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사업이라고 생각했다. 성과 없이 인생만 축낸 브런치의 시간이 역으로 내 증명서가 될 기회였다. 더군다나 2025년은 몇 년 전, 여기저기에서 본 사주에서 내 운이 크게 트이는 해였다. 심지어 결혼운까지 들었다. 결혼운은 믿지도 않았고, 원하지도 않았다. 다만, 결혼이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기를 바랐다.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 [2025년]은 부적처럼 작동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다보니, 어떻게든 되었다. 생이 사주대로 흘러가기 직전이었다.
감점 사유가 없었다. 서류 정도는 통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5월 16일, 서류 합격자 개별 발표 예정이었으나 메일이 오지 않았다.
5월 19일, 확실히 나는 화가 나 있었다. "끊이지 않는 잔기침을 본다. 바이러스새끼들. / 난 왜 화가 나 있을까."라고 썼다. 저수지 옆 카페 테라스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나쁘지 않은 하루를 보내는 중이었지만, 머릿속은 내가 왜? 내가 왜? 시끄러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역시나? 역시, 나. 희망따윈 가지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왔다. 저녁쯤 확인한 메일함에 서류 합격 통보가 와 있었다. 양손을 번쩍 듦으로써 내가 화 나 있던 이유를 납득했다. 세상이 순해졌다. 역시, 나. 내가 떨어질 이유는 없었다.
남은 것은 발표였다. 3:1, 그리 높지 않은 경쟁률, 해 볼만했다. 그런데 발표라니? 면접이 아니라 발표인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심사위원이 내 서류를 다 숙지하고 있는 것 아닌가? 에라 모르겠다. 그냥 대화 아닌가. 어이없게도,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학생들 공모전 제출할 때는 이전 수상자 글 확인하고, 면접볼 때는 예비 문제 뽑아 시뮬레이션을 돌렸지만, 내 일에는 '내가 낸데 뭐', 낭중지추를 믿었다. 갖잖은 오만이었다.
서류 합격한 것만으로도 시지프처럼 살아온 시간이 일정 부분 인정된 것 같았고,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면접을 보는 사실자체가 흥미로웠다. 당일 아침까지 별 생각 없었다. 행복회로만 돌렸다. 아직까진 하루오와 강사를 이분해서 운영하고 있다. 내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은 하루오를 모른다. 이 지원 사업에 선발되면 둘을 일원화 시켜서 내가 바쁜 게 아니라 '시간이 비좁다'고 말한 이유를, 내가 당신들을 만날 시간 없는 이유를, 내가 학원장이 되려고 방향 설정을 하지 않는 이유를 깔끔하게 설명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설명될 수 있는 당당한 나'를 가진다, 5월 26일 아침, 뭐, 그랬다.
무속은 또 내 편이었다.
면접은 2시 20분이었고, 나는 9시 10분에 도착했다. 루틴이었다. 그 주변을 살펴보고, 가능하면 시험장까지 훑어보며 동선을 상상했다. 낯선 공간을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상상 속에서 익숙해져야 마음이 편했다. 어차피 오전에는 카페에서 글을 쓸 루틴이었므로 조금 일찍 일어난 것 외에 바뀐 건 그리 없었다.
시작부터 틀어졌다. 문이 잠겨 있었다. 출입 버튼을 눌러 허가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었다. 2시 20분 면접인데, 9시 10분에 들여 보내달라고 할 순 없어 그냥 인근 스타벅스로 갔다.
"2025년 5월 26일 오전 10시경, 대구 동구 신천 스타벅스 DT점 창가에 앉은 사내를 죽여버리고 싶다." - 브레인스토밍 후, [때리다]의 첫 문장이 이건 걸 보면, 주제 때문이 아니라 이미 마음이 편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조금 시끄러운 것 외엔 평소와 다를 바 없없다. 브런치를 먹고 글을 쓰다가 점심은 콘텐츠기업지원센터 건너편 식당에서 굴국밥을 먹었다. 먹고 보니, 우리 동네에서 자전거로 20여 분 거리 매생이굴국밥집이 폐업한 이유는 부당했다. 존망은 실력 차이가 아니었다. - 나는 어떤 차이를 낼까.
내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평가장은 1층이었다. 다른 여성 참가분도 오셨다. 평가장 옆 직원 휴게실로 보이는 곳에 자리 잡으려니 직원분이 오셔서 대기실은 2층에 있다고 알려줬다. 나는 꽤나 천하태평하게 있었고, 떨림 같은 것도 없었는데, 몸은 솔직했다. 소변과 대변이 마려웠고, 입이 말랐다. 같이 있던 여성분은 합격자가 아닌데 안내 메일을 잘못 이해하고 오셔서 그냥 돌아가셨다. 나는 화장실로 가서 마렵지 않은 똥을 눴다. 배는 화장실에 가기도, 참기도 애매할 정도로 계속 아팠다. 목이 탔지만, 화장실을 자극하게 될 게 뻔해서 목을 축일 정도만 물을 마셨다.
물과 화장실은 1분이 중요한데, 내 순서라고 생각한 시간에 10분쯤 지연되었다. 뭔가 확실하게 틀어지는 기분이었다. 심장 소리가 들렸고, 내가 굉장히 중요한 기로에 놓여 있다는 자각이 과해졌다.
평가장에 들아서며 숨을 크게 들이마셔서 [냄새맡다]의 경험을 수집할 계획이었다. 냄새와 기억의 상관성을 강하게 뒷받침할 근거가 될 터였다. 이삼일 전부터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한 일이었지만, 계획이 한 번 틀어지자 여유가 없었다. '발표'가 뭔지도 모르겠고, 이 단체가 어떤 단체이며 어떤 진의로 이 사업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평가장은 지나치게 넓었다. 심사자 5명이 U모양으로 앉았는데 나는 가운데가 아니라 U의 왼쪽 끝에 서서 발표해야 해서 심사자 둘은 얼굴을 볼 수도 없었다. 낯선 공간감, 기대와 다른 상황, 똥 마려움, 갈라진 목소리로 복합된 내 발표는 엉망이었다. 이후 질문에 대한 대답도 엉망이었다. 내가 어필한 건 10월 3주차까지 원고가 준비되었다는 징징거림뿐이었다. 내가 떨어질 이유를 실시간으로 납득했다. 다른 지원자들도 마찬가지였을 테니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평가장을 나갈 때부터 허망했다. 기억나는 냄새는 없었다.
이날 밤 꿈을 꿨다. 창 밖에 큰 강이 있었다. 분명 흙탕물인데, 1미터는 됨직하고 빵이 두터운 잉어들이 헤엄쳐 다니는 게 보였다. 잡고 싶었지만 나는 창 밖을 벗어나지 못했다. - 창 밖의 큰 물, 나의 할 수 없음은 꽤 반복되는 패턴이라 해석은 쉬웠다. 이번에는 내 창 아래에 있는 사람이 강에서 잉어가 아니라 이상한 장난감을 낚아낸 게 좀 달랐다. 나는 그가 부러웠다. 나는 좀 더 집중했어야 했다. 왜, 기회를, 왜.
5월 28일 '후보' 메일을 받았다. 로그인, 로그아웃 몇 번을 반복해도 나는 후보였다. 탈락의 우회적 표현임을 안다. 발표일에 잘못 오신 여성분을 돌려 보낼 때도 '발표 대상자 중 결격 사유가 생길 경우 다시 연락을 준다'고 했다. 애초에 서류 심사에서 다 따져 봤을 테니 결격 사유가 생길 리 없었다. 희망을 가지지 않고 어차피 안 되니 미리 포기한 채 그저 성실히 살아갈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희망을 거하게 건 모양이었다. 발표 전까지는 진짜, 내가 될지 알았다, 이번엔. 2025년이니까. 술을 마실 줄 알았다면 이날 고주망태 각이었다. 극심한 두통, 몸은 정말이지 솔직했다. 오후 9시부터 갤갤대며 해야 할 것을 간신히 하다가 11시 전에 수면제를 먹고 잤다.
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쓰는 데 너무 많은 인생 비용을 치르는 게 문제다. 살면서 써야 할 텐데, 쓰면서 산다. 그럼에도 아무 성취를 만들지 못하며 반복되는 무능의 증명, 정말이지 지긋지긋하다. 지금은 투덜대지만, 아마 또 쓸 수밖에 없을 거다. 그것 외엔 할 줄 아는 게 없다. 계속 무능한 채, 무의미만 집적대다 죽겠구나, 인생이란 참 하잘것 없구나, 감정 과잉을 지금은 어디에도 토할 데가 없다. 동면, 그런 게 가능하면 좋겠다. 그런데도 6월이면 [몸 단어 수집가] 2025년 연재분 초고를 완성하게 될 거다. 수면제만 내 몫이다.
차라리 인간 실격이면 편할 것 같다. 끝낼 수 있을 테니. 언제까지, 어쩌자고, 인간 후보다. 지겹다. 2025년 5월 29일 11시 20분, 인근 대학 라운지에서 글을 쓰는 사내를 죽여버리고 싶다. 계속 쓰는 수밖에 없으니 이미 죽어 있으려나. 이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 그런 한가한 위로가 필요한 게 아니다. 그건 당연한 거다. 시지프도 우울할 때 있을 거다. 뭐, 그 정도다. 이미 내 정체성이 되어버린 패배. 반갑지 않지만 별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