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광이처럼 굳이 차가운 바다에 뛰어들 필요는 없었다. 등을 떠밀거나 부추기는 이도 없었고 바다에 발을 담그자고 조르는 사람도 없었다. 고만고만한 파도가 바닷가로 밀려와 사람들의 시선이 하얀 물거품에 꽂힌 틈을 타 바닷모래를 한 움큼씩 쥐고서 바다로 돌아가기를 반복했을 뿐 바다는 잔잔했다.
바다가 나를 유혹한 건 아니다. 고요하리만치 잔잔했던 그 날의 바다는 그저 제자리에서 할 일을 하고 있었을 뿐 달리 나를 꾀어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다가 눈앞에 있으니 신발을 벗어서 내동댕이치고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한달음에 바다까지 달려간 건 아니었다. 바다에 뛰어들기까지 짠 내 나는 바닷물을 향해 내달리려는 두 발을 멈춰 세우기 위해 나는 몇 번이고 들썩이는 마음을 붙들어 눌렀다.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카페에 앉아 부러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가 괜히 딴청을 부리며 시원한 물로 목도 축였다. 슬그머니 일어서서 바닷가로 이어지는 계단 앞을 서성이는 게 그다음 단계였다. 계단 첫 단을 차마 딛지 못하고 공연히 휴대전화를 켜서는 하염없이 저 멀리 보이는 바다 사진을 찍다가 나도 모르게 홀린 듯, 한 걸음 한 걸음 내려간 계단 끝에는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얼마든지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설 수 있었다. 썰물 때 물이 빠져나가며 모래사장 중간중간에 남겨둔 얕고 조그마한 물웅덩이 옆에 앉아 슬쩍슬쩍 손을 담갔다가 빼며 눈으로는 힐끔힐끔 넓은 바다를 엿봤지만 나는 잘 참았다. 어느 한 곳 마른 데 없이 잔뜩 젖어 다리를 무겁게 휘감아버린 두툼한 청바지와 제대로 닦지 못한 발을 구겨 넣어 모래와 물로 범벅이 된 신발을 생각하면, 거기서 멈췄더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멈춰야 할 때가 언제인지 아는 사람은 행복할까?
멈춰야 할 때가 언제인지 잘 알기만 해도 세상 사는 일이 한결 더 편해질지도 모른다. 엄마에게 부리던 떼를 멈춰야 할 때가 언제인지, 나는 너무도 좋아하지만 남들은 ‘망작’으로 치부하는 영화를 나의 ‘최애’ 영화로 소개하는 짓을 그만둬야 할 때가 언제인지, 내 것이 아닌 꿈을 접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 눈치껏 잘 알아채기만 해도 하루하루를 무겁게 짓누르는 고통과 불편의 무게가 절반쯤은 줄어든다.
이게 바로 이 사회가 허용하는 통념이다. 심오한 진리와 삶의 지혜가 꾹꾹 눌러 담긴 금과옥조라도 되는 듯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가르침을 주야장천 읊어대는 이 사회에서 무사히 살아남으려면 이 정도 눈치는 있어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경멸하는 사람들에게만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주어지는 이 사회에서 사람들은 다수가 옳다고 외치는 길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않은 획일적인 삶을 성공으로 여긴다. 반면, 남들과 다른 곳을 바라보며 다듬어지지 않은 비포장도로를 걷는 삶은 아슬아슬하고 위태롭기 짝이 없는 만용으로 치부된다.
물속으로 들어가 잃어버린 나를 건졌다
나를 향해 손짓한 물은 서해가 처음이 아니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다리로 알려진 스위스 루체른의 카펠교에 서서 물끄러미 내려다본 강물은 스물의 나를 향해 자꾸만 속삭였다. 두려워하지 말고 다가오라고, 그 속으로 발을 들여놓으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거라고. 뜨겁게 달아오른 공기를 식히는 잔바람을 따라 고요하게 흘러가는 루이스 강물은 작열하는 여름 태양빛에 반사돼 아름답게 일렁였다. 햇살과 만나 섬광 같은 빛을 만들어냈다가 다시 강 속으로 고꾸라지기를 반복하는 수면의 물결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언젠가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저 물속으로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나는 두려웠다. 아름다움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홀린 듯 걸어 들어간 곳에서 나의 마지막 순간과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는 본능적인 두려움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항상 경계하며 살았다. 아름다운 것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도록. 내 마음을 흔드는 것들에 넋을 잃지 않도록. 손에 쉬이 잡히지 않는 것을 갈망하는 것은 나의 못된 습성이라 애써 믿으며 나의 욕망을 외면하고 모두가 옳다고 외치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며 살았다.
그 누구의 심기도 거스르지 않는 둥그런 돌이 되려고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 쳤던 나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서해의 차가운 바다가 다시 나를 향해 손짓했다. 스무 살 여름에 만났던 루이스 강물은 용기를 내어 한 발을 담갔더라도 그저 뜨뜻미지근하기만 했을지도 모른다. 얄랑이는 물결에 매료돼 한 발을 담갔다가 나도 모르게 그 속으로 한 발을 더 내딛기는커녕 미적지근하고 미끈거리는 감촉에 질겁하며 슬그머니 발을 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발을 벗어 던지고 청바지를 대충 접어 올린 채 바지가 다 젖도록 뛰어다녔던 봄날의 서해는 서늘한 기운이 감돌 정도로 차가웠다. 얼음장 같은 물을 철없이 가르며 뛰어다닌 그 날, 나는 오래전에 나를 엄습했던 예감대로 나의 끝과 마주했다. 바닷물에 뛰어든 나는 그저 정을 피할 수 있는 둥그런 돌 같은 삶을 갈망하며 잔뜩 웅크린 채 한없이 주저하고 두려워했던 과거의 나를 온몸이 떨리도록 차가운 물 속에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모난 돌이 될지언정 기꺼이 새로운 꿈을 꾸는 또 다른 나를 물 밖으로 건져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