수 있는 극단적인 결정을 왜 내리게 되었는지 위원회의 입장을 밝혀 주십시오]    


이 문단을 읽으면서 케이블 업계의 절박함을 정말 처절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결합상품 등의 공세를 바탕으로 IPTV의 통신시장 지배력이 방송시장으로 전이되는 것을 가장 경계했던 것이 바로 케이블 업계였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돌려 지난해 10월로 가겠습니다. 당시 방통위는 방송통신 결합상품 제도개선(안)에 대한 후속조치로 ‘방송통신 결합판매 허위·과장 광고 가이드라인’을 전체회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확정했습니다. 허위 및 과장광고 등을 걷어내는 것이 골자지만 그 이면에는 인터넷과 휴대폰을 무기로 막강한 경쟁력을 유료방송시장으로 뻗어내는 IPTV에 대한 케이블 사업자의 경계가 묻어납니다.    


올해 3월에는 본격적인 논의도 이어졌습니다. 방통위가 결합판매의 금지행위 세부 유형 및 심사기준을 마련해 요금할인 세부내역 구분과 일부 단품 해지 가능, 결합상품 잔여 약정기간 통지, 현저히 차별적인 할인율 금지, 동등결합 판매 활성화 등 5개 방안을 담아냈어요. 결국 이러한 논란의 핵심은 통신시장의 경쟁력이 방송시장으로 밀려오는 것을 막아내야 한다는 케이블 사업자의 절박함입니다. 통신사의 IPTV가 막강한 결합상품 경쟁력으로 유료방송시장에 치고 들어오니, 이를 막아야 한다는 케이블 사업자의 반발이 있었기에 방통위가 움직인 겁니다.    


그런데 지금 협회의 질의서를 보세요. “이미 유료방송 플랫폼을 1~2개씩 보유하고 있는 통신사들의 ‘방송 끼워 팔기’ 등 지배력 전이 문제는 비단 SK텔레콤뿐만 아니라 전체 방송통신업계에 걸친 사안이며,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합니다”라며 일단 ‘바닥’을 깔기는 했으나 “인수합병 불허는 이동통신 지배력 전이 방지를 위한 미봉책이 될 수 있겠지만, 이로 인해 케이블TV업계는 구조개편을 통한 경쟁력 확보 통로가 차단된 채 지속적인 가입자 감소를 겪어야 하는 등 불이익을 받아야 합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자신들이 그토록 반발하던 통신시장 경쟁력의 방송시장 경쟁력 전이를 두고 ‘마음에는 안 들지만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합병불허 이유로 삼지는 말아달라’는 말입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입니다.    


사실 업계에서는 공정위의 이례적인 판단에 한 번 놀라고, 공정위가 지역 거점 독과점 문제를 핵심으로 들고 나온 것에 두 번 놀랐습니다. 차라리 통신시장 경쟁력의 방송시장 경쟁력 전이가 더 심각할텐데, 왜 굳이 가이드라인도 분명하지 않은 거점 점유율로 ‘불허’를 내렸을까요? 추후 재미있게 짚어볼 대목입니다. 다만 여기에서는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태세전환에 따른 비판을 감수해도, 일단 지금 살아야 겠다’는 케이블의 절박함. 오락가락. 일관성 부재입니다.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으로는..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IPTV와 케이블은 유료방송의 틀 안에서 매번 사이가 좋았던 것도, 나빴던 것도 아닙니다. 외부의 적과 직면하면 똘똘 뭉쳤지만 내부에서도 많이 싸웠습니다. 외부의 적은 주로 지상파에요. 플랫폼 권력을 상실한 지상파는 CPS를 두고 케이블-IPTV 진영과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블랙아웃도 많이 벌어졌어요. 다만 최근에는 살림살이가 핀 IPTV가 CPS 논쟁에 약간 대범해졌다 정도?    


내부의 싸움은 통신시장 경쟁력의 방송시장 전이 외에도 많습니다. DCS 논란이 대표적입니다. 접시없는 IPTV를 둘러싼 DCS 논란이 벌어지자 케이블 사업자는 국회에 항의방문도 하고 그랬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KT가 위성방송을 인수하는 순간에도 파열음은 상당했어요. 이건 그냥 여담입니다.    

공정위의 오락가락

케이블이 살기 위해 오락가락한다면, 공정위는 다소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오락가락합니다. 먼저 공정위가 지난 2012년 ‘다채널 유료방송 시장분석’ 보고서를 통해 케이블TV 지역사업권을 광역화 내지 폐지해야 한다고 연구결과를 발표한 지점. 담당 공무원이 직접 참여한 보고서의 내용에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사후규제를 통해 충분히 규제가 가능하다고 설명이 돼 있습니다. 요건 협회의 질의서에도 있는 부분이죠.     

나아가 통합 방송법의 기조를 무시하는 것도 논란입니다. 여기에 단순하게 생각하면, 합병법인이 탄생해도 1위가 아닌데 굳이 이렇게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제 결론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 정말 치열한 문제고 쉽게 말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닙니다. 무엇이 긍정적일까요? 합병이 되어도 독과점 등의 문제는 심각하고 그렇지 않으면 케이블 큰일납니다. 심지어 공정위의 잣대로는 앞으로 케이블 사업자 인수합병 불가능해요. 그럼 종사자들은? 발전은? 미래는?  

  

여기에 대한 판단은 미루겠습니다. 다만 케이블이 절박하다는 점. 그리고 공정위도 약간 상태가 이상하다는 점. 그들도 누군가에게는 갑이고 을이라는 점. 합병법인은 참 있어야 할지 없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 감사합니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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