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삶
나는 어릴 때 아버지를 미워했지만 존경하기도 했다.
미워했던 건, 내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어서일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누나는 아팠고, 부모님은 누나에게 죄책감을 느끼시는 듯했다. 나는 누나와 자주 싸웠다. 싸울 때면 항상 혼나는 건 나였다. 내겐 누나는 그냥 누나였기에, 어린 마음엔 아버지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게 편애로 다가왔다. 아버지의 행동은.
그렇지만 3가지 점에서 난 아버지를 존경했다. 우선, 아버지는 성실하셨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일을 나가셨다. 책임감이 강하신 분이셨다.
또한, 아버지는 효자였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친할머니가 편찮으셨다. 아버지는 시골 공기 좋은 곳에 당신의 어머니를 모시고 싶으셨나 보다. 친할머니는 항상 아버지에게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날이 화창하고 탱자나무 열매에서 향긋한 내음이 필 무렵이었다. 그맘때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여담이지만 할머니는 나를 정말 좋아하셨다. 집안에 보물이라고, 최소 장관급으로 대성할 거라 말씀하셨다. 나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 감사했다. 이후 줄곧 나는 이 말을 스스로에게 되뇐 것 같다. 힘들 때 나를 이끌어주는 동력. 친할머니는 내 마음속에 그런 존재였다.
아버지는 도전하는 분이셨다. 이는 내가 가장 존경했던 부분이다.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도전은 그 집과 관련됐다. 아버진 시골의 집을 새롭게 꾸미셨다. 우물도 만들고, 뒷마당엔 닭장도 만들길 원하셨다. 또 2층으로 증축해서, 위에는 라이브 쉼터 같은 시설을 두길 원하셨다. 일손이 부족했다. 당시 중학생이던 나도 리모델링에 한 손을 보탰다. 벽돌을 나르며, 페인트칠을 도왔다. 더운 여름에 짜증이 났었나 보다. 자꾸 뭘 시키시는 아버지에게 '내가 어떻게 저걸 드냐고'라고 따졌다. 잊히지 않는다. 그때 아버지의 말씀이. '불가능한 게 어딨냐'라고 나를 혼내듯이 대답하셨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게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게.
몇 차례 계절이 변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공사도 마무리됐다. 그렇게 2층엔 아버지가 그토록 바라시던 라이브 쉼터가 생겼다. 다재다능. 아버지와 어울리는 말이었다. 춤과 노래를 좋아하셨던 당신의 소박한 꿈이 이루어진 것이리라. 언제부턴가 매일 위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는 날달걀을 드시며 목을 가다듬으셨다. 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부르시는 모습. 가요 대회를 준비하신다고. 나는 당시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아버지가 할 수 있을까? 기대를 안 했다.
날달걀 몇 판을 드셨을까, 드디어 대회 날이 다가왔다. 어머니와 누나, 사촌 형제들과 다 같이 tv 앞에 모였다. tv 속에 나온 아버지 모습이 사뭇 신기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살다 보면 알게 돼, 알면 웃음이 나지. 너나 나나 모두 다 부질없다는 것을' 매일 듣던 그 노래다. 지금도 머릿속에 맴도는 노래. 그날 아버지는 열창을 하셨다. 갑자기 심사위원 쪽에서 난리가 났다. 방금 나훈아 노래 부른 사람 누구냐고. 심사 순간이 다가왔다. 장려상, 우수상, 최우수상... 하나씩 넘어갈 때마다 덩달아 초조해졌다. 대상 발표 순간, 유독 뜸 들이는 게 길었던 것 같다. 아버지 이름이 불렸다. 생생하게 기억난다. 너무 기뻐서 눈물을 글썽이며 만세를 부르시던 모습이.
간절히 꿈을 꾸시고, 하나씩 이뤄가시는 모습. 나에게 불가능이란 없단 걸 몸소 보여주신 분. 아버진 내게 그런 존재였다.
지금 아버지는 많이 달라지셨다. '이 나이에 무엇을 하겠냐'. 도전과 찰떡궁합이셨던 아버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변하신 아버지를. 그 이후였다. 아버지께 많이 대들었던 것은. 불같은 성격에 나를 혼내시던 아버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이후로 아버지와 나는 자주 대립했고, 부자 사이는 서먹해졌다.
하지만. 내 친할머니의 기대가 내 삶에 스며들었듯이, 아버지의 도전 정신도 분명 내 안에 존재한다. 그 한 여름. 매미가 시끄럽게 울던 그때. 땀방울이 맺힌 채 집을 지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불가능이란 없다고 나를 혼내시던 모습이, 매일 날달걀을 삼키시며 연습하시던 그 모습이.
나는 두렵다. 내가 변할까 봐. 나도 한순간 타오르는 무언가가 아닐까. 남자는 나이가 들면 공격성이 줄어들고, 그만큼 도전도 꺼린다고 한다. 내가 존경하던 아버지의 과거. 그 모습으로 계속 살고 싶다. 나는 지금의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50세가 되어도, 100세가 되어도, 계속 도전하고 내 꿈을 이루며 살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