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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Jan 23. 2016

꿈이 없는 숟가락

사람들은 말한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금수저를 이길 수 없다고. 또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내 입에 들어 있는 수저가 흙수저인지, 동수저인지, 은수저인지, 금수저인지. 장난 같았던 수저 타령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가 싶더니 이제는 색깔별로 나눈 수저를 떡하니 정렬해놓고 부모의 소득과 재산을 기준으로 내 입에 물린 수저가 어떤 색깔인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수저계급' 도표까지 등장했다.


수저계급론이 이토록 커다란 호응을 얻는 것은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맹신해왔던 '능력주의 신화'가 이제 더이상 아무런 효력이 없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전설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부모의 재력과 지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실과 노력만으로는 이 사회에서 발을 딛고 설 자리를 찾기조차 어려운 세상이 되어버린 탓에 청춘들은 이제 꿈을 꾸지 않는다. 아니 꿈이 아예 사라져버린 건 아니지만 하나같이 '공무원'이 되겠다는 그들의 빛바랜 꿈은 진짜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처량하고 서글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이 한 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기 힘든 사회, 실패 역시 값질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다름과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 돈 좀 있는 사람들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보다 갑질을 하려 드는 사회,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가난을 비웃는 사회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슬프게도.


그러나 수저계급론이 화두로 떠오를 수밖에 없는 시대적, 사회적 상황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수저 타령이 자신의 문제를 부모에게 떠넘기기 위한 수단이 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내가 당면한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릴 핑계거리로 숟가락이 당첨된 것이다.  


돈으로 서열이 매겨지고 돈벌이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가치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하찮은 감상으로 치부되는 이 시대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한 차원 높은 범사회적인 명제는 논외로 하고 우리 개개인의 차원에서 보면 수저계급론은 '이렇게 별 볼 일 없는 존재로 태어났으니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다'는 운명론적인 패배감만 더욱 강화시킬 뿐이다. 그러니 비록 꿈을,  희망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더라도 한 걸음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려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 입으로 들어온 수저에 얽매여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가 잿빛일 거라고 지레짐작해서는 안 된다.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굳이 금수저 대신 흙수저를 택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금수저로 먹는다고 밥이 더 달지는 않다. 게다가 우리가 동경하는 금수저 위에는 또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다이아몬드 수저가 있을 테다.


우리가 부모의 고단하고 거룩한 삶을 수저 색깔 따위로 단정짓는다면 우리의 아이들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정성 역시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준 수저의 색깔에 따라 평가되고 순위가 매겨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줘야 할 것은 번짝이고 값비싼 숟가락이 아니라 어떤 색이 됐건 주어진 숟가락으로 최선을 다해 밥을 먹고 설혹 숟가락이 부러지더라도 흔들림없이 나아갈 수 있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보석처럼 빛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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