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없는 삶
유재석이 타노스처럼 손가락을 튕기며 낮게 읊조렸다.
“로그아웃.”
그 순간 유재석이 사라졌다. 마법이 아니니 놀랄 필요도 없고, 연출이 아니니 의심할 필요도 없다. 그저 이 세상의 진실이다. 유재석과 몇 몇 사람들만 로그인해서 즐기는 메타버스 게임, ‘Life’다. 유재석을 따라 해 봤자 절대 다수는 아무 변화 없을 것이다. 우린 플레이어(player)가 아니라 그 게임 속 NPC(Non-player character)다.
우리를 조작(操作)하는 것은 영혼이 아니라 돈이다. 돈이 세상의 코딩 언어고, 우리는 각자 그 언어의 첨단 위에서 정교하게 움직인다. 드물게 버그가 일어나지만 이 세계를 바꿀 정도는 아니다. 아니라고 한다면, 당신 뒤통수에 박 한 대만 내려치고 싶다. 당신이 틀렸으므로, 혹은 당신이 옳다면 부러워서. 소리만 요란할 뿐 아프지 않을 테니 이 정도 투정은 은정투, 아하.
‘박 치는 소년’이 있었다. 그는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시절, ‘거꾸로 말해요, 아하’ 게임에서 틀린 멤버의 뒤통수를 박으로 가격했다. 실패한 플레이어를 응징하는 ‘벌칙맨’은 [공포의 쿵쿵따]에서 익숙해진 개념이었다. 벌칙의 시간 동안 플레이는 중지되므로, 벌칙맨은 존재 자체가 비(非)플레이어였다. 그저 플레이와 플레이 사이에 경계를 그어줄 뿐이다. 훗날 [개그콘서트]의 ‘이태선 밴드’나 [코미디 빅리그]의 ‘징맨’도 같은 역할을 했다. 그들은 원활한 진행을 위해 필요한 소품이었다.
내가 없어져도 내 자리가 별 탈 없이 대체된다면, 나는 소품이다. 소품에게 필요한 것은 인격이 아니라 기능이다. 유재석은 어느 프로그램에서나 대체 불가였고, [무한도전]에서는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노홍철, 하하, 길도 대체하기 힘들었다. 하하와 길이 없을 때도 [무한도전]은 굴러갔지만, 다른 방식으로 보완되었던 것이지 대체되었던 것은 아니다. 노홍철과 정형돈이 탈퇴했을 때, [무한도전]은 사실상 종영되었다. 그 이후의 시간은 [무한도전]의 파괴력이 남긴 강렬하고 긴 여음이었다. 그런 여음조차 만들지 못하기에 우리는, 소품이다. 소품조차 못 되는 잉여일지도 모른다.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은 많아. - 세상의 협박에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협박은 사실이므로 우리는 소품이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스스로를 표준화시켰다. 이 규격에 개별 영혼은 이물질이었다. 내가 어떤 의지를 갖든, 세상은 돈의 의지로 나를 무마시켰다. 내가 나를 이물질로 걸러내는 사태를 나는 넋 놓고 바라봐야 했다. 그것이 시장 사회의 먹고사니즘이었다.
06년에도 예감했지만, 내심 나만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아직은 ‘자아의 신화’를 이뤄야 한다는 인생 연금술의 물이 덜 빠져, 나만큼은 주인공의 순간이 찾아올 것이라고 은근히 낙관하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박 치는 소년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자아의 신화는커녕, 내가 세상의 엑스트라임을 깨닫고 나니 박 치는 소년의 무표정이 보였다. 그는 주연들의 놀이판에 어떤 색깔도 입히면 안 되는 사명을 띤 사람처럼 묵묵했다. 딱, 내 표정이었다.
[무한도전]은 벌칙맨을 가장 잔혹하게 사용했다. 이태선 밴드나 징맨은 플레이와 플레이 사이에 독립적으로 존재했지만, ‘박 치는 소년’은 플레이 화면 안에 둠으로써 그를 멀뚱하게 만들었다. 멤버들은 박 치는 소년을 뒤에 두고 저희들끼리 놀았다. 멤버들은 항상 양복 차림이었기에, 06년 1월 7일 한복 입은 할머니 분장은 더 튀었다. 본의 아니게 ‘은따’가 적나라하게 강조된 것이다.
박 치는 소년은 급기야는 배경으로 분장해서 배경 속에 녹아 들어갔다. 그는 배경으로 존재하다가 박을 쳐야 하는 순간 박을 치고 돌아가 다시 배경이 되었다. 멤버들과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고, 게임이 한창일 때나 ‘쌍박’으로 흥이 고조될 때도 그는 담담히 배경이었다. 배경이 되기 위해서 얼굴까지 칠했기 때문에 그가 다른 누군가로 대체되었다고 해도 눈치 채기 힘들었을 것이다. 서 있는 것 자체가 곤혹이었을 텐데, 06년 4월 8일 23화에서는 활을 들고 있는 포즈를 유지해야 했다. 있으되 없는 존재, 없음으로써 있을 수 있는 존재, 사회인으로서의 ‘나’였다. 우리 역시 돈을 벌어먹기 위해 사회성이라는 보호색을 입고 있다.
박 치는 소년은 06년 4월 15일 방송에서야 유재석에 의해서 ‘무표정주의’로 언급되었고, 다음 회인 4월 22일 게스트 배슬기가 배경 속에서 그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 덕분에 주연들의 서사 속에 잠깐 합류할 수 있었다. 자신을 포함한 농담의 순간, 한 번쯤 웃을 법도 하지만 그는 무표정을 유지했다. 신념은 아닐 것이다. 감정 노동자의 억지웃음처럼 자신의 감정을 숨겨야 하는 밥벌이의 조건이었을 것이다.
예능 출연자 역시 감정 노동자일 테지만, 박 치는 소년보다는 사정이 낫다. 그들은 캐릭터가 있었다. 메뚜기(비디오), 치킨ceo, 알코올ceo(헬멧), 건방진 뚱보(어린 뚱보), 입 냄새(퀵마우스), 잘생긴 하하는 실물 기반 캐릭터였다. 캐릭터들의 관계성에서 이야기가 자생했다. 대본을 땔감(08년 3월 29일)으로 쓸 만큼 사전 설계는 무의미했다. 설득력 있는 캐릭터들의 쇼, [무한도전]은 그렇게 리얼버라이어티의 문법을 정립했고, 06년 7월 29일 ‘신화’ 특집 때, 박 치는 소년은 소리 소문 없이 산화되었다.
리얼한 현재를 사는 우리에는 그 캐릭터가 없다. 대리님, 과장님, 사장님, 선생님, 교수님 등의 직함은 갖고 있다. 그러나 직함은 ‘무엇’이지 ‘누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무엇에는 가격이 매겨지므로 직함에는 상품 성분이 높다. 별칭은 어렸을 때 친구들 사이에서나 놀림용으로 사용되었고, 애칭은 연인 간에나 짧은 수명을 치열하게 살다간다.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불러줬을 때 꽃이 된다고 하지만, 호칭은 그저 기능을 호명할 뿐이다.
리얼버라이어티가 사라지고 유명인의 자기 과시 관찰 예능이 범람하듯, 캐릭터는 사라지고 SNS 속 돈 자랑이 남았다. 입는 것, 먹는 것, 사는 곳의 스웩(sweg)과 플렉스(flex)가 캐릭터인양 굴었다. 잘 먹인 가축이 캐릭터는 아닐 것이다. 또한, 관례가 된 ‘좋아요’ 상부상조는 캐릭터의 관계성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가볍다. 우리는 박 치는 소년처럼 서로의 좋아요를 눌러주는 말하는 배경일 뿐이다.
너무 리얼한 메타버스 게임 ‘Life’에 로그인하기 위해서는 닉네임부터 정해야 한다. 사는 대로 살다 보니, 해야 할 것들에 충실했고, 해야 할 것들은 노예적 속성을 강제했다. 노예의 꿈은 해방이지 하고 싶은 것이 아니어서 내 닉네임이 참 어렵다. 이것저것을 쓰고 있지만, 내 닉네임과 진짜 나와의 상관성 옅어져서 ‘Life’는 진짜 가상이 되는 역설이 되고 만다. 그저 ‘먹고사니즘’이 진실인양 NPC가 된 자신을 합리화 할 뿐. 뒤통수를 치는 듯한 ‘아차!’가 필요하다. 두 번 필요하다. 그래야 패션 네임, 하며 무도회가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