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라니. 해인사에 가려던 계획을 접었다. 티라노사우르스를 선망하던 시절, 팔만대장경은 티라노사우르스만큼 찬란했다. 단순 무식하게 양으로 압도한 무모한 정성이 낭만적이었고, 역사적 난리 중에 살아남은 것은 기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낭만도, 기적도 믿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팔만대장경은 화석 같은 흔적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 ‘독서 나들이’를 명분으로 어린 내게 지고 있던 부채감을 상환하려는 마음에 겨우 생기가 돌았는데, 장마라니.
좋아하는 날씨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겨울에는 맑은 날, 여름에는 흐린 날이 좋은 것처럼 외출하지 않아도 되는 날은 비오는 날, 외출하는 날은 비 안 오는 날이 좋았다. 신발이 젖어 발이 축축해지는 것은 층간소음만큼 싫었다. 범해져서는 안 되는 것은 범해져서는 안 되었지만, 비오는 날의 신발은 속수무책이었다. 비 오는 날 외출은 자제했다. 그러나 비 오는 날에는 가리봉동에 가야 해서 저수지에 갔다. 일하는 거다.
인근에 남매지라는 둘레 2.5km의 도심 저수지가 있다. 경산시에서 관광지로 밀고 있지만, 관광지라기보다는 아주 훌륭한 복지 시설이다. 둘레를 따라 깔린 고무 트랙, 잘 가꿔진 조경, 연꽃을 비롯한 수생 식물, 저수지를 가로지르는 다리까지 공들인 흔적은 이용자를 절대적으로 환대했다. 밤에는 조명과 분수 쇼도 볼 만했다. 그래서 나는 조깅 목적이 아닌 한 잘 가지 않았다. 좋은 곳에는 사람이 몰렸고, 사람이 몰린 곳은 좋은 곳이 아니었다.
비 오는 날에 저수지에 오는 사람이 드물 거라는 확신에 발 젖는 찜찜함을 감수했다. 10시 30분에 개점하는 인근 짬뽕집에서 브런치를 먹고, 11시에 개점하는 카페 옥상에서 책을 읽기로 했다. 아침에 깼을 때만 해도 내 계획에는 문제 없었다. 평소의 내게는 결계가 될 만큼 비는 넉넉하게 쏟아졌다. 그러나 10시 15분, 맨발에 크록스를 신고 집을 나설 때 비가 그쳐버렸다. 하, 하아, 하하, 끄무레한 하늘에 욕을 담은 말줄임표를 끔뻑끔뻑 찍었다. 오늘 일정 대안이 없었으므로 비 온다는 일기 예보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손에 들린 장우산이 무안했다.
나는 마수걸이 손님이었다. 빗길을 걸어 와 먹는 짬뽕은 빼앗겼지만, 시장이 반찬이었다. 브런치 짬뽕 먹겠다고 아침을 굶었다. 이렇게 맛깔난데, 무릎 아래가 젖어 몸이 오들오들 떨렸으면 얼마나 더 맛있었을지 아까웠다. 빈 홀에서 사장님은 양파, 단무지, 춘장을 미분했고, 나는 열심히 적분했다. 태풍 부는 날의 기약이 적분상수처럼 남았다.
노인 요양원에서는 노랫소리가 새 나오고, ‘인터넷 천국’ 간판이 조용히 낡아가는 주택가 골목을 지나 남매지 옆 카페에 도착했다. 도보 1-2분 거리였다. 이번에도 나는 마수걸이 손님이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3층 옥상으로 올라가니,
끝내줬다.
아무도 없어서 이 고요한 저수지가 온전히 내 것이었다. 사람이 없는 게 이토록 좋으면서 폐가는 왜 두려웠는지 정리되지 않았지만, 일단은 이 순간에 집중했다.
책을 읽기에는 아까운 시간이었다. 텅 빈 옥상, 시야를 가득 채운 저수지, 저수지에서 얼굴로 불어오는 바람, 바람이 달뜬 체온을 식혀주는 쾌적함과 세상의 잡음을 잠재운 바람 소리가 채워내는 고요, 온 세계가 ‘엠씨스퀘어’였다. 바람이 산만함을 가지쳐냈다. 우뚝 솟은 집중력은 크고, 아름다웠다.
책을 덮고 노트를 폈다. 계획만 할 뿐 망설이고 있던 브런치 매거진 [쓰레기 편지]의 ‘육식의 딜레마’, ‘고릴라’를 200자 원고지 10장 안팎 분량으로 썼다. 커피는 바람에 금방 식었고, 산도가 높아 입에 맞지 않았지만 알 바 아니었다. 길든 짧은 하루에 한 편 쓰면 충분히 건전한 하루를 보낸 셈 쳤는데, 가볍게 썼다고 해도 이날 작업량은 이례적이었다. 글 쓰는 중간에 2층 화장실 한 번, 쿠키 사러 1층에 한 번 내려갔다. 12시 30분이 넘도록 손님은 나뿐이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제부터 낮 최고 기온 28도 미만일 때 비 오는 날, 이곳은 내 가리봉동이었다. 글도 돈 안 주니 사실적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청와대까지 진격하는 기분으로 ‘라이언’을 쓰기 시작했다. 사건을 서술하다가 3.6장부터 생각을 다듬어야 해서 뭉그적거리고 있을 때 비가 왔다. 바람 타고 앞에서 들이닥쳤다. 옥상 안쪽에도 빗방울이 찍혔다. 풍욕하긴 좋았지만, 종이는 빗방울마다 울어대서 노트를 덮었다. 오후 1시 50분이었다.
2층으로 대피했다. 이미 하루치의 쓸모를 다했으므로 나머지 시간은 덤이 되어도 좋았다. 『1Q84』를 폈다. 요즘 바빠서 영 진도가 안 나갔다. 사실 지금도 글을 끄적댈 게 아니라 논제를 분석하고, 방학특강과 홍보 계획을 짤 때였다. 그러나 승리 때문에 문제 생긴 빅뱅처럼 에라 모르겠다. 언제는 뭐 내 삶이 승리였던가. 게으름을 빅뱅했다. 뱅, 뱅, 뱅.
빵야, 빵야, 빵야, 총이라도 쏘고 싶었다. 2층에는 세 팀이 있었다. 두 팀은 나 같은 카공족이었고, 한 팀은 아주머니 4명 무리였다. 스타벅스의 음악은 공간을 윽박질렀지만, 이곳 음악은 배경에 충실했다. 그러나 스타벅스에는 대화를 나누는 사람보다 카공족이 많았지만, 이곳은 아주머니들의 수다터인 듯했다. 다음 손님 무리도 아주머니들이었다. 무릎 담요 덮은 지 10분도 안 돼 미련 없이 자리를 뜰 수 있었다. 내겐 아직 날것의 저수지가 있었다.
비는 더 거세졌다. 바람을 타고 30도 각도로 미끄러져 내렸다. 예보된 풍속은 3-4m/s였다. 이런 날은 아무리 날씨가 좋아도 자전거도 타지 않았다. 역풍에 허벅지가 터져나갔다. 걸은 지 3분여쯤 되자 허벅지까지 젖어나갔다. 비 오는 저수지 정자에서의 독서는 불가능할 것을 예상하면서도 일단 걸었다. 여차하면 2.5km 돌고 귀가하면 그뿐이었다.
지형지물 때문에 바람이 약해져 우연히 비가 들지 않은 공간을 그렸다. 말이 안 된다는 건 알았지만, 소망이라는 게 본래 그랬다. 걷다 보니, 이 와중에 그런 공간이 있었다. 정자 아래 ㄷ자 모양으로 배치된 벤치 세 개 중 하나는 절반은 흥건했지만 나머지 절반은 미세 물방울이 튀어 있을 뿐 말끔했다.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젖은 벤치는 그 자체로 결계로서 머물려는 사람을 물리쳐 줄 것 같아서 든든했다.
그곳은 모두가 ‘no’라고 할 때, 홀로 ‘yes’한 자리였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는 좋아할 만한 이유가 있지만,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것에도 사각지대가 있다. 내 인생은 이 사각지대를 좇는 모험이 될 것 같았다. 시대를 상실한 것이든, 상실이 시대가 된 것이든 나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시민으로서 색채가 없는 하루, 키를 쓰다듬을 것이다. 더 이상 자라지 않을 키를 읽어주는 기분으로 책을 폈다. 천둥이 낮게 그르렁거리고 불규칙하게 하늘이 번쩍대는, 낭만 오지고, 지리고, let it go, let it be, hey jude don’t be afraid였다. 조금 초탈해졌다. 낭만 고양이가 티라노사우르스 앞다리를 물고 저수지 표면을 달려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일상이 재미없는 건, 내가 지나치게 과학적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밤하늘의 별자리는 재밌지만, 블랙홀의 양자역학으로 넘어가면 골치 아파진다. 이해하지 못할 양자역학을 바라보며 물리법칙대로 살려고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물리의 끝도 결국은 공허 아닌가. 공허해지기 전에 반짝, 기적처럼 낭만인 거지, 는 잠깐이었다. 세상은 역시 십인십색이었다.
그런 일을 하고 나면 그다음 일상 풍경이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겉모습에 속지 않도록 하세요. 현실은 언제나 단 하나뿐입니다. - 『1Q84』1권 p.23
우산 쓰고 수다를 떨어가며 깔깔대는 십색희(十色喜), 큰 소리로 통화하는 십색희(十色喜), 이어폰 없이 노래 듣는 십색희(十色喜), 비에 젖은 운동 기구를 굳이 끼익끼익 사용하는 십색희(十色喜)도 있었다. 뭐가 그리 즐거울까? 하긴 이 비에 책 읽겠다고 꾸역꾸역 나온 십색희(十色喜)도 있는데 뭐 어떠랴 싶었지만, 너네는 정말 씹, 말자.
끼익끼익, 운동하는 아저씨는 뜰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가 자리를 뜨면 그만이었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 폐가, 내 방, 무덤. 라면을 먹었다. 라면 9개 유통 기한 열흘 남았다. 내 라면이 유통 기한에 좇길 줄은 몰랐다. 올해 노트북에 팔 만 자는 족히 새겼는데, 이 글은 내 화석인가 대장경인가. 차라리 IQ 84가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비 오는 날에는 또 가리봉동에 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