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김여사, 미국에는 캐런(Karen)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늘 편을 가른다. 마치 군인들이 ‘헤쳐모여’라는 구호를 외치며 우르르 흩어졌다가 새로운 대열을 만들 듯, ‘우리’와 ‘저들’로 편을 가른다. 그런 다음에는 그 차이를 조롱거리로 삼는다. 어쩌면, 사람들이 자신과는 다른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은근히 깎아내리는 것은 ‘나의 삶은 옳다’라고 증명해 보이고 싶은 본능적인 발버둥인지도 모르겠다.
편을 가르는 기준은 제각각이다. 피부색이 기준이 될 때도 있다. 흑인을 비하하는 ‘nigger’, 파키스탄인을 조롱하는 ‘Paki’, 중국인을 깎아내리는 ‘Chink’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말도 다르지 않다. 물론, ‘검둥이’ 같은 노골적인 단어가 마구잡이로 사용되던 야만의 시절은 끝났다. 그래도, ‘흑형’, ‘쪽바리’, ‘짱개’ 등 누군가를 미묘하게 낮춰 부르는 말이 여전히 일상에서 가볍게 소비된다.
세대가 기준이 되는 경우도 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을 비하하는 ‘꼰대’나 ‘노인네’, 유치하거나 어린 사람을 경멸 섞인 어조로 부르는 ‘잼민이’ 같은 말이 여기에 속한다. 성별에 따라 편을 갈라 서로를 비난하는 표현도 있다. 한국어로 ‘된장녀’나 ‘꽃뱀’쯤으로 번역되는 ‘gold digger’, 《82년생 김지영》 영어 번역판에서 ‘mom roach(엄마+바퀴벌레)’로 번역된 ‘맘충’. 여자들을 비난하는 표현이 창궐하는 데 분노한 여자들이 만들어낸 ‘개저씨’, ‘한남’ 같은 남성 혐오적인 표현도 있다.
이런 조롱 섞인 말에서 자주 표적이 되는 건 중년 여성이다. 가정과 사회를 분주히 오가느라 이따금 예의와 규칙을 잊어버리는 그들. 보호해야 할 대상도 아니고, 공경해야 할 대상도 아닌 애매한 존재. 이도 저도 아닌 중년 여성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농담이 되어버리곤 한다.
한국어의 김여사,
그리고 영어의 캐런(Karen)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흔히 사용되는 ‘김여사’는 원래 운전이 서툰 중년 여성 운전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도로 위에서 실수를 저지르는 여성 운전자를 발견하면 사람들은 다짜고짜 ‘김여사가 또 한 건 했네!’ 하며 혀를 끌끌 찬다.
이제 운전대를 벗어나 일상 전반으로 그 의미가 확대됐다. 버스에서 큰 소리로 전화를 받거나 식당에서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는 등 교양 없는 행동을 하는 여자들은 싸잡아 ‘김여사’라고 불린다.
사실, ‘김여사’는 나이를 불문한 여성들이 모두 거부해야 마땅한 표현 아닐까? 도로에서건 도로 밖에서건 ‘김여사’라는 표현이 마구잡이로 사용된다면, 결국 모든 여자는 ‘이미 사고를 친 김여사’와 ‘언젠가 사고를 칠 미래의 김여사’로 나뉠 뿐이다.
김여사와 캐런의 몽타주가 100% 일치하는 건 아니다. 먼저, 이 둘을 대표하는 이미지부터 다르다. 김여사가 운전에 서투른 한국의 중년 여성을 상징한다면, 캐런은 날카롭게 눈을 치켜뜬 채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툭하면 “책임자 불러와!”를 외치는 중년의 백인 여성이다. 한 마디로, 백인 특유의 특권의식에 가득 차 다른 사람의 불편은 아랑곳없이 자신의 권리만을 강조하는 중년 여성이 바로 ‘캐런’이다.
캐런은 더는 핫한 이름이 아니지만 1950~1970년대에는 줄곧 상위 10위권에 들어갈 만큼 사랑받는 이름이었다. 그때 태어난 수많은 캐런이 현재의 백인 중년 여성을 대표하는 이름이 된 셈이다. 당시 함께 인기를 누렸던 ‘린다’, ‘수전’ 같은 이름과는 달리 ‘캐런’에 유독 진상의 이미지가 덧붙여진 건 미국 코미디언들의 탓이 크다. 제이 파로아(Jay Pharoah)는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어디에서나 문제를 일으키는 백인 여성에 “Kare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밝혔다. 또 다른 미국 코미디언 데인 쿡(Dane Cook)은 “Every group has a Karen(어디에 가든 캐런이 있어.)”이라는 노랫말로 대중의 머릿속에 ‘진상짓을 하는 백인 여자’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한 백인 여성이 부자 동네에 있는 어느 집 담벼락에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글귀를 적던 유색인종을 경찰에 신고한 일이 있었다. 남자는 자신이 그 집 주인이라고 항변했지만 여자는 유색인종이 그렇게 좋은 동네에 살 리가 없다며 막무가내로 남자를 신고했다. 여자는 결국 인터넷에서 신상이 탈탈 털리는 고통을 겪은 후 진심 어린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캐런’을 검색하면 상위에 노출되는 사례다. 여자의 행동은 분명히 잘못됐다. 그러나 이 사건의 본질은 ‘여자 대 남자’, 혹은 ‘중년 대 청년’의 갈등이 아니라 노골적인 인종차별이다. 이 상황을 “Such a Karen!(완전히 캐런 같은 여자로군!)”이라거나 “She sounds like a total Karen!(정말 캐런 같은 소리만 하네!)”이라는 말로 마무리하면, ‘중년 여자가 내뱉은 정신 나간 소리’쯤으로 치부되고 만다.
비슷한 예는 많다. 식당에서 갑질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개념 없는 고객’과 ‘식당’의 문제일 테고, 강변에서 바비큐를 하는 흑인을 신고하는 백인이 있다면 그것 역시 ‘노골적인 인종차별’ 문제일 뿐이다. (TMI: 이런 백인 여성은 BBQ Becky라고 불린다.) 옳지 않은 행위를 하는 사람이 여성이라고 해서 ‘김여사’라거나 ‘캐런’이라는 말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
김여사와 캐런은 분명히 누군가를 조롱하고 싸잡아 비난하는 말인데도, 별다른 비판 의식 없이 널리 사용된다. 재미있게도, 이런 표현을 쓰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말 속에 담긴 차별의 뉘앙스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비난받아야 할 행동도 있고, 조롱받아 마땅한 행동은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존재 자체 때문에 누군가의 농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무언가 잘못을 저지른 중년 여성을 마주친다면, 다짜고짜 ‘김여사’, 혹은 ‘캐런’이라고 그들을 비난하기보다 그들의 ‘행동’ 그 자체에서 잘못을 찾아내는 편이 옳지 않을까.
자매품으로, Karen의 남편한테도 이름도 있다.
어디에서나 남을 가르치려 들고, 자신의 권리만 챙기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는 중년의 백인 남성을 상징하는 이름.
그 이름은 바로 'K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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