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인단오축제 다녀 오는 길
축제는 예상만큼 시시했다. 대부분의 축제 이름은 ‘사람이 북적댄다.’는 사실을 만들어 내기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았다. 관광 자원으로 개발된 축제의 민낯은 결국 돈이었다. 명분에 낚인 사람들은 자본으로 엮였다. 축제의 질은 개인의 가용 자본과 비례했다. 그러나 자인단오제는 그렇지만도 않았다. 돈이 있든 없든 그저 그럴 듯했다. 자인시장은 다시 찾겠지만, 축제 기간만큼은 피할 것이다. 단오제는 단오와 무관한 것들로 시끄러웠다. 정리할 것을 정리해야 했지만, 정리할 것을 정리하고 나면 지역민에게 이 축제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축제 메인 공간은 계정 숲이었다. 일단 지나쳤다. 밥부터 먹고 싶었다. 숲 입구 옆에서 새마을 부녀회가 천막을 쳐 놓고 밥을 팔았다. 멀리서 보니 육전잔치국수가 8,000원이었다. ‘육전’이 필요하다면 전문점에서 에어컨 바람 쐬며 먹지 굳이. 망설일 여지도 없었다.
계정 숲 입구를 지나가니 전에 없던 천막 단지가 펼쳐져 있었다. 이런 축제를 찾아다니는 장사꾼들인 듯했다. 돼지를 통째로 굽는 바비큐, 손주를 겨냥했다고 하더라도 조악하다 싶은 장난감, 굳이 이런 곳에 있어야 하나 싶은 옷까지 계통 없는 난장이었다. 자인시장을 두고 이 시장을 만든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이해와 별개로 곳곳에서 ‘각설이’, ‘품바’ 이름으로 공연하는 팀들은 이 공간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공연하고 물건을 파는 것인지, 이 행사와 관련해서 계약된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아무튼 능숙해 보였다. 능숙함은 업(業)을 오랜 시간 버틴 결과이므로 능숙한 것들에는 경외심이 들었다. 그러나 공연은 서로 경쟁하느라 볼륨을 있는 대로 끌어 올렸다. 자기주장들이 뒤엉켜 공기가 엉망으로 울렸다. 내가 이 축제 기간에 발을 끊기로 한 결정적 이유였지만, 어르신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주로 각 공연 팀 중심으로 군집해 있었다. 이곳은 순전히 노인을 위한 공간이었다.
조금 아쉬웠다. 인근에 4년제 대학 3개를 끼고 있어 시험 끝난 20대 수요를 잡을 수도 있고, 공단에 외국인 노동자도 많지만 이들과 연계된 그 무엇도 없었다. 이들은 참여 주체도 아니었고, 소비 주체도 아니었다. 이미 강릉단오제가 있는 마당에 굳이 또 다른 단오제가 있어야 한다면, 도시 브랜드로 강릉을 이기기 힘들다면, 과거 시제의 전통이 아닌 미래 시제의 전통 축제로 돌파구를 모색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는, 그저 내 생각이었다. 곤드레, 만드레, 그냥 시끄러웠다.
뒤엉킨 스피커 소음이 난폭하기도 했고 축제 이익은 지역민에게 분배되어야 했기에 자인시장까지 갔다. 석쇠불고기, 곤드레밥, 생선구이 등은 우리 동네 없는 메뉴였지만 수구초심으로 콩국수 집에 갔다. 이 식당은 5월 1일부터 추석 이틀 전까지만 영업했다. 콩국수 단일 메뉴에 회전율이 높은데도 늘 북적댔다. 없던 야외 테이블이 생겨 수요를 충당했다. 남자 사장님이 손에 수십 만 원을 쥔 채 현금 계산했다. 성수기 반짝해서 1년을 넉넉히 지낼 만해 보였다. 7천 원짜리 콩국수는 8천 원짜리 육전잔치국수가 아쉽지 않았다. 양이 살짝 부족했지만 괜찮았다. 어서 배가 꺼지길 바랐다. 시장 근처에서 3시간쯤 책을 읽다가 어탕국수라도 먹으려면 배는 가급적 덜 부른 게 좋았다.
그 3시간을 기다릴 만한 공간이 없었다. 축제만 아니었다면 계정 숲에서 유유자적 했겠지만, 시장은 어중간했다. 혹시라도 카페, 아니면 파라솔 달린 편의점 테이블이라도 있나 시장을 돌아 봤지만 있을 리 없었다. 다방은 몇 개 있었다. 다방은 ‘쌍화탕’과 ‘레지’로 굳은 고정관념 때문에 섣불리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나 대안이 없었고, 쌍화탕과 레지가 있다면 그것대로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므로 나름 큰맘 먹고 들어갔다.
그곳은 큰맘이 무안해질 정도의 평범한 휴게실이었다. 가운데 벽에 걸린 TV에서 뉴스가 낮은 소리로 중얼댔지만 누구도 뉴스를 보고 있지 않았다. 실내 인테리어는 식당, 파는 음료는 카페였다. ‘마담’일 수 없는 주인아주머니는 친절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빈 테이블을 차지하고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이스를 따로 말하지 않으면 당연히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지칭하는 것은 내 생각이었다. 군말 없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건너 테이블 할아버지 8명 무리의 이야기가 넘어왔다. 발음이 뭉개지고 발성이 탁했지만 워낙 크게 떠들어대서 그럭저럭 내용이 들렸다. 할아버지들의 수다 중 드라마 이야기는 놀라웠다. 요즘은 젊은 사람들한테 맞춰져 있어서 [전원일기] 같은 볼 만한 드라마가 없다는 것이었다. k-드라마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시대, 정작 본국의 노인들은 드라마 시장에서 소외되어 있던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그 사실을 그때서야 깨달은 게 충격이었다. 2049시청률, 화제성에 포함되지 못하는 노인을 위한 문환 콘텐츠는 없었다. 이 축제가 굳이 MZ와 외국인을 포함하지 않아도 될 당위성을 생각했다. 나훈아, 이미자를 있는 그대로 보존한 시간대도 필요하지 않을까. 늘 새로워야 한다는 관념은 시장논리의 당위였지 5일장의 당위는 아니었다.
신선한 충격은 길었고, 다방에 머무른 시간은 짧았다. 매장에서 사장과 어떤 할머니가 갑자기 소리 높여 다퉜다. 시장에 올 때 이런 야생성까지 바란 건 아니었다. 남자라면 곧 주먹이 오가겠구나 흥미진진해질 때 상담 전화가 와서 밖에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상담은 등록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내가 돌아왔을 때 두 여자의 싸움은 마무리 되어 있었다. 사장의 분 뒤풀이가 이어졌다. 건물주가 계약 이외의 권리금을 더 달라하는 것 같았다. 사장의 말은 말이 되지 않았기에 내가 제대로 들었는지 확신은 없다. 실내 공기가 격앙되었다. 책 읽기 면구스러워 나왔다. 2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농가 농막이나 정자에서 책을 마무리하기로 하고, 시장을 떴다. 도넛 2천 원어치와 토마토 5천 원어치를 샀다. 킹갓제네럴엠페러충무공마제스티하이퍼울트라판타스틱 과일 행상 사장님은 참외 2개를 덤으로 주셨다.
혹시나 뭐 건질 게 있나 싶어 계정 숲에 들었다가 역시나 나왔다. 단오제 행사와 별개로, 음질 구린 스피커가 쩌렁쩌렁 울리는 환경 자체를 참기 힘들었다. 그곳은 단오제 관련 공연 중이었다. 각종 체험 부스를 눈으로 훑으며, 그 와중에 기생충처럼 끼어 전도 중인 종교 집단을 멸시하며, 도넛만 먹었다. 더웠다.
왔던 길을 밟으려 했지만 얼마 안 가 길을 잃었다. 달리다 온 적 있는 듯한 길에 접어들었다. 풍경은 몰라도 개천을 되돌아가는 길의 비효율적인 굴곡이 기억났다. 그 외에 기억나는 게 없었으므로 온 적 있었을 낯선 길을 달렸다. 여기가 어딘가 하다가, 어, 어? 어! 오랜만에 독서 맛집을 발견했다.
세상을 모두 이해할 필요는 없었다. 개천을 따라 과수원, 축사, 논밭이 혼재되어 있는 영세 농가들 사이에 게이트볼 연습장이라니. 이곳은 이름이 없어 주소가 없었다. 카카오맵에서도 빈 공간에 GPS로만 내가 위치할 뿐, 이곳은 아무 곳도 아니었다. 그러나 직경 1미터가 넘는 느티나무 아래 벤치만으로 압도적 공간이었다. 풀도 잘 다듬어져 있었고, 차 두 대가 주차할 공간도 있었다. 부조화한 듯 조화로운 초록빛 널따란 고요가 마음에 들었다.
느티나무 벤치를 독점해서 책을 읽다가 누우려고 정자로 자리를 옮겼다. 정자 기둥에 새마을 금고 부채가 매달려 있는 걸로 봐서는 실사용자가 있는 듯했다. 정자에 누울 수 없었지만, 정자 안쪽에 앉아서 바깥으로 발을 빼면 난간에 몸을 기대어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토마토를 옷에 대충 문질러 닦고, 하나씩 먹었다.
시간은 확인하지 못했다. 차량 한 대가 와서 내 평화를 깼다. 안 보는 척했지만 신경 쓰였다. 조수석에서 아주머니 한 분만 내리고 차는 떠났다. 창 넓은 모자를 쓰고, 하얀 쿨토시를 한 아주머니는 혼자 게이트볼 공을 쳐가며 이곳을 뱅뱅 돌았다. 내가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듯, 아주머니 입장에서도 이 공간에서 책 읽는 이방인은 낯설었을 것이다. 우리는 각자 자기 일에 충실했다. 서로를 무관심해도 괜찮은 평화가 나른했다. 대가리가 묵직한 게이트볼 채로 공 때리는 딱, 딱, 소리를 맥박 삼아 내 조용한 축제를 마무리했다.
또 보자, 가을엔. 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