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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수시 논술 학원 고르는 방법

by 하루오

“우리 애가 가능성 있을까요?”


학부모님의 질문에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학생은 가능성이 낮았다. 학부모님은 얼굴을 붉히셨다. 학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원장님께서는 그렇게 상담하면 안 된다고 하셨다. 학부모님이 듣고 싶은 것은 사실이 아니라 희망이므로 강사는 학생이 집중할 수 있도록 확신을 주고 결과가 나쁘면 욕받이가 되어주면 된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수강료 때문에 만들어낸 궤변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원장님의 나이가 되자 나도 가능성을 제시해댔다. 학생이 원하는 진실은 사실이 아니라 희망이었다. 어차피 이 학생은 입시 최후의 보루로 논술에 내몰린 것이므로 나와 수업하지 않으면 다른 학원을 찾아갈 것이었다. 기운 빠진 채. 논술 강사에게 12월의 욕받이는 숙명이다.


대입 논술 시장은 1학기 기말고사 끝나는 7월부터 실질적으로 개장해서 9월 말에서 10월 중순까지 유효하다가 수능 직후 열흘 회광반조한다. 고2 마칠 때 학생부에서 희망이 없어지면 학생에 따라 12월부터 논술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3월 새 학기에 맞춰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일찍 시작할수록 좋지만 수능 공부와 균형을 생각하면 기말 끝난 직후도 괜찮다. 예전만큼 어려운 시험이 아니다.


당연히 일찍 시작한 학생들에게 유리하다. 그러나 일찍 시작한 학생은 대체로 그리 열심히 하지 않았다. 봄에는 논술이 1순위가 아니어서 어렵다고, 바쁘다고, 답안을 작성하지 않는 경우가 잦았다. 중간, 기말 고사 때 휴강하면 흐름도 끊겼다. 자전거를 10년 정도 타지 않아도 다시 탈 수 있지만,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논술은 멈춰 있는 동안 쉽게 휘발되었다. 차라리 기말고사 이후 끊김 없이 논술을 1순위, 1.5순위라도 두면서 집중하는 게 낫다. 예전만큼 어렵진 않아도 만만한 시험은 아니다.


대입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의 치명적인 문제는 ‘대입 논술’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논술 학원에 등록하지만, 마케팅이 본질이 된 곳에서 시간을 까먹곤 한다. 대충 가르쳐도 학생들은 잘 모른다. 반평생 공부한 국영수는 경험 데이터가 있지만, 논술은 처음이어서 비교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논술은 본래 이런가 보다’ 어영부영하는 사이에 여름이 가고, 가을이 닥쳐 최저에 불 떨어진다.


잘 가르쳐서 합격을 많이 시켜야 다음 해를 기약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논술 학원의 영속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은 될성 부른 나무 확보다. 개똥 같이 가르쳐도 찰떡 같이 알아 듣는 학생들이 있다. 경쟁률 50:1을 넘나드는 전장의 생존자는 주로 그 학생들이다. 유명한 학원들이 일단 이 학생들을 쓸어 가면, 이 학생들은 어떻게든 결과를 내어 학원의 유명세를 영속시킨다.


신입 상담을 하다보면 ‘와, 저렇게 가르치고 돈 벌어 먹는다고?’ 놀랄 때가 많다. 대충 가르치는데도 나보다 많이 벌었다. 최근 전주에서 상담 온 대입 논술 수험생이 다니던 학원에서는 학원에서 글을 쓰고 20여 분 첨삭한다고 했다. 첨삭도 답의 맞고 틀리고를 지적하는 정도일 뿐, 왜 그 답이어야 하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특별히 가르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산에서 상담 온 편입 논술 수험생이 다니던 학원에서는 주제 관련된 설명이 주를 이룬다고 했다. 이 분은 30대 학원 강사였는데, 자신도 학원 생활 해봐서 첨삭 강사의 얇팍함을 알아 보고 대안을 찾는 중에 내게까지 연결된 것이었다. 강사로서 실력이 사업성에 밀리는 사태가 허망했지만, 내가 사업성을 압도할 만한 실력은 아니라는 말이기도 해서 강사로서 자존감이 뭉개지기도 했다. 당신들의 합격은 내 자존감이다.


논술 학원을 선택할 때, 강의하는 강사와 첨삭하는 강사가 분리되어 있는 학원만 피해도 절반 이상은 성공이다. 입시 논술 학습의 본질은 해제가 아니라 첨삭이다. 수험생들은 첨삭에 대한 무지 혹은 오해 때문에 비효율적으로 학습한다. 어떻게 푸는지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어떻게 쓰는지 이야기하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이행된다. 첨삭은 답의 맞고 틀리고를 따지고 문법, 맞춤법을 다듬는 것이 아니다. 학생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를 따지고, 학생이 생각하는 방식을 학교 측에서 요구하는 답으로 흐를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진단하고 이끄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학교 측 해제를 딸딸 외운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학생의 특성을 파악해서 유연하고 순발력 있게 대응하고, 학생의 발전 과정을 강사가 인지하고 있어서 다음 스텝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경험이다. 그러나 대형 학원 유명 강사분 실력이 대단하더라도, 첨삭 강사는 일종의 인턴이다. 학생들보다 논제를 미리 풀어서 조금 더 아는 정도로는 한계가 있다. 나도 그 과정을 거쳤기에 잘 안다. 어설픈 티 안 내려고 열심히 했지만, 지금의 나와는 내게 댈 건 아니었다.


주제 수업하는 데도 피해야 한다. 논술은 제시문에서 정보를 추출하고, 그 정보를 논제에 맞게 조합해서 자기 글을 써야 하는 시험이다. 논제는 인문학적 주제를 토대로 만들어지지만, 어떤 제시문이 주어지느냐에 따라 답안 방향이 달라진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선악, 인공지능과의 공존 같은 거시적인 사안보다는 특정 상황에서 개별적인 문제를 가지고 와 질문하는 경우가 많아 주제 수업은 도움이 안 된다. 그저 ‘이 배경 지식을 토대로 출제되었구나.’ 그 뿐이다. 답안의 논리를 결정하는 것은 논제와 제시문이므로 수험생이 함양해야 하는 것은 정보 활용 능력이다. 자기 글을 많이 써보는 것만이 왕도다. 글은 표현이 아니라 입력된 정보에 부여된 질서를 가시적으로 나타내는 것일 뿐이다. 본질은 사고 능력이어서 논술은 학습이 아니라 체득의 영역이다.


“제가 가능성 있을까요?”

불확실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답이 정해진 질문을 해온다. 이때 내가 하는 대답은 맞는 말도 아니고 틀린 말도 아니다. 퀀텀 점프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우리는 꾸역꾸역 쓰면서 그 시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쓰는 한 기다림은 고도를 닮지 않는다. 그러므로 좋은 논술 학원의 조건은 하나다. 학습자의 글을 얼마나 잘 돌봐주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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