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분석 에세이
데이터 분석 정말 재밌었다. 하나하나 배워갔다. 내 코드에 따라 움직이는 데이터들. 이렇게. 요렇게. 저렇게. 어떤 방식으로 시각화할지 생각한 것도 재밌었다. 그런데 이제 재미가 예전만 못하다. 왜일까 고민해봤다. 단정 지을 순 없다. 내 성향이라고 단정 지으면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고 규정하지 않으면 분석이 안된다. 분석해서 원인이 뭔지 알아야 해결책을 알 수 있다.
무언가를 얻고자 하면, 그 대상에 대해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재미가 뭔지, 왜 이걸 추구하는지 생각해보자.
성공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아실현 욕구,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강하다. 마찬가지로 재미를 추구한다는 건 내 행동의 원인, 기저에 무언가가 있다는 말이다. 매슬로우가 욕구를 5 단계로 잘 정리해뒀다. 재미를 추구하는 건 어떤 욕구와 관련됐을까? 생리적 욕구는 아니고 안전의 욕구도 아니다. 사회적 욕구? 존경의 욕구? 다 아니다. 자아실현의 욕구는 더더욱 아니다.
욕구의 사전적 정의는 '무엇을 얻거나 무슨 일을 하고자 바라는 것'이다. 사람이 행동을 할 때는 무엇을 얻거나 바라는 게 있다. 이 전제하에서 생각의 울타리를 좁혀보자. 재미란 무엇인가? 재미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일에 흥미를 느끼고 즐거움을 맛보는 마음의 상태'이다.
그렇다면. 마음의 상태는 얻을 수 있는 것인가? 마음의 상태는 얻었다고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 무언가를 얻었다면 욕구가 해소되어야 한다. 가령, 밥을 먹으면 한시적으로라도 식욕이 해소된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으면 순간이나마 존경 욕구가 해소된다. 그렇다면, 그 순간의 재미를 얻으면 더 이상 재미를 원하지 않는가? 지금 행복하니 5분 뒤엔 안 행복해도 되게끔 욕구가 해소되는가? 그렇지 않다. 마음의 상태는 얻을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즉, 재미는 얻는 게 아니라, 얻어지는 것에 가깝다. 행복은 얻으려 하면 할수록 달아난다는 말처럼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에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재미도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관점을 바꿔 생각해야 한다. 엄밀히 말하면재미는 추구할 수 없고, 자연스레 추구되는 것이다.재미가 어떤 행동에 의해 얻어지는 결과라면, 그 행동엔 목적이 있다. 재미는 어떤 행동에 의해 얻어지는가? 그리고 그 행동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이를 알면 우리가 왜 그토록 '재미'에 집착하는지도 알 수 있다.
게임을 하고, 만화를 보고, 넷플릭스를 본다. 우리가 좋아하는 행위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행위를 통해'몰입'할 수 있다. 칙센트 미하이가 말한 몰입. 정말 내가 사골 우려먹듯 사용하는 관점이다. 웬만하면 이 관점에서 다 설명 가능하더라. 칙센트 미하이는 행복감의 원천은 몰입에서 온다고 했다. 내가 생각하는 재미도 마찬가지다. 행복과 재미는 동의가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는 재미는 행복의 범주에 속한다. 재미를 느끼는 그 순간을 불행하다고 표현할 순 없기 때문이다. 여하튼, 몰입에서 재미가 온다면, 왜 그토록 몰입할 대상을 찾는 걸까?
사람들은 강박적으로 무언가 하려고 한다. 나만 해도 뭔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뭔가를 한다. 며칠 전 독서모임에서도 한 회원이 얘기했었다. '왠지 모르지만,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왜 그런지 알 것 같다. 다른 행위에 몰입하는 그 순간 '나'를 잊을 수 있다. 힘든 현실 속에서 잠깐이나마 해방될 수 있다.나를 잊는 것. 현실을 잊는 것. 즉, 재미를 유발하는 몰입 행위의 목적은 '현실 도피'이다. 이게 우리가 그토록 '재미'에 집착하는 이유이다.
내가 생각하는 몰입은 행복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단지,불안한 현대인들을 위한 처방이다.달라이 라마나 달관한 고승 등 성인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그들이 무언가 몰입을 해야만 행복한가? 가만히 있으면 불행한 사람들을 성인이라 할 수 있는가? 내가 생각하는 성인들은,어떤 행동에 몰입하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게 아니다. 그저 현재에 존재함으로써 행복을 느낀다.
그렇지만 우리는 성인이 아니기에, 대부분은 현존에서 오는 행복을 느끼기 어렵다. 현시대 평범한 한국인으로 우리가 '재미', '행복'을 느끼는 가장 빠른 방법은 '몰입'이다. 그렇기에, 일에서재미와 행복을 찾지 못한다면 다음과 같이 스스에게 질문해보면 된다. '내가 요즘 일에 몰입하지 못하는가?'
정리하면, 현재 이 순간에 벗어나기 위해 사람은 어떤 행동에 몰입한다. 그 과정에서 재미가 얻어진다. 현재 하는 행동에서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건,제대로 몰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몰입을 위한 과제의 요건을 기억하면 된다.
1. 목표가 있을 것
2. 피드백이 있을 것
3. 과제와 능력이 균형을 이룰 것
내게 목표와 피드백은 있다. 현재 과제가 내 능력에 비해 쉬워서 재미가 없어진 듯하다. 생각해보면 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흥미가 있다. 뭐든 처음 시도하는 대상은 복잡하게 다가온다. 그러다가 복잡함에서 패턴이 보인다. 단순하게 변한다. 그러다 쉬워진다. 과제와 능력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니 더 이상 몰입하지 못한다. 왜 재미가 없어졌는지 알겠다.
해결책은, 좀 더 복잡한 문제를 찾거나 새로운 과제를 찾는 것이다.
물론 언제까지 이게 해결책일 수는 없다. 꾸준히 명상과 요가를 해야 하는 이유다. 행위에 몰입하지 않고, 현존함으로써 행복할 수 있는 것. 내가 바라는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