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엄마살이

수영이 싫어요

by 김현정

10월 한 달 동안 캐나다에서 지내면서 아이는 원 없이 놀았다. 단풍으로 아름답게 물든 블루마운틴 리조트로, 아이들의 천국인 워터파크 울프랏지로, 토론토 근교의 놀이동산 원더랜드로, 사이언스 센터로, 나이아가라로 신나게 돌아다니며 아이는 그야말로 인생을 즐겼다. 아이와 한 달 동안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붙어 있다 보니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혹은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정확하게는 몰랐던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는 동네 놀이터가 됐건, 키즈카페가 됐건, 수영장이 됐건 어느 곳에든 내려놓기만 하면 그 누구보다도 즐겁고 신나게 뛰어놀았다. 하지만 무언가를 새로 시작해야 하거나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는 순간이 되면 가장 먼저 "싫어요!"라는 말을 내뱉었다. 무조건 하고 있던 걸 계속하겠다고 고집을 부리지만 막상 새로운 상황에 놓이면 금세 푹 빠져들어 마음을 빼았겼다. 정확한 이유야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아이가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새로운 모험이나 낯선 환경을 두려워하고 겁이 많은 게 아닐까 싶었다.


단풍이 곱게 내려앉은 블루마운틴 리조트


한 달 동안 사촌들과 함께 살면서 몇 번 물놀이를 할 기회가 있었다. 수영을 할 때도 아이는 일단 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하지만 사촌들이 모두 수영을 하겠다고 나서면 같이 놀고 싶은 마음에 마지못해 수영복을 갈아입고서 내키지 않는 얼굴로 따라나섰다. 사실 아이는 그동안 물놀이를 할 때마다 튜브나 구명조끼를 풀장착하고 엄마나 아빠를 보디가드로 세워놓곤 했었다. 수영장에 데려다 놓으면 물 만난 인어공주가 돼 답답하다며 구명조끼도 벗어던지고 물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 자유자재로 헤엄치는 J양과는 달리 아이는 구명조끼를 입고서도 아빠 손을 놓을 줄을 몰랐다.


물 속에 있는 동안에야 그저 아빠 등에 올라타 물장구를 치고 깔깔대느라 수영을 못하는 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서건 멋지게 수영하는 누나가 내심 부러웠는지 아이는 한국에 돌아오면 열심히 수영을 배워보겠다고 철석 같이 약속을 했다.


캐나다에서 했던 약속을 상기시키며 수영을 배우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신이 나서 흔쾌히 배워보겠다고 답했다. 수영 잘 못 하는 게 컴플렉스라는 남편의 부추김에 이리저리 전화를 돌린 끝에 인기 만점인 어린이 전용 수영장의 6세 반 자리를 하나 얻어냈다.


하지만 수영 강습이 시작되는 첫날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애매한 강습 시간 때문에 일찌감치 저녁상까지 차려가며 수영 뒷바라지 준비를 마쳤지만 좋아하는 반찬이 가득한 저녁 식탁에 앉아 행복하게 식사를 마친 아이는 수영하러 가기 싫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출발해야 할 시간은 다가오는데 아이는 자꾸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수영을 하지 않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회유와 협박에 못 이겨 수업에 들어간 아이는 물이 무서운지 펑펑 눈물을 흘렸다.

두 번째 수업은 그나마 나았다. 집에서 나가야 할 시간이 가까워지자 아이는 스트레스가 머리 끝까지 뻗쳤는지 가기 싫다며 소리를 꽥꽥 질러댔다. '이렇게까지 하기 싫다는 아이를 스트레스까지 줘 가며 시킬 건 뭔가' 하는 생각과 '그래도 일단 시작한 걸 너무 쉽게 포기하도록 내버려두면 아이가 앞으로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쉽게 포기해버리는 건 아닐까'하는 우려가 교차했다. 하지만 수영 수업을 마친 아이는 해맑은 얼굴로 일주일에 두 번이 아니라 매일 수영을 하면 좋겠다고 달뜬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다시 세 번째 수업이 있는 날이 되자 또다시 반복이었다. 수영 가기 전에 샌드위치가 먹고 싶다는 주문을 미리 받아두었다가 정성 들여 영양 듬뿍 샌드위치까지 대령했건만 샌드위치를 냠냠 먹어치운 아들은 또다시 먹튀 모드로 들어갔다. 가기 싫다고 버틸 때마다 장난감을 하나씩 대령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칭찬 스티커를 남발할 수도 없는 데다 "수영하기 싫다"는 아이의 목소리에 왠지 모를 두려움이 섞여 있는 것만 같아 긴 얘기 끝에 아이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무언가를 너무 쉽게 포기하게 내버려둔 건 아닌가'라는 의문도 여전하고, 오늘의 결정이 앞으로 아이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조금은 걱정이 되지만 엄마 아빠의 도움 없이 수영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자유로워진 아들의 얼굴은 한층 편안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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