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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효 Dec 12. 2015

사람이 낯선 아이

그냥 아는 사람 이야기 2

한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는 사람들을  낯설어합니다. 물론 낯도 심하게 가립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낯을 가리는 것과는 조금 다른 낯섦이 이 아이에게는 있습니다.


이 아이가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아이는 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합니다.

'이 사람을 자주 볼까?', '이 사람은 오늘 한 번 보면 다시는 안 볼 사람인데' 등등

그리고는 태도를 정합니다.

나쁜 의도가 아닙니다. 그저 아직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가 너무 어려워서 입니다.

어려워서 생각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우습게도 사실 어떻게 태도를 정하든 아이는 말을 꺼내는 것을  무서워합니다.

단순하게는 신발가게에서 사이즈를 물어보는 말부터 새롭게 만난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이름을 물어보는 말 까지 아이는 등에 식은땀을 흘려가며 물어봅니다.


친구들은 가끔 한심하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다 커서 그것도 못하냐고.

하지만 이 아이에게 그저 '사람'이라면 모두가 낯설게 느껴집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 100% 안다는 확신이 없으면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숨어버리고, 누군가 나에 대해 알려고 하면 또 그냥 숨어버렸습니다. 자신을 알려주고 싶지는 않지만 아이는 상대를 전부 알아야 했습니다. 극단적으로 아이는 누군가가 자신의 혈액형을 맞추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가면을 썼습니다. 아이가 처음 쓴 가면은 '웃는  가면'입니다. 아이는 항상 웃었습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 아이는 자기 자신을 철저히 숨기고 그저 착한 아이가 되기로 합니다. 거절도 하지 않고, 화도 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아이는 그런 자신의 모습에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두 번째로 쓴 가면은 '까칠한  가면'입니다. 까칠해 지기로 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반응하지 않고, 직언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가면. 사실은 다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무관심한 척. 나름 아이와 이 가면은 잘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면을 쓴 아이는 누군가를 가면 안으로 데리고 올 수가 없습니다. 아니 데리고 들어오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그게 가장 큰 두려움입니다.


이 아이는 사실 외로움도 많습니다. 그래서 모순적이게도 사람과 같이 있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아이는 진짜 자기 사람을 만드는 데에는 어려움을 가지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다 그저 그런  거리라고 느낍니다. 아이의 주변 사람들이 아이를 가까운 사이라고 느껴도 아이는 그저 그런 거리의 사이라고 느낍니다. 나쁜 것이 아니라 아이가 누군가를 가까운 사이라고 느끼면 그 사람이 자신을 그저 그런 거리의 사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설레발치는  것처럼 보일까 봐 먼저 벽을 쌓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는 사람들의 관심을 좋아합니다.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준다면 아이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마움을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그것을 부담스러운 척하기도 합니다.


아이의 친구들은 가끔 실망을 느끼기도 합니다. 아이가 항상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에게 더 잘해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친구들보다 2학년 친구들에게, 고등학교 친구들보다 대학 동기들에게.

아이는 그저 그 순간이 무서워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절대 나쁜 의도는 아닙니다. 아이에게 모두를 챙기기는 것은 너무 버거운 일입니다.


아이는 자신을 집돌이라고 포장합니다. 집에 혼자 있는 것이 재밌고 좋아. 아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입니다.

물론 집에서 혼자  이런저런 일을 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나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혼자 나갈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 함께 해줘야 나가는 아이입니다.


아이는 먼저 연락하는 것을 못합니다. 이기적인 소리처럼 들릴지 몰라도 아이는 그것이 힘듭니다. 자신의 연락으로 인해 누군가가 자신을 귀찮게 생각할까 봐 아이는 그것이 너무 걱정됩니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가까운 사이의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그들과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힘들었습니다. 싸우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일부러 못되게 굴기도 하고 갑자기 연락을 끊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옆에 있어준 사람들, 아이는 그들이 고맙고 그들을 정말 좋아합니다.


아이는 하얀 도화지가 되고 싶었습니다. 누군가 칠하는 색깔에 변할 수 있도록. 하지만 아이는 검은 도화지가 되었습니다. 누군가 칠해도 변하지 않는. 아이는 이제 흰색도 검은색도 싫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색깔을 갖기로 생각합니다.


혹시 이 아이를 아시고 이 아이의 옆에 있으신 분들은 아이에게 말 한마디  건네주세요. 무슨 말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를 불러내세요. 아이는 아마 옆에 있는 사람 모두를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런 아이는 이 아이 한 명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어쩌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이 아이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 #낯섦 #아는_사람_이야기 #내_멋대로_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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