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 : 봄의 엄마

by 하루오

쑥은 찾아 내는 봄이다. 논두렁, 둑, 공터, 길가에 반드시 있다. 꽃처럼 자기 주장이 강하지 않다. 회녹색 잎은 지푸라기나 시멘트와 채도가 비슷하다. 엄마를 닮았다. 쑥을 굳이 찾아 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나면 문득 보인다. 나는 엄마를 밟고 컸다. 엄마도 당신을 주장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의 꽃이고, 엄마는 꽃이 아닌 모든 것이었다. 엄마가 쑥향이어서, 쑥은 봄의 엄마다. 쑥은 엄마처럼 가장 낮은 자리에서 질기게 위대하다. 밟혀도 다시 올라온다. 내가 찾든 말든 언제나, 있다.


쑥은 촉각과 후각으로 확인하는 봄이다. 보는 쑥은 의미 없다. 돼지풀, 사철쑥과 구분이 쉽지 않다. 잡초는 꽃을 피워야 야생화로서 이름을 획득하지만 쑥은 꽃이 아닌 잎으로 이름을 증명한다. 쑥을 캐본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쑥은 쉽게 잡초로 확정된다. 만져 보면 잎 뒤에 솜털이 보송보송하다. 쑥은 향으로 자신을 주장한다. 잎끝을 짓이기면 풀과 흙이 복합된 향이 쌉싸름하다. ‘약쑥’은 감각직관이다. 엄마 손이 약손일 때, 엄마 향이 시간을 건너 온다.


쑥은 놀 수 있는 봄이다. 초등학생 때, 쑥 캐기는 놀이였다. 채집이 아니라 안전한 사냥이었다. 친구들과 검은 봉지, 낡은 과도를 들고 풀이 난 자리를 탐험했다. 캐다 보면 눈으로도 쑥이 구분되었다. 왼손으로 보드라운 잎을 쓸어 올리고, 오른손에 쥔 칼로 흙을 찔러 뿌리를 끊었다. 남자 아이에겐 물리칠 악당이 필요해서, 겨울은 악당이었고, 과도는 엑스칼리버였다. 우리는 악당을 물리치고 전리품을 얻었다. 손끝에 쑥향과 흙내가 피냄새처럼 맺힐 때, 우리는 늠름했다. 봄의 전사는 쑥을 두고 고작 꽃을 구경 가는 어른 나들이객을 이해하지 못했다.


쑥은 처음 먹을 수 있는 봄이다. 먹을 게 없던 시절은 먹을 수 있는 사실 자체가 봄이었을 것이다. 쑥은 냉이, 달래와 함께 봄 채소 3대장이다. 냉이는 뿌리를 깊이 파내야 해서 캐지 않았고, 달래는 구분할 줄 몰라서 쑥만 캤다. 내겐 쑥이 으뜸이었다. 어차피 냉이는 시래기 대신 국에 들어가는 재료였고, 달래는 양념장으로만 쓰였다. 지금은 없어서 못 먹지만, 그 나이는 엄마가 만들어 내는 냉이와 달래 맛을 모를 때였다. 쑥맛 역시 몰랐지만 쑥버무리는 달랐다. 쑥버무리에서 쑥은 주요 재료이자 간식이었다. 밥보다 간식이 더 좋을 때였다. 입혀진 밀가루 맛으로 먹었지만, 내가 관여한 봄이라는 사실이 맛있었다. 봄은 엄마로 완성되는 계절이었다.


쑥은 관심 없는 봄이다. 어딘가에 있겠지만, 보려하지 않는다. 먹으려 하지도 않는다. 경험하지도 않는다. 이미 나도 꽤 회녹색이다. 나는 시장에 노동을 쑤셔 박고 돈을 번다. 나의 계절은 범이다. 생이 돈에 범해진다. 계좌에서 향이 나지 않지만, 장바구니에 담긴 것들을 결제할 수 있을 만큼 힘이 세졌다. 택배 상자를 열 때 잠깐 꽃피는 흥분이 잇대져, 사계절이 범이다. 필요하면 터치 몇 번으로 캐진다. 쑥을 캔들, 요리해줄 엄마는 멀리 있다. 엄마가 안부 전화로 존재하는 만큼, 쑥은 멀리 있다. 쑥의 안부를 묻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이제 쑥은 잡초다.


쑥은 처음 먹은 몸이다. 단군신화에서 곰의 주식이었다. 마늘의 정체는 분분하지만, 쑥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지천이 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명에서 쑥은 기각된다. 어딘가 있더라도 판결은 바뀌지 않는다. 쑥국은 팔지 않고, 쑥버무리를 먹어야 할 만큼 가난하지 않고, 쑥떡은 빵을 이기기 힘들다. 이젠 식탁에 올라올 일이 없다. 쑥은 뜸, 목욕탕, 비누, 화장품으로 피부에 양보된 성분이다. 쑥은 마트에서도 추방되었다. 이커머스에서만 상존한다. 조금만 사려면 재래시장이나 길가에 쑥처럼 앉아 있는 노파들을 찾아야 한다. 몸은 신화가 아니라 문명의 첨단으로 지탱된다. 쑥의 부재 속에 문명에 패배한 봄이 묻혔다. 쑥이 없어도 나는 무척 괜찮다.


쑥은 도다리쑥국으로 연명한다. 도다리가 쑥을 빌어 비로소 국이 되므로 쑥이 도다리를 거느린다. 단백질을 거느리는 채소는 드물어서 쑥은 아직 작지 않다. 도다리가 기억나지 않아 도다리쑥국의 정확한 맛을 상상할 수 없지만, 쑥국의 자식 범주로 이해하면 침이 돈다. 단조로운 ‘범날’, 도다리쑥국을 먹어 ‘봄’이려고 해도 도다리쑥국을 파는 데가 잘 없다. 있더라도 1인분은 잘 안 판다. 미해결 봄은 이 나이에도 엄마와 해결해야 할 숙제라니, 쑥스럽다. 그래서 나는 퍽 ‘쑥’스럽다. 쑥도 꽃이 피겠지만, 쑥꽃을 아는 사람은 없다. 나도 꽃이 없다. 아마 엄마는 읽어줄 것이다. 도다리쑥국을 먹을 때, 나는 도다리 부근에 도착한다. 쑥 안에 봄이 있다.


모든 풀은 쑥을 밟고 자란다. 쑥은 아직 추울 때 먼저 싹을 틔운다. 칼바람을 견디며 지푸라기의 색 위에 초록의 자리를 마련한다. 쑥의 자리는 풀이 싹을 내어도 되는 자리다. 모든 싹은 이름이 없다. 그저 초록이다. 쑥이 늙을 무렵, 풀은 꽃으로 이름을 가질 것이다. 버무려진 이름들이 쑥의 신화일 것이다. 쑥은 개나리, 진달래, 민들레, 벚꽃 아래에 반드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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