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살이

아이의 눈물과 마주하는 법

by 김현정

아이의 눈물은 고군분투하며 육아 전쟁을 치르는 부모들이 풀어야 할 어려운 문제 중 하나다. 아이가 눈물을 터뜨리면 부모는 당혹감을 느낀다. 아이의 울음은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신호다. 육아를 하다 보면 맞닥뜨릴 수밖에 없지만 웬만해서는 만나고 싶지 않은 그런 신호. 아이의 울음소리가 높아지면 부모의 마음속에서도 불안감과 답답함이 함께 자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이가 도대체 왜 눈물을 흘리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심지어 아이의 눈물이 그저 나를 향한 비난으로 여겨질 뿐 눈물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아주 작은 단서조차 찾기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 이유 없이 우는 아이는 없다. 그저 너무 바쁘거나 너무 지쳐서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볼 만한 여유가 없는 탓에 아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냥 우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4년 동안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다가 다섯 살에 오빠가 된 T군은 엄마 뱃속에 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종종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어딘가가 아플 때조차 장난을 치고 깔깔대며 이야기할 정도로 웃음이 많은 아이였던 T군의 눈물은 '이유 없어 보이는,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절대로 무심코 넘겨서는 안 되는' 중요한 신호였다.


1. 아이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슬픔과 대면하라.

내 아이가 슬프다는 사실은 부모를 아프게 한다. 원래 인간이란 타인이 아무리 큰 고통을 견디고 있더라도 제 손에 박힌 가시를 더욱 아프게 느끼는 존재지만, 자식은 예외다. 아이와 함께 있는 공간에서 유리 조각에 발을 벤 엄마의 머리에는 '내 발이 아프다'는 생각보다 '유리엔 벤 사람이 나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에 고통을 느끼기보다 아이가 아프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먼저 느끼는 부모에게 아이가 슬퍼한다는 사실은 커다란 고통이다.


부모가 아이의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이유는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슬픔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으면 울고 있는 아이를 도울 수 없다. T군의 눈물은 당혹스러웠다. 4년 동안이나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동생 있는 친구들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동생의 존재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는 철없는 장밋빛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엄마 아빠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아이는 애써 동생의 존재를 환영하는 체 했지만 아이의 마음속에는 부모의 사랑을 나눠가져야 하는 현실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숨어 있었다.


좀 더 수월하게 넘어가기를 바랐지만 매일 밤 아이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은 나의 기대가 헛되었다고, 동생이 생긴다는 사실이 아이에게는 곧 슬픔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라고 나를 몰아세웠다.


2. 충분히 울게 하라

아이의 슬픔을 인정하자 "그만 울어"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동생을 보는 아이의 마음은 남편이 애지중지하는 첩을 보는 마음보다 더 고통스럽다는데 앞으로 사랑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아이에게 슬픔을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눈물을 거두라고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울지 마"라는 말은 "슬픈 마음을 감춰. 너 혼자 마음속으로 슬퍼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슬픈 마음을 드러내지 마"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미 슬픔으로 가득한 아이에게서 자신의 마음을 다잡기 위한 유일한 무기인 눈물까지 빼앗을 수는 없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울지 마", 혹은 "그만 해"라는 말은 아무런 위로도 주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어떤 효과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차라리 좀 더 많은 눈물을 권했다. "이제 그만 울어"라는 말에는 되려 반발하며 오히려 오랫동안 눈물을 흘렸던 아이가 "마음이 슬프면 그만 울고 싶을 때까지 울어"라는 말을 들은 후에는 잠깐 동안 한층 크게 흐느끼며 마음속의 슬픔을 힘껏 드러낸 다음 금세 울음을 그쳤다.


3. 자기연민을 경계하고 무한정 슬퍼하도록 내버려두지 말라

하지만 무한정 슬픔에 빠져 있도록 내버려두는 건 좋지 않다. 어른들도 자기연민에 빠져 마치 자신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온갖 궁상맞은 시나리오들을 자신의 상황에 뜬금없이 갖다 붙이곤 하는데 상상과 현실의 경계조차 모호한 어린아이들이야 오죽할까. 충분한 시간 동안 눈물을 흘리고 슬픔을 표출했다고 생각되면 아이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매일 밤 눈물을 흘리기 위해 갖은 이유를 찾아내는 T군의 얼굴에 웃음을 되돌려준 건 내기였다. 마음은 슬프고 어떻게든 울고 싶고, 울려니 뭔가 그럴듯하게 들리는 이유를 찾아야겠고. 이런 아이의 마음이 기쁨을 향해 방향을 틀 수 있도록 '하루 동안 있었던 일 중 가장 기뻤던 일을 세 가지씩 이야기하고 가장 기쁜 목소리로 가장 멋진 일을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뽀뽀를 해주기'로 약속을 했다. 한 동안 잠이 들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던 T군은 서서히 슬픔을 몰아내고 기뻐해야 할 이유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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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부모들이 아이에게 '눈물을 흘릴 자유'를 주지 않는 것은 '아이의 슬픈 마음'보다 '아이의 눈물을 보는 것이 힘든 어른의 마음'을 앞세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이를 '내가 해내야 하는 과제', 혹은 '내가 완성해야 할 그림' 같은 대상으로 여기기보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함께 커 나가야 할 존재'로 여기면 아이의 눈물과 마주하기가 좀 더 쉽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