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보다 마봉춘이 먼저 좋아하지 않았을까?

서문 - 어쩌면 마지막 도전

by 하루오

“She is my wife.”

06년 3월 18일, 유재석이 마봉춘 아나운서를 상대로 한 말이었다. 그저 상황극일 뿐이었다. 박명수와 하하도 마봉춘이 자신의 아내라고 우겼다. 계통 없이 뒤섞인 농담 중 하나는 08년 7월 6일, 사실이 되었다.


무한도전.S2.E20.060318 - 20회 특집 0001304127ms.png 06년 3월 18일 20회 특집


‘현재’는 지독한 근시다. 무심코 던진 말에도 거대한 미래가 담겨 있음을 모른다. 지금도 미래의 어떤 조각이 잊히는 중일 것이다. 눈으로 보던 현재는 과거가 되어서야 읽힌다. 아예 잊히는 것들도 있고, 잊힌지 모르는 것도 있다. 유재석은 마봉춘의 첫 번째 파이팅을 기억할까.


유재석이 아나운서가 본인 취향임을 밝히는 바람에 유재석이 먼저 좋아한 것처럼 인식되었지만, 마음을 흘린 것은 마봉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06년 4월 8일 노홍철은 마봉춘에게 대시했다가 거절당했다고 공개했다. 훗날, 노홍철을 등 떠민 사람은 유재석으로 밝혀졌다. 그 시점에 유재석에게 마봉춘은 여성이 아닌 것이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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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8일 블랙데이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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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2일 김장 특집은 사실상 유재석 열애설 특징


“유재석 씨, 파이팅.”

마봉춘의 예능이었다. 마봉춘은 06년 1월 7일 유재석만 응원했다. 표면적으로는 멤버들의 질투를 유발하는 상황극이었다. 그리고 4월 1일 만우절 특집에서 좋아하는 사람이 20대는 아니라고 30대를 우회했다. 농중진담까지는 아니더라도 유재석에게 엮은 마봉춘의 마음 매듭 중 하나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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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7일, 1월 21일, 1월 28일, 2월 11일의 유재석 파이팅


인간관계는 단일 가닥으로 매듭지어지지 않는다. 사람 따라 가닥수도 다르고, 종류도 다르다. 사람은 사람을 싫어하면서 좋아할 수도 있고, 선망해서 원망할 수도 있고, 두려워하면서 사랑할 수도 있다. 특히 이성 사이에서는 익명이나 공적 관계에서도 리비도 몇 가닥은 매듭지어지기 마련이다. 그 수가 적어 표현형으로 발현되지 않을 뿐, 부모 자식 간에도 리비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당시 유재석은 이미 톱예능인이었다. 05년에 KBS에서 예능 대상을 탔고, 주말 버라이어티 메인MC를 맡고 있는 것 자체가 업계에서 그의 위상을 증명했다. [무한도전] 내 외모 관련 앙케이트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도 인기 덕분이었다. 06년 4월 26일에는 모 일간지 선정 일등 신랑감 1위가 유재석이라고 했다. 마봉춘의 파이팅에 이성으로서의 호감 몇 가닥이 매달려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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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년 4월 29일 충무공 탄신일 특집


결과를 알고 보면, 우연에 필연의 혐의가 씌워진다. 유재석 파이팅은 [무한도전] 시즌2 12회, 13회, 15회에서도 반복된다. 물론 이때는 다른 멤버들에게도 파이팅을 보냈다. 그러나 나무는 숲에 숨기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 10회의 자막, ‘혹시 마봉춘♥유반장’은 17회에서 어린 마봉춘 파트너 1위로 유재석이 뽑히며 ‘유재석♥마봉춘, 봉춘아 비디오 같이 볼래?’로 급발진하고, 21회에서 다른 멤버들을 사무적으로 대할 때, 유재석에게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무한도전.S2.E10.060107 - 새해 특집 앙케트 첫회 0001484547ms.png
무한도전.S2.E17.060225 - 이효리 특집 1부 (G이효리&이윤석 하차) 0000923930ms.png
06년 1월 7일 새해 특집 & 06년 2월 25일 이효리 특집 1부

[무한도전]을 몇 번이나 정주행하다 보니 이런 작위적 스토리텔링이 가능할 정도로 읽혔다. 빈 방에는 늘 [무한도전]을 풀어 놓았다. 유재석과 친구들의 목소리에서 사물에 온기가 입혀졌다. 그들은 [무한도전]을 떠나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는데도, 나는 아직도 [무한도전] 속에서 살고 있다. [무한도전] 정주행은 연례행사였다. 2007년 11월 17일 토요일의 일기에 내 미래는 마봉춘처럼 예고되어 있었다.


무한도전.S2.E22.060401 - 만우절 특집 (G이종범,배슬기 목소리 출연) 0002218066ms.png 3월 18일 20회 특집에서 좋아하는 멤버가 있고 그가 30대임을 밝혔다. 어쩌면 농담들이 진실의 밑바탕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아침 겸 점심으로 라면, 점심 겸 저녁으로 자장면을 먹었다. 끼니와 끼니 사이에는 스타크래프트 동영상 시청과 개운하지 못한 낮잠이 뒤엉켰다. 고시원에만 있으니 잠을 닮은 무기력만 달라붙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몇 달 만에 만끽하는 주5일 노동 후의 휴일을 이런 식으로 흘려보내기 아까워 도서관에 가기로 했다. 한 주 굶은 독서를 보상하려고 조지 오웰의 <1984년>만 챙겨들었다. 50page/hour, 쉬는 시간 포함 7시간, 11시 30분까지 다 읽을 작정이었다.


(중략) 주말 저녁인데도 도서관은 만원이어서 청춘이 썩어가는 냄새가 코를 때렸다. 축구 따위에 [무한도전]을 결방해버린 탓이라고 MBC를 원망했다. 창은 대체로 닫혀 있어 땀내, 암내, 발 구린 내가 뒤섞인 냄새는 빠지지 않고 덩어리를 이루었다. 그 후덥지근한 질량을 어깨로 버티며 꾸역꾸역 공부하는 모습들이 미련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다.


(중략) 한 시간도 못 버티고 짐을 쌌다. 6시 30분에 MSL 결승이나 보며 하루가 썩도록 내버려 둘 심산이었다. 8분을 걸어 패밀리마트에서 로또 5,000원어치를 사고 다시 8분을 거슬러 동네 할인마트로 갔다. 할인 품목만 샀다.


(중략) 턱 수염도 제자리 잡지 못한 아이가 트로피에 입을 맞추는 장면을 멍하게 쳐다봤다. 녀석은 내가 5년 쯤 고시원에서 허리띠 졸라매야 할 상금을 두 손에 들고 흔들었다. 한숨이 쉬어졌다. 짧은 순간, 상금이 찍힌 까만색 판자 위에 내 얼굴이 반사되었다. 나를 비웃을 기운도 없었다.


이것이 앞으로 내게 주어질 30대인가 싶었다. 가족을 떠나 가족을 만드는 기간 동안의 혼자. 이날이야 김과 송이 볼 일이 있어 일시적으로 혼자가 되었지만, 이 친구들이 저마다의 직장을 가지게 되어 흩어지고 나면 이 날은 진짜 내 서른 살의 연습쯤은 될 것 같았다. 메신저와 휴대폰은 나처럼 조용했다. 밥 대신 초코파이 두 개를 먹으며 인터넷 뉴스를 떠돌았다. 그리고 네이버 붐에서 카툰 <스쿨홀릭>을 보다가 잤다.


무한도전.S2.E22.060401 - 만우절 특집 (G이종범,배슬기 목소리 출연) 0002223474ms.png 마봉춘의 한 마디를 듣고 일어서는 유재석.]


불길한 예감은 과하게 적중했다. 마흔 살이 넘어서도 바뀌지 않았다. 고시원 원룸으로 바뀌었지만 월세는 저렴해졌다. 당시 측은하게 여겼던 도서관 취준생들 중 태반은 나보다 오순도순 한 삶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최소한, 종영된 지 4년(양세형 투입 시점이 내 마음 속 종영이라 사실상 6년)이 넘은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내게는 내 기억보다 [무한도전]이 생생하다.


적당히 실패한 인생이다. 펜을 꺾고 보니 배 나온 아저씨만 덩그랬다. 경제적 안정감으로 생물학적 완성도의 급락을 대체할 수 없었다. 나는 교환 가치가 무참하므로 발 들인 적 없는 연애 시장에서 철수했다. 내 마지막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졌을 때 태어났을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 날이 한두 해 앞이다. 재능 없이 꿈을 좇으면서도 치열하지 않았던 인과응보다.


2007년으로 되돌아가더라도 나는 또, 정직원이 보장된 금융권 인턴 자리 대신 72만 원짜리 시간 강사를 선택하고 말 것이다. 청춘에게는 삶을 하찮게 볼 수 있는 무모한 권력이 있다. 늙어 본 적 없어 죽음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한 덕분이다. 서른 살은 까마득해 보였다. 서른 살이면 꿈을 담지 못하더라도 닮을 수 있을 시간이라 여겼다. 실패한 서른 살 따위야 죽어버리는 게 낫다는 생각에 스스럼없었다.


비겁하게도 나는 나로부터 살아남았다. 생존의 대가는 무의미의 실시간이었다. 돈을 버는 일은 성인의 기본 값이니 무표했고, 꾸역꾸역 쓴 글은 읽히지 않았으니 무화됐다. 삼십대에는 남긴 사진도 몇 장 없었다. 기억도 몇 개 없었다. 그린 라이트를 깜빡이던 마봉춘들을 놓친 미련한 내가 보일 뿐이다. 당시는 인간관계의 매듭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이해하되, 학습되지 않아 내 나이에 맞게 사용할 줄 몰랐다.


[무한도전] 재구성은 잃어버린 10년의 되찾는 일이자, 고독사로 마무리 될 내 인생의 복선이다. 2007년의 일기는 앞으로도 수십 년 동안 사실이었다가 죽은 내가 썩어가는 방에서 멤버들의 목소리로 마무리 될 것이다. 그러나,


무한도전.S3.E05.060603 월드컵특집 1 0001776071ms.png 06년 6월 3일 시즌3 5화


“하루오 씨 파이팅.”

하루오의 예능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우울을 배설하는 독백극이다. 2007년의 일기가 사실은 하하처럼 ‘놓치고 싶지 않아!’라고 외치고 있는 것을 알기에 우울로 도전을 잇댄다. 우울로 빚는 내 반려이자, 울중희담(鬱中希談)이다.


“She is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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