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개막 : 봄의 권리

by 하루오


음력설은 내 생활리듬을 강제로 멈춘다. 내가 동의한 적 없는 기념일을 챙겨야 하는 일은 퍽 귀찮고 한 해가 시작된 지 언젠데 또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는 면구스럽다. 정월대보름은 있었나 싶다. 부럼 깨기, 달집 태우기, 쥐불놀이는 내 향수에 없는 풍습이다. 농사의 달력을 따르던 시절이 현대의 시간 감각을 훼손한다. 인구 비중 4%도 안 될 농가의 일을 전체가 기념해야 하는 시대착오를 전통문화라서 견딘다. 전통문화는 경칩이나 춘분처럼 달력 안에 얌전했으면 좋겠다. 기념할 일은 많고, 충분히 바쁘다.


쌀을 버는 일과 돈을 버는 일은 다르다. 현대의 노동에 계절이 없어서 의례도 없다. 춥든 덥든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시간은 일주일 단위로 매끈하게 반복된다. 세배 해야 할 대상도, 물리쳐야 할 부스럼도 몰라서 그저 야구를 본다. 프로야구가 개막하면 진짜 한 해가 시작된다. 내 월급에 의례를 치르기는커녕 자신을 응원하지도 않으면서, 야구에는 진심이 폭발한다. 나는 롯데 팬이다, 씨발.


프로야구 개막은 한 해의 마지막이자 진정한 시작이다. 생활이 리듬을 탄다. 물론, 부산에서 태어나면 단조에 가까울 확률이 높다. 서럽진 않다. 롯데의 승패는 날씨고, 날씨에 따라 기분이 좌우될 만큼 한가하지도 않다. 다만 이제는 대구에 산 시간이 더 오래 되었음에도 삼성으로 갈아타지지 않는 것이 답답할 따름이다. 염종석, 윤학길, 박정태는 마음의 강력한 중력이다. 손민한, 이대호가 아니었더라면 삼성으로 갈아탈 수 있었을 텐데, 92년 이후 우승 한번 없는 팀, 가을 야구 진출 확률 95%를 뒤집은 기적의 DTD팀이 내 마음의 고향이다.


처음 대구에 왔을 때, 일상에 야구가 없어 당황했다. 하루라도 에이스와 4번 타자 얘기를 하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물론, 야구를 보면 더 가시가 돋았고 그 가시를 야구에 박아 넣었지만)가 돋던 인간에게 대구는 밋밋한 도시였다. 왕조시절, 대구는 뒤집어지지 않았다. 이승엽, 오승환을 가질 자격이 없었다. 라팍이 생기면서 접근성이 좋아졌기 때문일까, 관람이 놀이 문화로 자리잡기 시작하더니 2025년 관객 동원 1위를 기록했다. 여자 중학생도 야구 얘기를 했다. 대구의 봄은 부산의 봄을 넘어섰다. 그러나 봄은 롯데다. 오죽하면 봄데다.


시범경기의 롯데는 DTD만큼 과학이다. 봄에 가을을 그린다. 프로야구 시범경기는 현대의 정월대보름이다. 작년의 실패를 깨고, 불온한 예상을 태우고, 흥분을 불태우는 놀이다. 팀들은 겨우내 정리한 것을 꺼내 새해를 준비한다. 롯데는 정월대보름 전문가다. 역대 최소 1위, 최다 꼴찌 팀이 시범경기는 최다 1위다. 희망, 이걸 보면, 누구나 알면서도 속는 수밖에 없다. 봄에 그리는 롯데의 가을은 늘 우람하다. 아마 다른 팀들도 각자의 높은 가을을 꿈꿀 것이다. 봄이다.


개막은 경칩이다. 본격적으로 보편 일상이 시작된다. 평일 6시 30분이면 전국에 고향이 켜진다. 퇴근 후 야구 중계 시청은 가장 흔한 생활 양식이다. 국기는 태권도가 아니라 야구다. 감 놔라 배 놔라, 야구 감독만 1,000만 명쯤 된다. 경기 내 희로애락이 급변한다. 확실히 다른 인격이다. 기존 자아에서 풀려난 해방감, 휴식이다. 도파민 시대, 느린 시간이 충전되는 필수 영양제다. 생중계를 놓치면 11시 전후로 하이라이트라도 본다. 경기 결과를 모른 채 보려고 한다. 진 경기는 안 본다. 이 일을 반복하게 될 것임을 안다.


선발과 마무리의 두 전설, 괴물 류현진과 끝판왕 오승환도 봄데 앞 소인이었다. 류현진은 08년 개막전 5이닝 5실점, 11년 개막전 4와 1/3이닝 5실점으로 강판됐다. 오승환은 12년 4월 24일에 2/3이닝 6실점으로 무너졌다. 오승환은 11년 전체 실점이 8실점(평자책 0.63)이었으므로 시범경기가 끝난 후에도 봄의 롯데는 속을 만했다. 롯데는 전설을 잡아먹고 기적을 쓴다. 기적의 이름은 꼴데다. 봄에는 말하고 싶지 않은 전설이 있다.


나는 야구 중계를 보지 않는다. 파탄나는 인격이 감당되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매달리지 않기에, 하나에 집착하니 광기가 되었다. 사람에게 쓰지 않는 육두문자가 거침 없이 나왔다. 욕을 안 하려고 각오를 다져도, 결정적 순간의 병살, 어이없는 실책에서는 날숨처럼 나왔다. 영혼이 지저분해졌다. 그러나 안 보면 영혼이 가난해졌다. 가난을 택했다. 대구에 처음 왔을 때, 야구 없이도 그럭저럭 살았다. 퇴근길, 라팍에 푸른 것들이 우글거릴 때 주황색을 떠올렸다. 부산 갈매기를 부를 때, 부산은 주황 봉지를 머리에 뒤집어 썼다. 다시 야구다.


최. 강. 롯. 데. 참 민망한 말이다. 롯데는 최강인 적 없었다. 84년은 최동원이 최강이었고, 92년은 패넌트레이스에 3위를 했다가 가을에 꾸역꾸역 1위가 되었다. 그럼에도 최강이고, 무적이라고 외친다. 10개 팀 모두가 최강이고, 무적인 리그의 대표는 WBC 8강 10:0으로 콜드 패 당했다. 베이징 올림픽, WBC 우승의 기억을 간직한 ‘대한민국’은 롯데를 닮았다. 과거를 추억할 만한 영광이 있고, 실력에 비해 인기가 과하다. 국제무대에서 최강과 무적을 외치지 않는 대한민국보다 롯데는 더 시시한 기록으로 늘 최강과 무적을 부른다. 봄에는 허풍도 거짓말이 아니다. 희망은 봄의 권리다.


봄에는 나도 올해만큼은 잘 될 것 같다. 롯데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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