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 : 봄의 역학

by 하루오

노랑은 가시광선이 아니라 심리광선이다. 빛의 산란에 의해 하늘 꼭대기 햇빛이 옅은 노랑으로 퍼지는 과학을 모른다. 해는 아무리 봐도 하얗다. 해를 오래 바라보지 못해서 해는 잔상으로 기억된다. 기억은 ‘국민학교’ 앞에서 병아리 빛깔로 보정된다. 동요 ‘병아리떼 쫑쫑쫑 봄나들이 갑니다.’의 온기만큼 빛이 번진다. 햇빛이 닿는 간판, 아스팔트, 자동차 본네트에서도 병아리 솜털이 자라나도 괜찮다. 노랑이 투명해져 하양이 되나. 하양이 투명해져 노랑이 된다. 햇빛 속에는 예닐곱 살 아이의 손아귀에서 삐약대는 병아리가 산다.


봄은 노란색이다. 햇빛이 쨍한 날, 세상은 실제보다 한두 겹 부푼다. 눈을 질끈 감으면 눈꺼풀 아래에서 빛알갱이가 톡톡 터진다. 눈을 뜨면 잠깐 흔들리는 사물의 윤곽 사이에 납작하게 다려진 노란 빛이 아지랑이처럼 퍼졌다 사윈다. 세상은 빛의 잔여에 잠긴다. 따뜻함의 착시가 간지럽다. 해가 길어지며 착시는 현시가 되어간다. 빛이 닿은 손등이 노래진다. 손가락을 까딱대면 노랑이 투명해진다. 노랑은 붙잡히지 않고 꽃으로 물러난다. 봄은 노랑이 깊어지는 시간이다.


봄은 산수유로 시작된다. 매화가 먼저 피지만 매화는 하얘서 눈이 나뭇가지 끝에 맺힌 겨울의 마무리 같다. 산수유는 겨울 동안 빨간 열매다. 열매는 유리처럼 매끈하고 작고 단단하다. 추위가 입술을 깨물듯, 열매는 가지 끝에서 겨울을 다물고 있다. 빨간 입술들의 침묵이 수다스럽다. 수다스런 침묵이 빨강으로 농익는다. 빨강은 태양의 편린이다. 해는 지구 안의 동사고, 태양은 지구 밖의 명사다. 한 알, 한 알, 응축되어 있던 우주의 일이 지구에 작동하는 과정을 지구에서는 봄이라 부른다. 아직 봄이 아닐 때, 태양은 가루처럼 뿌려져 꽃이 된다. 산수유 꽃은 빨간 입술로 그린 말이다. 크지 않지만 작은 발음들이 한꺼번에 켜진다. 노랑은 속닥속닥 봄을 부른다. 노랑은 꽃잎이 아니라 해의 산란(散亂)이자 산란(産卵)이다. 아직 바람은 차가워도, 가지 끝에 맺힌 빛가루가 기지개를 켜며 한 빛, 한 빛, 소란해진다.


노랑은 개나리로 퍼진다. 산수유가 해의 색감으로 왔다면, 개나리는 해의 질감으로 쏟아진다. 가지 끝에서 맺히던 노랑이 담장으로 내려오며, 눈높이보다 조금 아래에 봄이 군단처럼 정렬된다. 겨울을 돌파한 병사들의 휴식 중일 수도 있고, 봄으로 진군하기 위해 대기 중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던 소리 없는 함성이 하늘을 겨눔은 분명하다. 해에게 전한다. 노랑이 더 진해져 해를 초과하되 무해하다. ‘개나리’는 더 이상 파생어가 아니다. 접두사 ‘개-’를 삼키고 진짜 봄이다. 개나리의 시간, 봄을 반박할 근거가 없다. 그러나 인간에게 허락된 기능으로 전락한다. 개나리는 학교, 공원 담장으로 쓰인다. 경계는 계절이 넘어오는 증거이기도 해서 개나리의 형태론과 의미론은 타당했지만, 인간의 쓰임 밖 개나리의 화용론은 알 길이 없다. 가을, 겨울에 실수로 흘린 꽃송이도 인간 탓이다. 그럼에도 아직, 개나리는 무더기로 봄이다. 인간에게 길들여진 봄의 핵심어지만, 노랑의 뿌리로 인간을 지배한다. 봄은 명백히, 노랑이다. 본격적으로 초록을 이끈다.


유채의 노랑은 봄이 아니라 생산이다. 유채는 인간의 손에 들어온 면적이다. 들판은 꽃밭이 아니라 작물의 표면이고, 노랑은 감탄이 아니라 관리 결과다. 파종, 제초, 식재 간격과 수확의 질서가 노랑을 정렬시킨다. 노랑은 무작정 예쁘기만 한, 허리 아래 펼쳐진 봄의 포르노다. 개나리의 희뿌연 온기 대신 더 선명하게 깨끗한 색기를 풍긴다. 봄은 팔기 좋은 색, 사진으로 옮기기 좋은 풍경으로 조작되어 축제로 유통된다. 유채의 만개는 수익의 언어로 예약된다. 노랑이 끝난 유채는 종자를 얻어 수익화 되거나, 종자를 얻기까지 유지비가 더 든다 싶으면 파쇄된다. 초록을 이끌지 못하는 노랑은 봄의 존재 노동이다. 유채는 봄을 찍어 내는 감정 노동자다. 유채도 일회용 포르노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노랑은 땅으로 내려와 초록으로 번진다. 그러나 종결되지 않는다. 초록이 계절의 본문이 되는 순간에도 노란 점은 계통 없이 산개한다. 이름을 모르는 야생화들은 초록과 함께 배경으로 물러나나 민들레는 탐스러운 만큼 전경이다. 땅에서 솟아나는 노란 해다. 무려, 인간을 초과한다. 산수유와 개나리는 벨 수 있지만, 민들레는 뽑을 수 없다. 들판뿐만 아니라 인간의 화용론을 비웃듯이 도시의 보도블록 틈과 담장 아래, 아스팔트 경계선까지 침투해 문득, 문득, 끈질기게 봄을 피운다. 민들레가 핀 곳은 부동산이 아니라 땅이다. 인간의 면역력을 묵살하는 생명력은 고요하다. 봄이 숨쉰다. 민들레는 계절의 최전선에 배치된 봄의 최후다.


민들레의 노랑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노랑은 제 몸을 접고 흰색으로 바뀐다. 보드라운 해다. 보고 또 봐도 눈이 아리지 않는다. 세게 쥘 수 없어 쓰다듬을 뿐이다. 후, 불면, 예닐곱 살 아이의 손아귀에서 살던 햇빛이 날린다. 홀씨가 빛가루 속으로 사윈다. 투명해진 홀씨는 빛의 씨앗이다. 다시 후, 내년 봄의 이른 파종이다. 바람이 후, 나를 분다. 눈을 감고 내 노랑을 더듬어 본다. 눈을 뜨면,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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