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형이 형이면 지각왕도 왕이다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기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1960년대의 참여시인 신동엽은 겉모습을 대변하는 껍데기를 버리고 본질과 실체를 상징하는 알맹이만 남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껍데기는 가라>가 발표된 시대적, 역사적 배경에 집중하면 시인이 이야기한 껍데기와 알맹이의 의미가 한국이라는 제한적인 지역, 4.19 혁명과 동학 혁명의 정신, 한민족이라는 특정 민족에 국한된다. 하지만 시대적인 맥락을 넘어 좀 더 포괄적인 의미에서 바라보면, 이 시는 껍데기의 부질없음과 알맹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겉모습에 따라 판단을 달리하는 모든 사람에게 경종을 울린다.
하지만 껍데기의 색깔이 사람들의 생각이 유달리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다름 아닌 인간의 피부가 그렇다.
물론 우리에게는 그들의 땅을 점령해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뒤흔들며 착취하거나 멀쩡히 잘살고 있는 사람들을 강제로 배에 실어 다른 대륙으로 데려다 놓고는 노예로 부리며 그들의 인간성을 말살한 역사가 없다. 하지만 우리 역시 피부색이 검은 사람을 열등하게 여기는 백인들의 우월주의 시선을 그대로 흡수해 마땅한 근거도 없이 백인은 벽안의 신비로운 존재로 숭상해 마지않고 흑인은 내키는 대로 무시해도 되는 존재로 여겨왔다.
'흑형'이라는 표현에는 존중이 담겨 있다는 항변에도 무색하게 정작 그렇게 불리는 이들은 '흑형'을 거부한다. 오랫동안 피부색을 이유로 차별받아온 이들이기에 흑인들은 긍정이건 부정이건 피부색을 근거로 한 어떤 표현도 사양한다. 한국 최초 흑인 혼혈 모델 한현민은 '흑형'을 듣기 거북한 단어로 꼽았고 콩고 출신 흑인 방송인 조나단은 흑인들에게 '흑형'은 한국인이 느끼는 '조센징'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한국에서 이름난 '흑형'들의 '흑형' 거부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국가인권위는 2020년에 이미 중국인을 비하하는 '짱개'와 함께 흑인을 가리키는 '흑형'을 차별적인 요소가 다분한 혐오 표현으로 지정했다.
"검어서 검다고 하는데 죄가 되나요?"라고 묻는다면 "죄가 됩니다"라고 답할밖에. 피부가 검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아온 사람들에게, 세상이 정해 놓은 '살색(현재는 살구색으로 변경)'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피부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오랫동안 고통받아온 사람들에게 검은 피부를 그들을 정의하는 잣대로 들이미는 표현은 폭력일 뿐이다. 친근하게 높여 부르는 '형'이라는 말이 하나 붙었다고 해서 '흑형'이 환영받는 말이 될 수는 없다. 세상에는 친근함으로 포장된 차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형'도 '형'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에게 '흑형이 형이면 지각왕도 왕'이냐고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