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에서 창작권으로
나는 창작한다. 고로 존재한다. - 인공지능 시대가 요청하는 새로운 정언명령이다. 그러나 낡은 자본주의가 시대를 가로막고 있다. 최초의 저작권법인 1709년 앤 여왕법은 창작자 보호와 지식 공유의 균형을 추구했다. 하지만 19세기 인쇄술과 타자기, 복제 기술의 등장은 창작물을 자본의 소유 대상으로 만들었고, 저작권은 점차 배타적 독점 이익을 보호하는 도구로 변질되었다. 오늘날 창작물은 공공적 접근보다 시장 유통을 우선하며, 법은 창작자보다는 소유자를 위해 작동한다. 산업화 시대에 설계된 이 제도는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 등장 이전에는 옳았을지도 모른다.
저작권은 본래 노동경제에서 탄생했다. 무형의 창조물에 경제적 보상을 부여하기 위한 제도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해야 했던 사회 구조의 필연적 산물이었다. 당시의 창작은 표현이라기보다 삶의 시간을 투자하는 생산적 노동이었으며, 하나의 작품은 창작자의 생존 자체와 직결되었다. 저작권은 바로 이러한 창작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였다.
그러나 이 전제는 급속한 기술 발전과 사회 구조 변화로 인해 점점 더 희박해지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은 창작 과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창작은 여전히 자원을 소모하지만, 기술이 진보할수록 그 비용은 결국 '0'에 수렴할 것이다. 영상 편집이나 예술 설계처럼 일부 고강도 창작 분야도 존재하지만, 생성형 인공지능은 이마저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Bloom 등(2020)은 창의적 발견의 난이도 증가를, ESSEC(2023)은 혁신이 점진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 정체 현상은 OECD(2023)의 문화·교육 전반에 대한 평가에서도 반복된다. 세 보고서는 각기 다른 영역에서 하나의 결론, 즉 ‘창의의 고갈’을 지목하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이 정체 국면을 돌파할 도구이자, 창작 패러다임 전환의 계기다.
창작은 본래 개인의 고립된 천재성이나 독창성에만 기반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집단적 기억과 경험 위에 축적된 문화적 유산이었다. 개인은 이전 세대의 작업을 계승하고 변형하며, 시대의 기억 위에 천천히 새로운 작품을 쌓아왔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기보다, 과거의 흔적을 조율하고 재배열하는 고된 과정이었다. 그러나 생성형 인공지능은 이 축적의 리듬을 근본적으로 압축한다.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루 만에 수십만 장의 이미지를 분석하고 새로운 양식을 조합하며, 수년간 쌓아야 할 악보와 조형 감각을 단시간에 학습한다. 마치 재래식 육종을 유전자 편집 기술이 대체한 것처럼, 창작은 더 이상 한 사람의 두뇌로 이루어지는 느리고 고된 노동이 아니라, 수천 개의 GPU가 병렬로 작동하는 계산 전쟁이자 속도의 투쟁으로 변모한 것이다.
현재 저작권법은 저작자 사망 후 70년, 법인은 95년까지 보호 기간을 규정하고 있다. 이 기준은 20세기 베른협약 개정과 1998년 미국 소니보노 저작권 연장법을 통해 확립되었다. 연장 배경은 자본의 이익이었다. 애초에 사망자에게 소유권은 적용될 수 없는 개념이었다. 그럼에도 디즈니를 비롯한 대형 콘텐츠 기업들은 대표 캐릭터 소유권을 장기 보유하기 위해 법 개정에 조직적 로비를 벌였고, 이는 흔히 '미키마우스 보호법'이라 불릴 정도였다. 그 결과 저작권은 창작자의 생존을 보장하는 장치가 아니라 자산 독점의 법적 수단으로 전환되었다. 권리는 더 이상 창작자를 위해 작동하지 않는다. 이제 그것은 자본과 법인을 위한 시스템이다.
저작권은 1998년 당시 창작자 사후 70년간 보호를 보장하지만, 이 70년은 인공지능의 시간 감각으로 환산하면 인간의 9,800년에 해당한다. 인간에게는 한 세대의 유예이지만, AI에게는 문명이 바뀌고도 남을 만한 시간이 잠겨 있는 셈이다. 이 시간 감각의 격차는 저작권 제도가 기반한 전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드러낸다. 인간이 세종대왕에게 한글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한다면, 우리는 그 불합리함을 직관적으로 감지할 것이다. 같은 감각을 인공지능에도 적용해야 한다. 보호의 기준이 인간 수명이 아닌, 인공지능의 창작 속도로 재설정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속도 차와 법적 불일치는 실제 시장에서도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최근 유행한 ‘지브리 필터’ 사례는 그 아이러니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만든 이미지에 대해 지브리는 저작권 침해를 주장했지만, 정작 가장 큰 이익을 얻은 것은 지브리 자신이었다. 필터 유행을 통해 브랜드의 팬덤은 확장되었고, 기존 콘텐츠에 대한 소비자 충성도는 오히려 강화되었다. 법은 침해로 규정했지만, 시장은 확산과 수혜로 응답한 셈이다. 이 사례는 저작권이 창작을 보호하는 장치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와 창작 흐름을 제약하는 규제로 작동할 수 있음을 드러낸다. 동시에, 공유가 반드시 침해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창작자에게 더 큰 이익과 영향력을 안겨줄 수 있다는 가능성도 보여준다. 법의 명분과 시장의 반응이 충돌할 때, 제도는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되묻게 된다.
저작권 제도의 모순은 창작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생산과 분배, 노동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정보 노동과 물질 생산이 자동화되면서, 인간 노동 없이도 막대한 부가 창출된다. 전통적인 노동 기반 복지체제는 급속히 무너지고 있고, 기본소득·로봇세·데이터세 등 새로운 분배 체계가 논의되고 있다. 예컨대 데이터세는 플랫폼 기업이 이용자 데이터를 수집해 얻는 수익을 과세 대상으로 삼자는 제안으로, 디지털 노동 개념의 연장선상에 있다. 국가는 더 이상 '노동 제공자'가 아니라, '생존 보장자'로 역할을 재정립해야 하는 시대에 진입한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인간은 '노동하는 존재'가 아니라 '창작하는 존재'로 진화하고 있다. 기본소득 사회에서는 창작이 경제적 수단이 아니라 본능적이고 존재론적 발현이 된다. 팬덤 문화, 오픈소스 프로젝트, 오타쿠 창작 등은 이 흐름을 선도하고 있다. 이들은 이윤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면서도 활발히 창작하며, 프로슈머로서 창작과 소비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이러한 창작은 생계가 아닌 자발적 정체성 실현이자, 존재의 서명과도 같은 행위다. 그러나 현 저작권 제도는 이 흐름을 억제할 규제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창작물을 소유에서 해방시키고 표현의 자유를 극대화하며, 지식의 공공성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방향으로 저작권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기술 문명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적 지체 앞에 서 있다. 변화된 시대의 물꼬는 결코 거스를 수 없다. 점진적 개선 시기가 아니라 혁명의 시기다. 제도의 개선이 아니라 제도의 창발이 요청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시대에 질문하고 해답을 찾아야 한다. 저작권의 고고한 전통은 자칫 악수(惡手)가 될 수 있다. Copyright와 Copyleft가 맞잡게 될 불가피한 악수(握手), 바로 그 지점에 창작의 미래가 놓여 있다. 저작권이 아니라 창작권, 패러다임을 뒤집을 때다. 생각하는 인간의 다음 윤리다.
[참고문헌]
Bloom, N., Jones, C. I., Van Reenen, J., & Webb, M. (2020). Are ideas getting harder to find? American Economic Review, 110(4), 1104–1144. https://doi.org/10.1257/aer.20180338
ESSEC Business School. (2023). The worrisome decline in breakthrough innovation. https://knowledge.essec.edu
OECD. (2023). Artificial intelligence in science: Challenges, opportunities and the future of research. OECD Publishing. https://doi.org/10.1787/a8d820b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