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 봄의 포르노, 그 후

by 하루오

첫눈만큼 벚꽃이 번거롭다. 감탄이 강제된다. 벚꽃은 SNS와 같은 속도로 핀다. 엇비슷한 풍경들이 스마트폰 안팎에서 범람한다. 우르르 폈다가 우르르 잊힐 계절의 밈이다.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증식되는 익명들이 벚꽃의 탈을 써서 간사하다. 우글대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꽃 같다. 지기를 바란다. 아름다운 건 그대이지 사람이 아니다.


벚꽃은 군중을 닮았다. 떼거리만 유효하다. 연분홍빛 살짝 감도는 흰색 꽃잎은 하트 모양이다. 여섯 장인지 일곱 장인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꽃가지가 무리 지어 있어 대여섯 송이가 한 곳에 모여 핀다. 여백은 벚꽃의 허술함이다. 밀도로 압도한다. 벚꽃이 필 때, 모든 꽃은 조연으로 전락한다. 벚꽃은 주목 경제의 승자다. 자기동일성의 알고리즘만이 정답이다. 꽃잎은 다섯 장이 정답이다.


봄이 택배처럼 개봉된다. 와! 벚꽃이 만드는 보편 반응이다. 빅데이터처럼 양이 곧 질이다. 규모와 감탄의 강도는 속도와 비례한다. 바다나 산맥 수준의 계절을 뚫고 나온 실재다. 육중한 충동이 매끄럽게 나를 투과한다. 그러나 꽃잎은 아무리 많아도 위험하지 않다. 거대한 시각은 향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벚꽃은 향기 없이 적나라하게 아름답다. 시각이 전부다. 예쁘다. 흥분은 지연 없이 즉각적이다. 봄의 포르노다. 벚꽃의 절정에 사람도 절정이다.


축제는 군중 현상이다. 자의식 과잉 시대, 군중은 필연이다. SNS 속에서 자신을 최대전시하지만, 최소관람되므로 미천하다. 자기 과시의 근육이 과잉 자아를 키울수록 개인은 자신을 감당하지 못한다. 군중의 외피가 필요해진다. 벚꽃은 예쁘다. 많으면 더 예쁘다. 남부지방은 3월 말, 중부지방은 4월 초, 벚꽃은 예쁨의 최대값을 달성한다. 외모지상주의와 시장주의의 정언명령들이 협잡한다. ‘나’가 벚꽃의 소비재다. 축제 일정은 벚꽃이 결정한다. 자연이 사람에게 행사하는 몇 안 되는 권력이다.


벚꽃은 찰나가 아니다. 찰나로 사용될 뿐이다.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의례는 머무를 줄 모르는 포르노적 시선의 증상이다. 벚꽃은 사진으로 포착된다. 그러나 박제되는 것은 사진 속 개인이다. 개인은 벚꽃의 예쁨을 이기지 못한다. 둘이 찍히든 셋이 찍히든 사람은 벚꽃의 이물이다. 벚꽃은 사람을 견딤으로써 연분홍 빛 감도는 흰빛에 잔향을 맺는다. 완벽히 투명해질 수 없는 감질감이 잔향의 윤곽을 끈적하게 두른다. 사람은 사진 속에서 벚꽃의 잔향을 걸친다.


거짓말이다. 내겐 ‘그대’가 없다. 나도 누군가의 사진을 찍고 싶고, 나도 찍히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셀피뿐이다. 셀피를 찍어도 못생김만 돌출된다. 셀피조차 찍지 않아 마음은 더 흉해진다. 이 글은 자의식 과잉의 흉기다. 안다. 사람들은 벚꽃 구경가는 것이 아니다. 벚꽃 아래 머물러 가는 것이다. 벚꽃을 배경으로 읽은 것은 나다.


벚꽃 아래, 와글대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꽃 같다. 에로스가 한창이다. 가벼워진 외투만큼 마음도 가벼워졌다. 벚꽃의 시간은 보통, 얇은 카디건이나 자켓을 걸치고 있기 적당한 따스함, 겨울과 여름 사이에서 어느 쪽 편도 들지 못해서 적당한 바람으로 버무려진, 적당함의 절정이다. 벚꽃은 봄을 거든다. 오히려 많아서 자기 주장 같지 않다. 온전한 배경이다. 사진 속에서 사람과 다투지 않는다.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일은 꽃에 꽃을 더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벚꽃에 머물기 위해서 아래를 걷는다. 걷다 보면 또 안다. 벚꽃은 소리를 낸다. 웅웅, 벌 소리가 제법 수다스럽다. 양이 곧 꿀이다. 귓가에 달달함이 고인다. 소음이 아니라 고요다. 몸으로만 온전히 향유되는 꽃, 그러나 접촉 없이 풍경으로서 선을 지키는 꽃, 시각으로 향기를 구축하는 꽃, 벚이다. 모여야 좋은 벗이다.


학생들에게 벚꽃의 꽃말은 시험 기간이다. 안심하고 머물기 힘들다. 학생이 아니더라도 벚꽃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벚꽃은 어쩌면 독립된 계절이다. 벚꽃 필 무렵, 모든 계절의 맥락은 벚꽃으로 접힌다. 그래서 찰나는 타당하다. 일주일은 짧은 계절이다. 그러나 빽빽한 꽃잎만큼 두꺼운 계절이다. 다정하게도, 다시 봄을 돌려준다.


벚꽃의 절정은 만개가 아니다. 질 때다. 그야말로 꽃비가 내린다. 꽃잎이 시야를 살랑대다 우연히 살결을 스칠 때, 에로스는 절정이다. 맞잡은 남녀의 손이 가장 아름다울 때다. 아주 오래된 그대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꽃비 속에서 환했던 웃음은 봄으로 기억한다. 벚꽃의 내 꽃말은 미안함이다. 그래서 벚꽃의 시간, 나는 함부로 웃지 않는다. 사람은 조금 아름답다.


벚꽃은 쌓여도 눈처럼 질척되지 않는다. 바닥에 다시 꽃을 쌓는다. 초록이 꽃바닥을 뚫고 올라온다. 민들레, 냉이꽃, 제비꽃이 핀다. 봄은 잠시 겨울 풍경을 데려와 기억을 데운다. 그대와 그대와 그대가 익는다. 버찌가 봄의 마침표처럼 익는다. 마지막 꽃비가 떨어질 때 몰래 손을 내밀어 본다. 만져지지 않는 것을 만진다. 맞은 적 없는 봄은 매년 그렇게 끝난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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