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農街) 농가(弄歌)

고기의 시간

by 하루오

막다른 길에서 나는 씩 웃었다. 낯설었지만 기억났다. 5년 전, 혹은 8년 전, 정확하게 시기를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어느 날, 이곳에 온 적 있었다. 그날은 하릴없이 페달을 굴렸고, 이날은 폐축사를 찾고 있었다. 분명, 그때 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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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농가를 헤매다가 봤던 폐축사는 건물 외피가 벗겨져 회색 시멘트 블록이 근육의 결처럼 드러나 있었다. 애초에 외벽 따위 미장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비료 포대를 스테이플로 막아놨던 창은 바래고 뜯겼다. 두꺼운 비닐이 삭아서 을씨년스럽게 늘어졌다. 먼지를 뒤집어쓴 비닐은 시멘트 블록과 색이 구분되지 않았다. 이빨 빠진 한(恨)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입을 헤벌쭉 벌린 듯했다.


『육식의 딜레마』를 읽으려고 마음먹었을 때 떠오른 곳이었다. 제목에 이미 생명․환경 윤리가 그득했다. 내가 아는 윤리의 첨단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지루한 작업일 뿐, 엄밀한 의미의 독서는 아닐 것으로 예상했다. 장소라도 맛있게 페어링하고 싶었기에 반드시 그곳이어야 했다. 이 책이 내 책꽂이에 꽂힌 지 2년, 혹은 3년 만이었다.


<자인단오축제>에 맞췄다. 6월 23일은 자인시장 오일장과 맞물렸으므로 외출 적기였다.


자인시장은 백종원의 [님아 그 시장을 가오]가 아니었다면 영원히 잊힐 곳이었다. 돼지찌개집이 소개될 때에서야 상기했다. 자전거로 경산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던 시절 몇 번 콩국수를 먹으러 갔었다. 그러니까 5년 전, 혹은 8년 전, 해야 할 일이 적어 시간이 흩어지기만 하던 시절, 정확하게 기억하지 않아도 되던 시절, 그랬다. 그러다 시간을 재어가며 금호강 자전거 도로를 달리던 때부터 자인시장은 잊혔다.


자인시장에 발을 끊은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속력이었다. 금호강 자전거 도로에서는 사위가 뻥 뚫려 있어서 브레이크를 예비하지 않고 전속력으로 내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자인시장 가는 길은 농가를 관통하느라 속력을 낼 수 없었다. 다른 하나는 확실성이었다. 금호강 자전거 도로는 아무 생각 없이 길을 따라가면 그뿐이었다. 그러나 농가 길은 갈라지며 초록에 초록이 잇대지거나 같은 채도의 가옥들이 섞여 있어서 나는 방진 안에 갇힌 것 같았다. 카카오 맵에서도 길이 표기되지 않아 GPS상 내가 어디 있는지 알면서도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길을 잃은 기분이라면 충분히 지긋지긋했다.


농가로 들어서자마자 강변의 말 세 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오, 출발이 좋았다. 내 일상에 없던 풍경이었다. 말은 안장도, 고삐도 없이 털에 윤기가 흘렀다. 근처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카페 빈 테이블에 놓인 스마트폰을 본 외국인의 기분이었다. 나는 이방인으로 전환되었고, 이 동네 고요는 우리 동네 고요와 다른 언어로 설명되는 듯했지만, 납득되었다. 페달을 굴려도 계속 사람이 없었다. 오전 11시 전후, 햇볕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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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나는 과거를 좇고 있었다. 특정 장소는 기억났지만, 그것이 어느 길 위에 있고, 길이 어디로 연결되는지 계산되지 않았다. 농가 안쪽으로 들어서자 대추, 복숭아, 샤인머스킷의 거대한 미로가 펼쳐졌다. 해로 방향을 가늠한다지만, 정수리에 가까워진 해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때도, 이날도, 시간은 넉넉했으므로 막막해도 괜찮았다. 갈림길마다 즉흥적으로 선택했다. 뒤죽박죽하다 그, 막다른 길에 도달한 것이었다. 낯설고, 낯설었는데, 사실은 제자리라니. 5년 전인가, 8년 전인가처럼. 내가 과거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하며 같은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 허탈하면서도 안도했다. 지금의 나는 나의 필연인 셈이었다.


“니 그냥 공무원 시험 쳐라. 누구도 하고 누구도 하는데, 니가 왜? 내 자료 다 줄게.”

“연봉 OO원 안 되면.”


송은 10여 년 전부터 보챘다. 시험 문제 검토하러 불려 다니기도 했으니 송의 지원이 더해지면 유리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누구도 하고 누구도 하는 걸 내가 못할 리 없다고는 나도 확신했다. 그리고 5년 전인가 8년 전, 내가 이 일을 유지하는 최소 조건으로 내건 그 연봉을 간신히 넘긴 적 있었다. 소소한 상금 덕분일 뿐, 노동소득만 따지자면 최저임금을 약간 웃도는 정도였다. 내 길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나 아무 이유 없이 패대기쳐진 연봉은 다음해 아무 이유 없이 급등했다. 이 불확실성이 불안했지만, 이 자리에 머물렀다. 초록이 잇대지듯, 연도가 구분되지 않은 날들이 나이로 답쌓였다.


막다른 길은 돌아가면 그뿐이었다. 그러나 당신은 돌아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당시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육식의 딜레마』 본래 주인은 고독사한 듯하다. 나보다 어린 사내였다. 나는 이 책을 재활용 쓰레기 버리다가 주웠다. 대학 졸업장, 각종 자격 증명서, 한 아름의 수험서가 인문학 서적들과 함께 버려져 있었다. 읽을 만한 새 책 들을 주운 것에 신났을 뿐, 버린 이유를 깊이 추적하지 않았다. 그러다 당근마켓 동네생활 게시판에 우리 동네에 고독사가 많다는 글을 읽고서야 정황이 합리적으로 정리되었다.


당신이 살아 있다면, 당신은 다른 선택을 할까. 당신이 침대 위에서 썩어 문드러지는 시간과 내 초록의 시간이 포개졌다가 떨어졌다. 나는 살아남았다. 5년 전인가, 8년 전, 나는 가만히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던 일 계속 하기로 ‘선택’한 것이었다고 합리화 되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고요히 광합성 하며 과실의 날을 축적해온 셈이었다. 과실의 이름은 오늘이었고, 자전거의 오늘은 이야기를 남겼다, 이렇게.


자전거 속력을 더 늦췄다. 차창 밖 풍경으로만 존재했던 농(農)이 좀 더 가까워져 있었다. 농촌은 가장 소외된 존재였다. PC는 여성과 각양각색의 성소수자와 다문화를 담지만 농촌에는 침묵했다. 아마도 그들이 농촌에 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무관심 속에서 착실히 소멸을 기다리는 번외 존재, 농촌이었다. 농촌은 고독사에 수렴해 가지만 끝내 고독사에 닿지 않은 내 시간과 근친성으로 읽혔다. 먼지를 뒤집어쓴 농기구는 곰팡이 흔적과 먼지가 적당히 엉켜 있는 내 방구석과 다를 바 없었다. 윤기를 잃고 기능만 남은 공간을 스쳐 보내는 것으로 농가를 관람했다. 가도, 가도, 어차피 같은 질감의 내 시간 같은 낡은 공간들이 이어졌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복숭아나무에 묶여 있는 끈, 빨랫줄에 널린 장갑, 내가 지나갈 때 짖어대는 개 소리에서 사람이 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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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축사는 찾지 못했다. 대신 운영 중인 축사를 찾았다. 농촌의 축사는 이 책에서 다루는 고기 단위를 비교할 수 없이 영세했다. 몇 걸음 걷지 못하는 축사와 내 방은 다르지 않았다. 소들은 흙인지 자기 똥인지 모를 공간에 갇혀 하반신이 더러워진 채 어슬렁댔다. 나를 보자 고개를 내 쪽으로 빼꼼, 빼꼼 내밀었다. 우리는 잠시 서로를 구경했다. 덩치는 있었지만 어린 소임을 직감했다. 호기심 가득하고 생기 어린 얼굴에서 몇 달 후의 고기를 읽었다. 소에게는 길이 없었다. 나는 길을 달리며 죽은 그를 생각했다. 그가 뒤집어썼을 오물 같은 시간의 냄새를 안다. 죽을 소도 생각했다.


잠시 후 또 다른 축사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봤다. 정수리가 빛나는 아저씨가 축사 내부를 보고 있었다. 뭔가 싶어 멈춰 보니, 젖소가 출산 중이었다. 어미의 항문 근처에 새끼 다리만 나와 있었다. 어미는 일어섰다 앉았다 하며 느리지만 확실하게 안절부절 못하다 주저앉았다. 몇 분 후 아저씨가 축사 안으로 들어가 어미 뒤에 삐죽이 나온 새끼 다리를 잡아끌었다. 새끼는 어렵지 않게 미끄러져 나왔다. TV에서 본 것처럼 새끼가 일어나 어미젖을 더듬을 그림을 그렸지만, 새끼는 움직이지 않았다. 생(生)과 사(死)가 교차되는 육(肉)의 시간, 주변 소들이 어슬렁거리며 다가왔고, 주인이 좇았다. 주인이 발로 새끼소를 흔들어도 새끼소는 미동도 없었다. 그러다 귀가 팔랑대는 듯했다. 잘못 본 것인가 싶었는데 새끼가 다리를 바동거리기 시작했다. ‘고기’에 생략된 풍경이었다. - 육식은 죄가 아니지만, 무식은 죄다.


폐비닐하우스 앞 농막 그늘에서 30여 분쯤 책을 읽었다. 인간은 시간을 사료처럼 먹는 고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축(社畜)이 되기 위해 애쓰고, 사축으로 살아가다가, 잉여로 폐기된다. 혹은 사축조차 되어 보지도 못하고 조기 폐기된다. 죽은 고기와 산 고기의 차이가 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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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램블의 보고서는 동물을 조금이라도 보호하려면 동물들이 ‘다섯 가지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배고픔이나 목마름으로부터의 자유, 불편으로부터의 자유, 고통/부상/질병으로부터의 자유, (대체로)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자유, 두려움과 고통으로부터 자유 - 『육식의 딜레마』p.9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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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라고 하는데, 농가는 먹을 것을 책임지면서도 먹고 살기 가장 고단했다. 비열하게도, 내가 농가를 거닐며 본 것은 가난 포르노와 동병상련으로 된 고기의 시간이었다. 2022년 농가 부채는 3,733만원으로 역대 최고였고, 젖소 한 마리 당 연간 수익은 1,000원이었다. 0이 한두 개쯤 더 있어야 할 텐데 없어서 영(靈)은 안녕하기 힘들 것이었다. 가난 포르노를 감상하는 비열함과 5년 전인지 8년 전인지 기억나지도 않는 시간에 파묻힌 동병상련을 굴렸다. 앞으로 내게 초록은 자기 고기값 버는 치열한 색깔일 듯하다. 새끼 젖소가 어미 젓을 빨기 시작했을까. 너의 고깃값과 나의 고기값이 축사 냄새로 정산되는 듯했다. 가도 가도 농가는 고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