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이전에 생물학이 있다. 남녀가 똑같다고 생각한다면, 자식을 키워보지 않았거나 학생들을 가르쳐 보지 않은 이들일 것이다. 남학생 다루듯이 여학생을 대하면, 그 학원은 망한다. 여학생 다루듯이 남학생을 대하는 건, 태생적으로 안 된다. 어떻게 원숭이들을 사람처럼 대한단 말인가? 나 또한 이들과 같은 시기를 거쳤다는 게 한심하고 부끄럽다. 아들 키우는 엄마들 파이팅, 아들 둘 키운 우리 엄마도 파이팅이다.
“야이 원숭이 새끼들아!”
“우끼끼끼!”
초6들은 웃으며 지랄발광했다. 이들을 설명하기에 지랄보다 적합한 단어를 찾을 수 없다. 혼자 있을 때는 ‘한 명’이지만 무리지으면 ‘여러 마리’가 되어 없던 지랄도 상호확증하며 증폭되었다. 초5-중1 남학생을 품은 것은 ‘저것들은 스마트폰 쓸 줄 아는 원숭이다.’고 생각한 이후였다. 원숭이가 똥오줌도 가리고, 책도 읽고, 글도 쓰니, 기특했다.
이들은 소통할 때 말하는 게 아니라 소리를 질렀다. 협력적 공감보다는 승부를 위한 논리에 집중하나 논리가 부족해 언성이 높아졌다. 수업 맥락과 상관없이 일론 머스크와 김정은이 무지성으로 반복하는 것은 약과였다. 일베에서 파생된 밈에도 절여져 ‘기모찌’는 기본 소양이었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그나마 걸러진 편이었다. 비학군지 야생 원숭이들을 가르친 20대 30대 여성이 남학생을 ‘한남유충’이라 부르며 남성 혐오자가 되는 것도 이해해줄 만도 했다. 초등학교 선생님들도 파이팅이다.
이들은 자기가 아는 것을 과시하려고 필사적이다. 유튜브에서 얻은 ‘아는 것’을 따다다 쏟아내고 늠름해했다. 이들이 ‘아는 것’은 주제와 관련 없는 data나 information이었다. 내 역할은 자기가 한 이야기들이 knowledge가 결핍된 noise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었다. ‘오냐 이 원숭이 놈아, 논리 들어간다, 아가리 벌려라.’를 몇 번 시전하고 나면 다소 얌전해져 ‘학생’으로의 변태를 준비한다.
가장 골치 아픈 것은 호기심을 가장한 어깃장이었다. 명제를 정립할 때마다 ‘왜요?’나 ‘아닐 수도 있잖아요?’를 남발하는 학생들이 있다. 질문할 뿐, 생각하지 않는다. 10층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는 상황에서 ‘이렇게 저렇게 해서 안 죽을 수도 있잖아요?’ 같은 반문에 호기심이나 창의성은 없다. 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 수업 피로도가 더 높아서 남학생 교육비는 20% 할증이라도 붙이고 싶었다.
이제는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다. ‘왜?’를 되쳤다. 먼저 이유를 설명하라고 했다. 남학생들은 대체로 설명하지 못했다. 남학생이 글을 못 쓰는 것은 목표 지향적 남성성에서 기인하는 듯했다. 남성성은 사냥에서 비롯된다. 목표물을 잡고 나면 작업이 끝나듯, 중심 내용을 쓰고 나면 문단이 사실상 종결된다. 남학생의 머릿속에 뒷받침 내용을 쓸 이유가 없으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600자도 쓰지 못하는 호기심은 휘발되고 우끼끼만 남는다.
내 리더십이 부족했다. 이들을 통제하는 방법은 고작, 퐁력이었다. 2리터 들이 빈 생수통의 이름은 ‘99강 플라스틱 정의봉’이었다. 이걸로 머리통을 때렸다. 힘 조절하지 않고 풀스윙했다. 소리만 요란하지 전혀 아프지 않았다. 맞고도 낄낄대면 팔뚝을 때렸고, 그래도 낄낄대면 헤드락을 걸어 제압했다. 이게 익숙해지면 아무 이유 없이도 때렸다.
“왜요?”
“뭘 꼬라 보노? 눈 안 까나.”
여학생들은 이해할 수 없는, 유대였다.
이들의 장점은, 나와 동종이라는 것이다. 나도 별 수 없는 수컷이어서 우리는 대체 저런 짓을 왜 하나 싶은 무모한 짓과 사소한 승부에 진심이었다.
“가위바위보 해서 진 놈이 초콜릿 위에 치약 짜서 먹어 볼까?”
내가 학생들에게 우끼끼 하자,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우끼끼 했다. ABC 초콜릿 위에 학생이 치약을 짰다. 많이도 짰다. 이런 일은 꼭 제안한 사람이 걸렸다. 두 번째 게임에서는 치약을 두 배로 짰다. 또 내가 걸렸다. 못 먹을 음식은 아니지만, 계면활성제가 뱃속에서 확실하게 자기주장해서 세 번째 게임을 제안하지는 못했다. 학생은 그날을 이 학원 와서 두 번째로 재밌는 날이라고 했다. 가장 재밌는 날은 99강 플라스틱 정의봉으로 내 머리통을 갈겼을 때였다.
학생들과 보드게임을 할 때도 있다. 머리를 써야 하는 카드 게임이었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녀석들은 과몰입했고, 자신이 붙으면 1,000원을 걸고 내게 도전하는 녀석들이 있었다. 신선한 두뇌는 확실히 학습과 응용이 빨랐다. 그러나 우리는 경험치 차이가 너무 많이 났다. 나는 초등학생을 상대로도 최선을 다했고, 반드시 수금했다. 경영 측면에서 보면 내가 적당히 잃어주며 학생에게 즐거운 경험을 심어주는 것이 효율적이었지만 게임은 게임이었다. 팽팽한 긴장감, 하지만 끝내 내가 이기고 마는 게임보다 즐거운 게임은 없었다.
집에 갈 때 내가 3층에서 가방 던져 주면 1층에서 받는 걸 즐겼고, 책상 끝에서 동전을 튕겨 반대편 책상 끝 가까이에 멈추게 하는 게임도 즐겼고, 내가 헷갈려하는 정보에 달려들어 사실 여부 검증하는데 500원, 1,000원, 딱밤 내기하는 데 스스럼없었다. 한 녀석은 숙제하지 않을 시에는 내 개가 되겠다고 선언했지만 역시 숙제를 하지 않았다. 나는 내 개를 중성화시킨 후 중성화인증서를 발급해 공부방 전체 학생들에게 공유했다. 또 다른 녀석은 숙제 안 하면 3,000원을 내겠다고 선언했다가 3주만에 6,000원을 냈다. 나는 공식 고자와 공식 호구가 유쾌하다. 콜라 한 캔 마시고 멘토스 삼킨 후 분출하는 거품을 오래 참는 놈이 이기는 게임도 하고 싶지만, 학부모님을 소환하게 될까봐 참았다. - 아저씨가 된 친구들은 이런 거 안 해준다.
인간은 과연 진화하는 존재다. 중2쯤 되면 여학생보다 만만해진다. 쉬는 시간에 누워 있다가 여학생이 오면 일어나지만, 남학생이 오면 ‘마, 니도 누브라.’ 같이 뒹군다. 모든 지랄 에너지는 PC, 스마트폰 게임에 집중되고, 게임 아닌 영역에서는 제법 사람다워진다. 중2병은 가정사일 뿐, 공부방에서는 이제 말이 통한다. 말과 글로 내게 처발릴 만큼 처발렸기 때문에 나는 녀석들에게서 말과 글의 우두머리 수컷으로 인정된다. 개인적으로는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이자 만만한 형 정도의 포지션에 섰다고 생각하지만 실체는 학생들만 알 일이다.
역대 주식 최대 낙폭을 기록한 월요일, ‘나도 월급만 날아갔으면 좋겠다.’는 내 스토리에 ‘ㅋㅋㅋㅋ’대며 좋아요를 눌러준 사람은 내 환갑에 1500만 원~2,000만 원 축의금 내겠다고 싸인한 중2들과 완전 자율주행자동차 나오면 차 뽑아주겠다고 선언한 중3이다. 원숭이를 사람으로 만드는 일을 하는, 나는 신이다. 꽤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