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가는 길

by 하루오

편의점 가는 길이었다. 지하철 환승까지 편도 한 시간 남짓 예상되었다. 어중간한 시간을 채우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 독서였다. 일이 아닌 독서는 메모 없이 내 속도에 도취할 수 있어 시원시원했다. 책을 읽는 한 모든 공간이 책이었고, 나는 책을 좋아했다. 책을 읽어 편의점 가는 길이 멀지 않았다. 편의점에는 독고 씨나 금보 씨가 아니라 2호님이 있었다. 이번 나들이에 『불편한 편의점』보다 적절한 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불편한 편의점2』를 학생A에게서 빌렸다. 『불편한 편의점』 수업 후, A는 재미있다며 후속편을 샀었다. A 이외에도 몇 명이 먼저 읽고 재미있다고들 했지만, 주제가 겹쳐서 후속편을 수업으로 구성하지는 않았었다. 오히려 독고 씨의 정체가 작위적이어서 후속편에 기대가 없었고, 『불편한 편의점』은 수업 분량도 애매해서 올해 수업 목록에서 뺄 계획이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독후감 공모전에서 『불편한 편의점』으로 상을 타온 데다 2호님이 잇대졌다. - OO 편의점에 있으니 모른 척 한 번 들리시죠?


1호님은 서울에서 쿠키를 보내주셨다. 우리 사이를 편의점 택배가 대리했으므로 우리는 익명으로 관계했다. 1호님은 바삭하고 달달했다. 2호님은 같은 지역에 살고 있으니 밥 한 끼 하자고 하셨다. 나는 거절했다. 죄송하지만 별 수 없었다. 영화 『김씨 표류기』에서 김정연이 보낸 짜장면을 거절한 김성근의 마음이자 김성근의 ‘Who are you?’에 패닉이 온 김정연의 마음이었다. 나는 아직 작가가 아니므로 드러낼 얼굴이 없었다. 그러다 몇 달 만에 2호님이 다시 익명을 제안해 오신 것이었다. 얼굴이 없는 사람에게 익명은 안전 장치였다.


편의점은 현대 사회의 축소판이다. 현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충실한 기능인(機能人)이다. 편의점에서 모든 이름은 억압되고 매뉴얼만 남는다. 점주든, 알바생이든, 손님이든, 각자 역할극에 충실할 뿐, 이름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키오스크에 수렴하는 인간과 카드에 수렴한 인간의 맞교환에 인격은 없다. 그런 측면에서 『불편한 편의점』의 독고 씨는 도태된 인간이었고, 『편의점 인간』의 후루쿠라는 매뉴얼 그 자체로 진화한 인류였다.


“나는 후루쿠라는 아니지.”

“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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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은 내 손에 들린 당근에 눈을 박았다.『편의점 인간』으로 『불편한 편의점』과 비교하며 수업하던 날, 나는 썰지도 않은 당근을 먹으며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점심이었다. 나는 ‘강의실 인간’이었다. 후루쿠루만큼은 아니지만, 수업 이외의 것은 대체로 비었다. 비어 있는 것을 글로 채운 것이 후루쿠라와 조금 달랐다. 수업하고 글 쓰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은 1,000억 광년 떨어진 별의 색깔이 FFCC00이든 FFFF00이든 상관없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았다. 그 무심함 덕분에 보증금 70만 원에 월 17만 원짜리 월세방에 15년째 편안하게 처박혀 있을 수 있었다. 사람 만나는 일도 군더더기였다. 명절도 없었으면 좋겠다. 사람을 만날 때, 나는 기능을 잃고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번 외출은 사람 만나는 일이 아니라 조금 길어진 출근길 동안 『불편한 편의점2』를 읽는 나들이였다. 내 기능의 확장인 셈이다. 나는 2호님을 모르는 척해야 하고, 2호님은 나를 알아 볼 재간이 없었다. 나는 7월 중에 방문하겠다고 알렸고, 2호님은 당신의 근무 시간을 알려주셨다. 우리는 반짝, 금전으로 기능했다가 사윌 것이었다. 돈에는 얼굴이 없었다. 익명으로서의 조우가 일말의 서사 가능성을 심어 놓을지 모르겠지만, 당장은 의미를 부여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새벽부터 나서는 계획은 실패했다. 개선되지 않는 불면으로 새벽에 깼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출근시간대를 넘기고서야 집을 나섰다. 인간은 체온으로도 시끄러운 존재들이므로 피해야 했다. 타인은 나의 이물(異物)이다.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에 ‘모든 만남은 12월 이후에’라고 선언할 정도로 날이 섰다. 나는 오전 9시가 지나 인간들이 빠져나간 한적한 공간이 편안했다. 지하철 2호선 끝에서 『불편한 편의점2』가 시작되었다.


맛있었다. 『불편한 편의점』도 처음에는 맛있었다. 인물들의 나열이 피로하긴 했지만, 독고 씨의 묵직한 매력 따라 읽어 나가다 보면 인물들이 이야기로 묶였다. 이번에도 같은 방식인 듯했다. 새로운 주연 금보 씨도 능청맞은 매력이 있었다. 청라언덕 역에서 환승할 때 긴 에스컬레이터에서도 스마트폰 보듯 읽을 정도로 개별 이야기는 흡입력 있었다. 2호님의 편의점이 좀 더 멀었어도 좋을 뻔했다. 3호선에서 편의점까지는 금방이었다.


역에서 내려 편의점으로 가는 길에 그럴싸한 식당들이 눈에 띄었다. 그때서야 책 나들이는 항상 음식이 곁들여졌다는 사실이 아차 싶었다. 날이라도 선선했다면 어디 좀 앉아 있다가 움직였겠지만, 7월의 대구였다.


지도상에서는 편의점 건너편에 카페가 있었다. 카페 창가에 앉아 책을 읽으며 드문드문 편의점을 염탐할 생각도 했었다. 편의점 내부가 보이진 않더라도 드나드는 익명들 속에서 『불편한 편의점』의 손님들을 읽어내는 것도 흥미로울 법했다. 그러나 카페는 개점 전이었다. 혹은 폐점했다고 해도 설득력 있어 보였다. 곧장 편의점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날은 혹시라도 2호님이 나를 알아보실까봐 양산을 쓰지 않았다. 샌드위치와 커피도 사지 않을 계획이었다. 그러고 보니 살 게 없었다. 편의점에서 구매하는 것은 딱 그 정도와 도시락이었지만, 밥을 먹으며 2호님의 시선이 함의된 공간에서 머물 배짱은 없었다. 음료나 하나 사기로 했다. 1+1이나 2+1 행사 상품을 사서 편의점 직원과 나누는 이벤트도 기각했다. 나는 평범하고 하찮은 기능성 익명이어야 했다.


카운터에 아무도 없었다. 식사 중일 수도 있고, 화장실에 갔을 수도 있고, 짐정리 중일 수도 있으니 별일 아니었다. 내가 음료를 집어 왔을 때, 생각보다 어려 보이는 사내가 있었다. 낯설다기보다는 이질적이었다. 나는 2호님을 독고 씨에 맞춰서 상상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아직 눈에 익지 않은 금보 씨와도 겹쳐지지 않았다. 나는 2호님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그대로 나왔다. 편의점 역할극은 침묵의 미래 속으로 빨려들어 갈 듯했다. 그야말로 바깥은 여름이었다.


출근이었다. 공부방이 있는 지하철역 휴게 공간에서 마저 읽었다. 한 시간 남짓 기다려야 점심시간이 끝날 것이었다. 옥수수 수염차를 샀어야 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2호님에게서는 마시지 못한 옥수수 수염차 맛이 났다. 옆 벤치에 앉은 노인이 이어폰 없이 유튜브 영상을 시청했다. 역시, 인간은, 음, 자리를 떴다. 계획보다 이른 점심을 먹고 공부방에서 『불편한 편의점2』를 완료했다.


3편을 기대하지 않았다. 어제도 내가 있었고, 오늘도 내가 있었고, 내일도 내가 있을 나의 내일 속에 누군가의 자기 복제까지 떠안을 여유는 없었다. 편의점 도시락은 이름이 달라도 먹다 보면 같은 맛이 나듯, 이런 식의 작법이라면 『불편한 편의점3』도 전작과 같은 맛이 날 듯했다. 그러나 김호연 작가님의 새 작품은 기대되었다. 나는 스토리텔러가 부러웠다. 나의 바람을 받는 것도 부러웠다.


2호님이 일을 마칠 무렵, 나는 수업을 시작했다. 나는 금보 씨처럼 주책없이 쾌활해졌다가 수업이 끝나면 후루쿠라로 회귀한다. 옥수수 수염차가 필요한데, 좀 멀다. 우리의 2편은 꽤 지연될 듯하다. 아직 제대로 된 기능을 장착하지 못한 내 탓이다. 기능부전, 이 글을 업로드 하고 나서 읽을 책은 마이클 샌델의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다. 일이다. 비가 오는데도 받아야 할 등기 때문에 저수지에 가지 못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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