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소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100유로만 가져가려는데, 직원이 은행에 200유로와 500유로만 있다고 한다. 정말 황당했다. 은행 시스템이 어떤 지는 모르지만 미리 100유로를 신청을 해서 가지러 갔는데 없다고 하니 기다린 시간만큼이나 언짢았다. 버스를 타고 다른 동네의 신한은행에 가서 유로를 찾고 나니 이제 조카를 데리러 갈 시간이었다.
마중에 늦어 뛰어갔다. 은행일만 아니었으면 처음으로 조카가 운동회에서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조카는 운동회가 아주 재미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아침에 챙겨 준 물통이 보이지 않는다. 오늘로 두 번째. 이틀 연속으로 잃어버려서 다시 교실로 돌아가 물통 두 개를 모두 되찾고 나서야 집으로 향했다.
아침에 보내 놓은 번역이 좀 시원찮아서 수정하여 다시 보내 놓고, 여행자 보험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취소 후 새로 들었다.
이제 오후 4시 반
조카와 개조카도 데리고 집 근처 도서관에 갔다. 구름이와 난 밖에서 산책하며 기다리고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인데 인간 몸, 금융 등 주제를 망라한 도서를 빌려 돌아온 조카와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 가방에 잠금 열쇠를 채우고 짐 싸는 것이 최종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저녁을 먹고 씻은 후 집을 나설 차례이다.
약 새벽 1시 비행기니까 공항에 밤 10시까지 가면 좋으련만, 늦은 시간에 다니는 버스가 없어 저녁시간 버스를 타야 했다.
조카가 조금 컸나 보다.
내가 외국에 나가는 것이 처음이 아니라서 아무렇지 않아 할 줄 알았다.
이전에는 내가 어디 가도 운 적이 없었는데 인사를 할 때 현관에서 엉엉 운다.
나도 조금 울컥해졌다.
개조카는 다시 산책 가는 줄 알고 내 무릎 주변에서 팡팡 점프했다.다시 울컥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공항버스를 타러 갔다.
버스 타러 가는데 다시 한번 울컥했다.
언제 처음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산티아고 순례길을 드디어 가고 있다는 것이 벅차기도 하고 설레고 조금 두렵기도 했다.
늦은 저녁, 정류장에서 30분쯤 혼자 공항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는 도착 예정 시간보다 10분쯤 늦게 왔다.
공항에 도착하니 잠이 몰려와 내 키보다 긴 의자에서 누워 체크인 시간이 되길 기다렸다.
카운터가 열리고, 체크인을 하면서 직원분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놀라운 사실을 들었다.
난 9월과 10월 산티아고 길을 다 걸은 후, 유럽 몇몇 곳을 정해 장기 체류를 생각할 계획이 있었다.
일단은 스페인 아래에 있는 포르투갈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유럽은 쉥겐 협약에 가입한 국가들 사이에서는 6개월 이내에 총 90일만 체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쉥겐조약이란 말을 여러 번 들어봤지만 정작 나와 관련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크게 염두하지 않았던 것이다.
체크인 후 언니에게 전화하여 그 장대한 계획이 한 번에 전면 수정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나니 조금 허탈했다. 그리고 그제야 궁금했던 비밀이 풀린 듯했다.
내심 산티아고를 걸을 때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걸어 넘어갈 텐데 출입국 사무소가 국경 어딘가 있다던지, 피레네 산맥을 넘어갈 때 여권에 도장은 어떻게 찍더라 하는 이야기를 못 봤기 때문에 계속 궁금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