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ew Sep 14. 2023

두 번째 산티아고, 서른 번째 날

Arzua – A Rua 18.04km

2023. 5.13 토요일


Arzua 마을은 북쪽길의 마지막 마을이자 프랑스길과 북쪽길이 만나는 지점으로 순례자들이 북적북적한 큰 마을이다. 어제는 너무 피곤해서 알베르게에 도착한 후 밖에 아예 나가지를 않았다. 늦은 점심 겸 저녁은 갖고 있는 비상식량으로 해결하였다. 숙소에서 오랜만에 다시 한국분들을 만났다. 식탁에서 일기를 쓰고 있었는데 "어제도 뭘 열심히 쓰시던데, 호호"하고 인사를 건네주셨다. 아마 프랑스길에서 오신 것 같았다.


이번 북쪽길을 걸을 때 한국사람을 세 번 정도 마주친 것 같다. 처음은 Boo에서 젊은 한국인 여성분과 같은 숙소에 머무른 적이 있었다. 방에 들어갈 때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는데, 나를 보고 따로 인기척을 하지 않아 조용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며 나도 따로 인사를 건네진 않았었다. 두 번째는 Gueme에서 한국인 부부를 만나 저녁 식탁에서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눴던 때고 그리고 오늘 숙소에서이다. 젊은 한국인 부부와, 혼자 계실 때 주인분과 스페인어로 유창하게 말씀하시고 스페인 사람들과 동행하시던 아저씨, 이렇게 3명이 숙소에 있었다.


아저씨는 스페인말을 하셔서 처음엔 한국인인지 긴가민가 했는데, 내가 저녁을 먹고 있을 때 갑자기, “아유, 언제 밥하고 김치 먹어봐요?”하고 말을 걸어오셔서 “하하.” 하고 멋쩍게 웃으며 속으로 한국사람이셨구나 했더랬다. 그리고는 언제 출발했는지 물어보시길래 30일 전 이룬에서 출발했다고 하니 북쪽길에서 온 순례자를 처음 보신다고 "아이구, 멀리서 오셨네요" 하신다.


그러고 보 북쪽길에서 온 사람은 나 혼자였는지 4주 동안 간간히 오고 가며 보던 사람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아 갑자기 카미노 순례길에 있는 느낌보다는 마치 다른 나라에 있는 것처럼 낯선 느낌이었다.


오늘 아침은 느지막이 8시쯤 일어났다. 체크아웃은 9시. 어제 남은 저녁을 아침으로 해결하고 천천히 짐을 싸고 알베르게를 나왔다. 제 오후에 알베르게에 바로 들어와서 아직 둘러보지 않은 마을에는 아침부터 많은 순례자들로 북쩍였다.

Arzua 광장 옆 성당, 들어가서 도장도 찍고 기도를 했다.

건물들에는 알베르게 표시가 되어 있는 사립 알베르게가 매우 많았고 여행사 에이전시, 레스토랑 그리고 거리 곳곳의 순례길 장식물까지, 온 거리가 산티아고 순례자들을 위한 맞춤 마을처럼 보였다. 마을 광장을 지나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에 있었는지 신기할 정도로 광장은 사람들이 꽉 차있었다. 작년에도 이렇게 많은 순례자들은 본 적이 없었는데 프랑스길과 북쪽길에서 온 순례자들, 그리고 오늘이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단체 순례자들까지 함께 마을에 순례자로 가득했다.

길에서 만난 도마뱀. 만지지 말라고 써있는 색깔이다.

오늘 길은 사람들이 많아 길을 줄지어 는 경험을 하였다. 작년 프랑스길에서는 Arzua를 통과하여 16m를 더 가면 있는 Santa Irene에서 머물렀었다. 아침에 Arzua 알베르게를 나오며 작년에 걸었던 길이 기억날 줄 알았는데, 마치 처음 걸어보는 길처럼 새롭고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여길 걸었던 곳일 텐데 하며 걷다 보니 와이파이가 잡혔다. 작년 Santa Irene에서 머물렀던 공립 알베르게가 앞에 보였다. 이 공립 알베르게는 특이하게도 마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티아고 순례길과 자동차 도로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 숙소 앞을 지나고 있는데 어느새 와이파이가 연결되었는지 조카의 부재중 통화가 떠있었다.

Santiago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쉬어갈 겸 숙소 앞 벤치에 잠시 앉아 조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식당에서 순두부를 먹다 통화를 하러 나왔다는 조카에게 오랜만에 영상 통화를 하며 도로와 허허벌판 밖에 보여줄 것이 없었던 나는 앞에 줄지어 걸어가고 있는 순례자들을 보여줬다. 조카는 나 같은 사람들이 저렇게 많이 있다는 사실과 모두들 배낭을 메고 열심히 걸어가는 것이 신기했는지 자기도 커서 저렇게 멀리 걸어도 다리가 아프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장래희망을 말하며 통화를 마쳤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오래 걷는 사람들 무리에 합류했다.

풀숲에서 낮잠자는 길고양이

나무 숲 사이를 지나 나무판에 마을 이름 A Rua가 쓰여 있는 곳을 지나 조금 더 걸으니 오늘의 숙소가 나왔다. 오늘 머무르는 동네는 작은 마을이지만 북쪽길과 프랑스길이 만난 후 약 4시간 걸은 후 처음으로 머무를 만한 알베르게가 나오는 지점이다 보니 작은 마을에서는 보기 힘든 Dia가 들어서 있고 크고 작은 레스토랑과 바가 즐비해 있었다.


체크인을 하는데 사장님께서 숙소와 마트까지 3km 거리여서 저녁에 장을 보러 가는 사람들을 모아 Dia까지 차를 태워주신다고 하여 처음으로 차를 타고 장을 보러 다녀왔다. 3km는 왕복 1시간 30분 정도 걸어야 하는데 차로 10분 만에 다녀오니 잊고 있던 자동차의 위대함을 깨닫는다.


가는 길에 사장님은 2019년 알베르게를 열었는데 하필 코로나로 인해 작년까지 정말 어려웠었다고 하시며 올해는 꾸준히 만실이라 너무 행복하다고 하셨다. 어느새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린 ‘Becuase of Covid’. 코로나로 시작하는 짧고 간단한 말이지만 사장님의 얼굴엔 지난 3년간의 어려움이 눈빛과 입가의 주름진 미소로 다 느껴지는 듯했다. 지난 3년은 우리 모두에게 잃어버린 시간이자 버텨내야 했던 힘든 시간이었으리라.


마트까지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사장님은 한국인 순례자들을 제일 좋아한다면서 누군가가 선물해 준 열쇠고리를 보여주셨다. 한복을 입고 있는 작은 사람 모형의 열쇠고리다. 카미노를 걷기 전 신중하게 꾸렸을 배낭에 나중에 만날 인연을 위해 한국에서부터 미리 선물을 준비해 오는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깊은 것인지.


마트 도착하여 내일은 일요일이기에 미리 음식까지 장을 봤다. 바케트와 고다 치즈, 크림치즈, 가루 치즈, 샐러드, 계란, 견과류. 매일 먹는 것과 가짓수는 똑같지만 내일을 위해 개수를 2개씩 샀다. 사고 보니 스페인에서 치즈를 잔뜩 먹고 있구나 새삼 깨달았다.


돌아오니 체크인할 때보다 순례자들이 매우 많아졌다. 침대 개수를 물어보니 43개인데 오늘도 만실이라고 하셨다. 나처럼 마트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은 음식을 배달시켜 먹거나 숙소 주변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는 모양이었다. 약 40여 명의 순례자들이 내일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를 걷기 전 마지막 밤을 나름의 방법으로 각자의 전야제를 보내는 중이다.

역시나 먼저 한 입 베어문 바게트와 삶은 계란을 얹은 샐러드

씻은 후 조금 쉬었다가 낯선 프랑스 길에서 온 순례자들 사이에서 저녁을 준비하였다. 부엌에 들어가 그릇을 꺼내 바게트를 올리고 그 위에 크림치즈를 펴 바른 후 치즈바게트가 보이지 않게 얹은 후 바게트 위아래가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샐러드를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그리고 샐러드와 함께 먹으려고 계란을 삶는 동안 샌드위치를 한 입만 먹으려 했는데 계란이 다 삶아졌을 땐 샌드위치는 원래 없었던 것처럼 끄트머리만 남았다. 다 삶아진 계란을 샐러드 위에 얹고 치즈 가루를 뿌린 후 마치 이것이 오늘의 유일한 저녁인 것처럼 샐러드 그릇을 들고 나와 식탁에 앉아 먹으며 내일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콤포스텔라를 하루 앞둔 날은 기분이 오묘하다. 작년엔 걸으면서 눈물이 났는데 내일은 어떨지 걸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두 번째 산티아고, 스물 여섯째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