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살이

지숙경 팝니다

by 김현정

대문 앞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힐끗 종이를 보니 대단한 사연이 적혀 있을 거라고 짐작하기에는 글씨가 너무 허술했고 글자 수도 몇 안 돼 보였다. 종이에는 단 한 줄의 글이 적혀 있었다.


'지숙경 팝니다.'


웬 정신 나간 사람이 붙여 놓았을 거라고 간단히 무시하고 넘기기에는 삐뚤빼뚤 서툰 글씨가 너무도 진실돼 보였다. 종이를 손에 쥐고 집안으로 들어가 엄마를 불렀다.


"엄마, 지숙경이 누구예요?"

"지숙경? 그게 누구지? 갑자기 그건 왜?"


지. 숙. 경.


엄마의 머릿속에서도 퍼뜩 떠오르지 않는 낯선 이름이었다. 도대체 누가 이토록 기괴한 내용의 쪽지를 남의 집 대문 앞에 붙여 놓은 건지 찾아낼 수 있는 단서는 단 하나, 쪽지에 적혀 있는 이름뿐이었다. 그 어떤 공포나 불안의 흔적도 배어 있지 않는 말간 종이는 왠지 우스웠다.


잠시 후, 엄마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지숙경. 생각해 보니 옆집 딸 이름이네. 그 집 아들이 적은 건가 보다."


두세 살 많은 누나가 몹시 마뜩잖은 꼬마가 스케치북을 펼쳐 들고 누나를 팔아버릴 테니 제발 좀 사 가라는 호소문을 짧고 간결하게 적은 다음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남의 집 대문에 정성 들여 붙이는 모습을 상상하니 나도 실없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나보다 몇 살쯤 어렸던 옆집 딸은 이제 엄마가 되었고, 남몰래 누나를 팔아치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을 게 뻔한데 굳이 꼴 보기 싫은 누나를 사 줄 사람이 나타나기도 전에 오고 가는 식구들 눈에 띌 게 뻔한 이웃집 대문에 판매글을 내걸었던 옆집 아들도 이제 어른이 되었다.


동생 한 번 잘못 건드렸다가 하마터면 팔려갈 뻔한 누나와 크레파스로 한 자 한 자 마음속의 울분을 토해낸 동생이 우여곡절을 견뎌내고 이제는 출생의 비밀 때문에 맺어지지 못하는 드라마 속 흔하디 흔한 이복남매들처럼 애틋한 우애를 과시하고 있는지,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톰과 제리 같은 사이가 되어 여전히 가능하면 안 보고 살 궁리를 하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지금 우리 집에도 그런 남매가 있다. 아직 두 살밖에 안 된 동생이야 그저 자기보다 한참 크고 세계 최고의 슈퍼 영웅처럼 자기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척척 해내는 오빠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놀아달라고 보채기에 바쁘지만 무려 4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그 어떤 방해도 없이 혼자 사랑을 독차지해 왔던 오빠의 마음은 좀 다르다.


다섯 살에 동생을 얻은 아이는 금세 깨달았다. 동생을 예뻐하는 모습을 보이면 칭찬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물론 동생이 꿈뻑꿈뻑 눈을 뜨고 손발을 허우적댈 뿐 기지도 못하던 시절부터 오빠는 동생을 신기해했다. 하지만 신기한 마음에 자꾸만 다가와서 동생을 안아보고 만져보는 것과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으로 동생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


T군은 몇 살 어린 동생을 향한 알 수 없는 이끌림과 동생을 다정하게 보살필 때마다 되돌아오는 어른들의 상냥하고 따뜻한 칭찬의 말에 사로잡혀 대개 Y양을 부드럽게 대한다. 특히, 엄마나 아빠가 마치 T군이 듣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이야기가 전혀 아닌 듯한 말투로 Y양에게 오빠가 얼마나 멋지게 행동을 하고 있는지 칭찬을 늘어놓으면 T군은 기뻐서 만세를 부르고 싶지만 애써 웃음을 참을 때 나오는 특유의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한층 다정한 오빠가 된다.


그런 T군도 언젠가 딱 한 번 진심을 드러낸 적이 있다. 동생이 생긴 이후 서러운 마음에 종종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T군에게 몇 번인가 "동생이 없었으면 좋겠어?"라고 물어보았다. 옛날이 그립기야 했겠지만 마음 한 편에 동생을 향한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 T군의 대답은 언제나 "아니오"였다. 하지만 애써 만들어놓은 블록을 무심코 무너뜨린 데 이어 Y양이 갖은 불편을 초래하자 언제나 동생에게 친절했던 T군이 울음을 터뜨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엄마, 동생이 다시 엄마 뱃속으로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모든 장난감을 독차지하고 원하는 대로 하고픈 대로 살아온 지난 시간을 향한 애타는 갈망이 담겨 있는 한 마디였다.




자녀가 많아지면 그만큼 부모의 사랑이 커진다고들 한다. 둘째가 생기면 첫째에게 주었던 사랑을 반으로 뚝 떼어서 둘째에게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첫째에게 주었던 만큼의 사랑이 또다시 생겨나 둘째를 향하게 된다고.


맞는 말이다. 둘째가 생겼다고 해서 첫째에 대한 사랑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건 원할 때 엄마의 두 팔에 안길 수 있었던 첫째의 입장에서 보면 동생은 엄마의 사랑을 나눠가져야 하는 경쟁자일 수밖에 없다. 하나였던 아이가 둘로 늘어나면, 설령 엄마의 사랑이 두 배로 커졌다 하더라도 엄마가 아이를 바라보는 시간은 둘로 쪼개지고 엄마가 아이를 품어주는 횟수 역시 둘로 나눠진다.


오빠니까, 언니니까 무조건 양보하라는 말은 폭력이다. 이 세상의 모든 언니와 오빠들은 이미 자신의 우주인 엄마의 사랑을 동생들에게 절반쯤 양보하고 있는 셈이다. 더 많은 아이를 낳는 건 부모의 선택일 뿐 아이들은 부모의 결정으로 생겨난 동생이라는 존재를 그저 주어진 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러니, 설혹 오빠나 언니가 동생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울더라도, 혹은 동생이 자신보다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마치 자신에게는 모든 것을 독차지할 생득권이 있는 것처럼 구는 언니나 오빠를 내다 팔고 싶어 하더라도 겉으로 드러나는 뾰족한 마음을 무작정 질책하기보다 그 밑에 감춰진 상처를 보듬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