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 : 겨울의 장례

by 하루오

봄과 겨울은 중첩되어 있다. 낮에 관측하면 봄이지만 밤에 관측하면 겨울이다. 그러나 계절은 낮으로만 명명되므로 3월은 일방적으로 봄이다. 하필 3월에 피는 개나리는 밤마다 겨울을 견딘다. 개나리는 겨울이 봄에게 남기는 조화(造花)와 봄이 겨울에 보내는 조화(弔花)가 조화(調和)되는 생화다. 밤마다 겨울은 맡아지지 않는 개나리 향으로 체념을 배운다. 매일 아침으로 생환하며 봄을 당긴다.


개나리는 빛을 품은 수분의 색이다. 땅에서 들인 수분만큼 봄이다. 땀이 흐르는 만큼 겨울도 멀어진다. 겨울의 체온은 조금씩 떨어진다. 히터, 전기장판, 보일러는 낮에 덜 켜지고 밤에 낮게 맞춰진다. 늘 틀던 시간에 틀다가 멈짓하는 순간마다 겨울이 죽어 나간다. 겨울의 생기는 전기 요금과 가스 요금으로 사후적으로 명시된다. 봄은 비용이 덜 드는 계절이다. 밤에 보일러 틀기를 깜빡한 걸 다음날 아침에 조금 으슬하지만 괜찮은 몸으로 알았을 때, 봄이다. 양팔을 위로 들어 올려 기지개를 켠다. 신음소리가 꽃처럼 튄다. 뻑적지근한 근육이 펴지며 기운이 돈다. 체온이 오른다.


봄은 열을 한 겹씩 벗겨낸다. 세탁기는 겨울의 출구다. 겨울옷은 전면 이탈하지 않는다. 세탁은 순차적이다. 빨래가 잦아진다. 세탁 일정에 맞춰 겨울옷 한두 벌씩 추가된다. 지난주에는 까만 목티, 이번 주에는 회색 기모 후드티, 다음 주에는 하얀 니트가 마지막일 계획이다. 나머지는 어느날 한꺼번에 세탁될 것이다. 한두 번밖에 입지 않은 또 다른 니트나 가디건은 애매해도 별 수 없다. 의례는 형식 자체가 의미다. 작년이 세탁되어야 올해다. 언제까지 중첩 상태에 머물 수는 없다.


개나리가 잎을 내는 날이 관측된 이상, 겨울은 붕괴되는 수밖에 없다. 세탁된 옷들은 옷장에서 동면에 들어간다. 고마웠던 두꺼움이 성가셔진다. 옷의 동굴이 비좁다. 욱여넣어져 납작해진 시간은 세 계절 동안 정지한다. 기모 안감과 니트의 보들보들한 온기는 묵음이 된다. 묵음은 기억을 지우며 무음에 머문다. 개나리가 잎을 잃을 때 환생할 것이다. 얌전히 기다린다.


무음 안쪽에 변명이 지저분하다. 겨우내, 필요한 두께는 옷을 구매하기 위한 명분이었다. 새것에 밀려 입지 않은 옷이 생겼다. 내년엔 입을 거라며 버리기를 유예한다. 이미 유예를 거듭한 옷도 있다. 겨울이 몇 번 생략된 시간은 유품을 닮았다. 한때 옷이었지만 이제 보관된 미련에 지나지 않음을 안다. 그 옷은 사진 속 어딘가 있을 수도 있다. 없어도 별 수 없다. 낡지 않아도 버리게 될 것이다. 버리는 것에 매달린 죄책감은 봄으로 무마한다. 봄은 본래 새것의 시간이다. 버리는 것과 새것은 시간차를 둔 제법 동의어다. 묵음과 무음 사이, 기억은 묵념으로 채워진다. 무덤을 닫는다.


패딩 세탁은 최후까지 미룬다. 밤 늦게 패딩 하나만 걸치고 편의점에 다녀 오기도 하지만 사소한 효용과 무관하다. 패딩은 옷걸이에 걸린 겨울 영정이다. 일주일째, 이주일째, 입지 않아도 무작정 기다린다. 꽃샘추위가 남았다. 봄의 중심에서 기습해 들어오는 겨울의 최후 발악은 매섭다. 약할 때도 있으나 객관적 기온은 무력하다. 포근함이 전복된 상대 온도가 체감 추위를 벼린다. 영정이 살아나 봄을 깁는다. 나는 대구에 내린 2010년 4월의 눈을 기억한다. 패딩은 겨울의 새까만 회광반조다.


패딩은 집에서 세탁할 수 없다. 세탁소는 겨울의 장례식장이다. 패딩 때문에 캐시미어나 울 코트, 니트도 세탁을 미뤘다. 겨울 한 무더기를 들고 세탁소로 간다. 드라이 비용은 늘 생각보다 비싸다. 내 옷은 비싸지 않아 누적 세탁비가 패딩값을 넘어선다. 줄어든 전기 요금과 가스 요금으로 상쇄되지만, 세탁소의 사정도 있겠지만, 산 나는 죽을 것에 쓰는 비용이 아깝다. 겨울의 장례는 봄의 목욕재계다. 하루이틀 후 찾아오는 패딩의 드라이 냄새에서 계절은 미련없이 봄이다. 새 패딩 사려던 마음이 접힌다.


이불은 아직 바꾸지 않는다. 보일러가 빠진 자리를 버틴다. 겨울 이불 덕분에 봄밤에도 체온으로 체온을 지탱한다. 사십구재를 닮았다. 사십구재는 삶과 죽음, 사이의 시간이다. 겨울은 밤마다 조금씩 물러난다. 패딩을 옷장에 넣은 지 49일 후면, 얇은 이불로도 계절을 맞설 만해진다. 겨울 이불은 집에서 정산한다. 그땐 볕이 좋아 베란다에서도 잘 마른다. 완연한 봄밤, 얇은 가디건조차 필요 없이 산책할 수 있을 때, 여름 낮이 성큼 다가와 있을 것이다.


봄은 겨울을 보내는 번거로운 숙명이다. 털 없는 항온동물은 체온을 고정하기 위해 세탁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털갈이다. 겨울을 향한 묵념으로 봄을 맞는다. 마른 빨래 냄새가 바삭하다. 뒤늦게 피어오르는 개나리 향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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