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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율 작가 Aug 09. 2020

충동적인 밤의 전말 - 김이율

충동적인 밤의 전말

 

하루쯤은 이래도 되는데 뭐가 그리 불안하지 결국 밤에 노트북을 켰다. 언제부턴가 내 머릿속엔 글이 곧 밥이라는 등식이 자리 잡았다. 밥값을 하지 않으면 하루가 찜찜하고 마무리가 잘 되지 않는다. 백 원어치라도 써야지 하는 마음에 키보드를 두드려보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다. 


글이 나올 리 만무하다. 

보글보글 꿇는 물이 주전자 뚜껑을 들썩이게 하듯 가슴 속에 감정과 생각이 층층이 쌓여 더 이상 감당이 안 될 때, 주체할 수 없을 때 그때 자연스럽게 분출이 되어야 제대로 된 글이 나온다. 그런데 이렇게 빨래 짜듯 머리만 쥐어뜯는다고 나오겠는가. 결국 한숨만 내쉬고 글쓰기는 접는다. 쉴 때는 확실히 쉬어야 하는데 괜한 불안과 미련 때문에 마음만 심란하고. 이런 날이면 아무 생각 없이 잠을 자는 게 제일이지만 낮에 길게 자는 바람에 잠도 오지 않고. 


TV 앞에 앉는다.

 70여 개나 되는 채널을 아무리 눌러봐도 볼만 한 게 하나도 없다. 처음부터 다시 끝번호까지 눌렀지만 여전히 볼만 한 게 없다. 그러다 내 눈을 고정시키는 채널 하나 있었다. 바로 홈쇼핑 채널. 탄탄한 복근의 남자와 몸매 좋은 여자 그리고 쇼호스트의 착착 달라붙는 입담이 나를 거기에 빠져들게 했다. 점점 줄어드는 구매시간. 지금 이 순간 내지르지 않으면 바보가 될 것 같은 묘한 기분까지. 쇼호스트가 다급한 목소리로 채 10분도 남지 않았다고 다그쳤고 덩달아 내 마음도 다급해졌다. 그래, 이참에 살도 좀 빼고 새로워지자. 이참에 한 번 10kg 감량에 도전하자. 1분을 남겨두고 극적으로 런닝머니 자동주문번호를 눌렀다. 


며칠 후, 런닝머신이 도착했다. 하루 열심히 달렸다. 그 다음 날도 열심히 달렸다. 그 다음, 다음 날부터는 내가 왜 달리는가 싶었다. 또 며칠 후, 런닝머신을 바라보니 그 위에 빨래가 걸려 있었다.

 

빨래걸이로 전락한 런닝머신을 보며 내 충동적인 행동에 대해 원망하며 후회한다. 끓어오르는 그 감정이 자연스럽게 넘쳐날 때, 그때 행해야 함이 옳다는 것을, 모든 것들이 충분히 준비가 되어야 비로소 성과를 이뤄낸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닫는 밤이다.


- 김이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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