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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Mar 12. 2024

슬픈 흑형

흑형이 형이면 지각왕도 왕이다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기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1960년대의 참여시인 신동엽은 겉모습을 대변하는 껍데기를 버리고 본질과 실체를 상징하는 알맹이만 남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껍데기는 가라>가 발표된 시대적, 역사적 배경에 집중하면 시인이 이야기한 껍데기와 알맹이의 의미가 한국이라는 제한적인 지역, 4.19 혁명과 동학 혁명의 정신, 한민족이라는 특정 민족에 국한된다. 하지만 시대적인 맥락을 넘어 좀 더 포괄적인 의미에서 바라보면, 이 시는 껍데기의 부질없음과 알맹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겉모습에 따라 판단을 달리하는 모든 사람에게 경종을 울린다.




누군가 당신에게 그 어떤 정보도 없이 하얀 상자와 검은 선물 상자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하얀 상자?

검은 상자?


실제로 상자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철저히 개인적인 취향이나 순간적인 충동에 따라 선택을 하게 된다. 하지만 눈앞에 두 개의 상자가 놓여 있는 상황에서 하나를 고르는 사람이 오직 색깔을 이유로 결정을 내리는 일은 드물다. 대개는 색깔 그 자체보다는 상자의 크기, 포장재의 재질, 포장 상태 등 상자 속에 들어 있는 알맹이를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여러 정보를 바탕으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출처: Pixabay


하지만 껍데기의 색깔이 사람들의 생각이 유달리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다름 아닌 인간의 피부가 그렇다.


"와~ 저기 흑형 몸 좀 봐!"

"저 흑형 운동 신경 장난 아닌데?!"

"역시 흑형들이 노래를 잘한다니까?"


사람들이 무심코 내뱉는 이런 말에는 피부색이 짙은 사람들을 향한 숭배와 경외심이 담겨 있다. 흑형이라는 단어가 차별적이라는 지적에 상대를 우러러보는 마음을 담아 '형'이라는 단어를 붙인 표현인데 어떻게 차별이 될 수 있냐고 항변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흑형'은 애초에 흑인의 뛰어난 신체 조건이나 능력을 우러러보는 의미로 인터넷상에서 사용된 단어다. 


하지만 누군가를 가리키는 지칭이나 상대를 부를 사용하는 호칭이 널리 용인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먼저, 해당 표현이 대상을 적절하게 묘사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일단, '흑형'은 흑인을 가리키는 '흑'과 존칭의 표현인 '형'이 결합된 표현이니 첫 번째 조건은 통과다. 


그다음으로 생각해봐야 할 것은 불리는 대상이 표현을 환영하는가다. 서서히 인종 구성이 다양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전체 국민의 절대다수가 한민족인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우리 한국인들은 자신이 백인보다는 덜 차별적인 시선으로 흑인을 대한다고 믿는다. 


물론 우리에게는 그들의 땅을 점령해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뒤흔들며 착취하거나 멀쩡히 잘살고 있는 사람들을 강제로 배에 실어 다른 대륙으로 데려다 놓고는 노예로 부리며 그들의 인간성을 말살한 역사가 없다. 하지만 우리 역시 피부색이 검은 사람을 열등하게 여기는 백인들의 우월주의 시선을 그대로 흡수해 마땅한 근거도 없이 백인은 벽안의 신비로운 존재로 숭상해 마지않고 흑인은 내키는 대로 무시해도 되는 존재로 여겨왔다. 


'흑형'이라는 표현에는 존중이 담겨 있다는 항변에도 무색하게 정작 그렇게 불리는 이들은 '흑형'을 거부한다. 오랫동안 피부색을 이유로 차별받아온 이들이기에 흑인들은 긍정이건 부정이건 피부색을 근거로 한 어떤 표현도 사양한다. 한국 최초 흑인 혼혈 모델 한현민은 '흑형'을 듣기 거북한 단어로 꼽았고 콩고 출신 흑인 방송인 조나단은 흑인들에게 '흑형'은 한국인이 느끼는 '조센징'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한국에서 이름난 '흑형'들의 '흑형' 거부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국가인권위는 2020년에 이미 중국인을 비하하는 '짱개'와 함께 흑인을 가리키는 '흑형'을 차별적인 요소가 다분한 혐오 표현으로 지정했다. 


"검어서 검다고 하는데 죄가 되나요?"라고 묻는다면 "죄가 됩니다"라고 답할밖에. 피부가 검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아온 사람들에게, 세상이 정해 놓은 '살색(현재는 살구색으로 변경)'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피부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오랫동안 고통받아온 사람들에게 검은 피부를 그들을 정의하는 잣대로 들이미는 표현은 폭력일 뿐이다. 친근하게 높여 부르는 '형'이라는 말이 하나 붙었다고 해서 '흑형'이 환영받는 말이 될 수는 없다. 세상에는 친근함으로 포장된 차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형'도 '형'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에게 '흑형이 형이면 지각왕도 왕'이냐고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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