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 : 몸에 피는 봄

by 하루오

산 것을 본 이는 드물 것이다. 죽은 것을 본 이도 드물 것이다. 봉지 안에서 미나리는 아직 살아 있는 것과 아직 죽지 않은 것의 경계다. 잎끝이 갈변해도 물에 심으면 다시 살 것 같지만, 뿌리가 끊긴 채 마트에 진열된 이상 착실하게 죽어갈 것이다. 봉지에 담긴 아직 죽지 않음은 신선함을 보관하는 유통 성능이다. 체념을 몰라 싱싱한 초록이다. 미나리는 풀이란 무엇인가를 작정하고 보여준다. 봉지 묶음을 풀면 생이 향긋하다. 풀의 삶이란 향을 저장하는 일이다. 미나리는 죽을 것이다. 내가 먹어 없앨 것이다. 미나리에 코를 박고 있으면, 살고 싶어진다.


미나리는 밭도, 논도 아닌 꽝에서 자란다. 논은 물이 얕고 맑게 고이나 꽝은 깊고 흐리게 고인다. 빛이 닿기 힘들 것 같은 물 밑바닥에서 미나리가 솟아 오른다. 꽝은 오직 미나리만 가진 땅이다. 꽝 없이는 미나리도 없고, 미나리 없이는 꽝도 없다. 미나리의 꽝은 제비뽑기에서의 허탕도 아니고, 물체가 강하게 부딪쳤을 때 터지는 울림도 아니다. 논으로도 쓸 수 없는 땅의 명사 ‘꽝’과 쓸모 없음에서 솟는 싱싱함 앞에 튀어나오는 부사 ‘꽝!’ 합성어다. 미나리꽝은 침묵과 폭발이 공존하는 동사다. 시린 흙탕물 속에서 초록이 자란다. 봄이 잘한다.


나는 산 미나리를 본 적 있다. 인근 대임지구가 개발되기 전, 작은 미나리꽝이 있었다. 남매지에 조깅하러 가는 길에 지나치던 곳이었다. 상업용이라기엔 좁아서 식당 몇 곳에 납품하겠거니 했다. 겨우내 빈 논이었다. 얼음이 녹으며 어느새 물이 차 있고 어영부영 미나리가 지천이었다. 수확 철이면 늙수그레한 농부 내외는 멜빵으로 된 방수복을 입고, 허벅지까지 오는 장화를 신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공터에 주차된 낡은 1톤 트럭에서는 뽕짝이 우렁찼다. 수확하고 조금만 지나면 또 푸르러졌다. 초록 향이 물비린내를 눌렀다. 독소를 제거해준다는 속설이 들러붙은 향인지도 몰랐다. 향을 들이키면 미세먼지까지 걸러줄 것 같았다. 초록은 반드시 이 냄새여야 했다. 농부가 없을 때 슬쩍 이파리 한 줌 따먹어 보고 싶은 걸 참았다. 지금 미나리꽝은 아파트 공사 중이다. 먼지만 날린다.


어쩌면 개울이나 하천에서 미나리를 본 적 있는지도 모른다. 미나리는 아무 데서나 잘 크는 풀이니 나도 분명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미나리꽝 밖 미나리를 모른다. 미나리가 다른 초록에 섞여 있을 때, 미나리는 조금 일찍 물든 잡초다. 그저 미나리꽝 안에 모여 있고, 미나리 봉지 안에 잘 포장되어 있어서 나는 미나리를 안다. 내가 아는 건 미나리의 생태가 아니라 향과 맛이다. 미-나리는 미꾸라지, 미더덕, 미역을 몰고 와 물 냄새를 풍긴다. 나리 향이 스민다. 미나리는 물가에 핀 초록 개나리다.


현실은 마트에서 피는 봄이다. 귤이나 딸기는 끝나지 않은 겨울이다. 파, 무, 배추, 양배추, 상추, 부추, 당근, 양파는 가격만 흔들릴 뿐 늘 있다. 그러나 미나리는 봄에 잠깐 매대를 점령한다. 사철 채소들의 자리를 비집고 층층이 쌓인다. 포장지 안에 습기가 반짝인다. 다듬어진 다른 채소들과 달리, 미나리는 물의 날것이다. 저온 습지의 하우스에선 타산이 안 맞았을 것이다. 희소성이 봄을 대량으로 관철한다. 저렴해서 진정한 제철 음식이다. 제철은 봄보다 먼저 끝난다. 아니, 사실은 미나리도 사철 채소에 수렴한다. 봄이 아닌 계절, 부추 옆에 초록의 덤처럼 얌전히 있을 뿐이다. 다만 봄날, 미나리는 잠깐 주연이다.


미나리는 대체로 음식의 조연이다. 대부분의 채소처럼 육류나 곡류를 보조하므로 평범한 신세지만, 죽어서도 물속을 지키므로 품위를 유지한다. 복국, 알탕, 대구탕, 추어탕, 동태탕, 매운탕에서 향으로 태어난다. 국물 위를 떠다니며 생기를 푼다. 음식의 본질을 바꾸진 못해도 얼큰함의 완성도를 결정한다. 그러나 계절성을 잃었다. 미나리가 제철이라고 국과 탕을 더 먹지는 않는다. 마트의 미나리는 가정에서 사 갈 텐데 집집마다 국과 탕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미나리와 타협하지 못했다. 재첩국에 넣어 보니 부추만 못했다. 라면엔 어울리지 않았다. 육해공 거의 모든 식재료를 품는 라면과 각을 세울 정도라니, 미나리는 사철 채소가 될 지언정 자기 색을 끝까지 지키는 봄의 마지막 고집이다. 나도 귀찮음이 고집이라, 무칠 줄 몰라 미나리무침을 안 먹었고, 탄수화물이 부담스럽고 설거지 거리도 번거로워 미나리전을 굳이 자처하지 않았다. 생으로 초장에 찍어 먹으면 배가 아렸다. 많이 먹은 탓이지만, 1인 가구가 미나리의 신선도가 남아 있을 때 먹어치우려면 별 수 없었다. 애초에 미나리는 씹어 먹는 향신료다.


포장 최소 단위를 한두 끼에 끝내는 유일한 방법은 돼지고기와 먹는 것이었다. 미나리를 먹기 위해 돼지고기를 샀으니 미나리가 주연이다. 돼지고기는 미나리의 섬유질을 채우는 부피다. 부위는 상관없다. 단, 돼지기름을 내기 위해 적당히 비계가 붙은 걸로 샀다. 돼지기름에 튀기듯 구웠다. 잘 구워진 미나리에서 돼지향이 상큼해진다. 돼지고기보다 미나리를 더 먹었다. 한 입 가득 아삭아삭하다가 고기 한 점으로 부드러움을 섞는다. 씹다 보면 섬유질의 질김과 육류의 질김이 뒤엉킨다. 질김의 질감이 달라 재밌다. 약간의 소금 간만 하면 김치도 필요없다. 프라이팬만 설거지하면 되니 뒷처리도 간단하다. 내 봄 한 끼다. 내게 봄은 돼지가 제철이다.


미나리는 봄에 더 맛있어서 먹을 때, 봄이 제철이다. 겨울에 쌓인 독소를 푼다는 속설은 심리적 사실이다. 입맛을 깨운다. 깔끔한 뒷맛 속에서 이미 살아낸 몸의 군더더기가 청산된다. 다음 봄들이 미리 와 있다. 어쩌면 나도 맛있음을 유통하는 어떤 성능이다. 봄 미나리는 내 몸 한 끼다. 나는 오늘이 제철이다. 시간은 꽝이 아니라 향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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