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윤동주, 이육사, 김수희, GD, 칸트, 매킨타이어
무한도전의 두뇌가 유재석이라면 심장은 노홍철이다. 웃음 사냥꾼 박명수는 아쉬운 대로 대체 가능하지만, 노홍철은 대체 불가의 ‘돌+아이’였다. 무모한 일들을 일단 지르고 보는 무한도전과 상식을 벗어나는 노홍철은 유전자가 같았다. 노홍철은 알몸으로 촬영하거나 자신의 연애와 결혼을 실시간으로 공개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노홍철이 빠진 후 무한도전은 심심해졌다. 얼마 후 정형돈까지 빠지자 무한도전은 더 이상 무한도전이 아니었다. 당사자들에게 미안하지만, 황광희, 양세형, 조세호는 우리가 바라는 무한도전 시즌2 멤버가 아니다. 순차적으로 멤버를 구성한다면, 유재석 1픽에 기호에 따라 박명수나 노홍철이 2픽을 다툴 것이었다. 물론 나는 노홍철이다. 노홍철의 정신 사나운 지껄임과 광기야말로 무한도전을 추동하는 힘이다. 그러나 노홍철은 무한도전 시즌2 합류를 원치 않는 멤버 중 하나일 것이다. 노홍철은 더 이상 무한도전이라는 네버랜드가 필요하지 않았다.
노홍철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의 글은 2013년 [무한도전] 301회 <쉼표> 특집2 직후에 썼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러했다.
<To. 노홍철>
당신은 ‘내가 내가 아니게 된 것 같다.’라고 말하며 울었습니다. 아닙니다. 당신은 더 큰 노홍철이 되었습니다. 예전에 당신이 말한 ‘지금을 즐기는 마음으로 일하는 자’로서의 자유로운 영혼은 칸트의 관점에서 인간이라기보다는 짐승에 가깝습니다. 당신은 즐거운 것을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즐겁고 싶다는 욕구에 복종했기 때문입니다. 당신 집에는 아동들의 원초적 욕구 수준의 자기애가 적나라하게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자유란 욕구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성적 사유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느 순간부터 즐기고 싶은 마음만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한도전을 선택 중입니다. 돈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무한도전이 아니더라도 불러주는 데가 많습니다. 동료들과 형성된 유대감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애초에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지, 관계의 사슬에 얽매인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의 눈물을 책임감으로 이해했습니다. 앞서 말한 것도 이유의 작은 지분을 차지하겠지만, 무엇보다도 무한도전 출연자로서 책임감 때문에 ‘돌+아이’를 연기하는 것입니다.
캐릭터로의 몰입은 예능인으로서 프로그램 공동체에게 지는 연대 의무입니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제외한 채 자신이 설명되지 않는다면, 공동체는 그 개인의 정체성이며, 이 정체성 유지를 위해 공동체 구성원은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져야 합니다. 요즘 당신은 그 의무를 ‘스스로 선택해서’ 받아들였습니다. 독립적 자아의 한 귀퉁이를 허물어 공동체를 받아들여 관계적 자아로 나아간 것입니다. 이를 사회화라 부릅니다. 흐트러짐을 허용하지 않는 당신의 냉장고처럼 질서 정연한 당신의 네버랜드에 타자라는 무질서를 들인 것은 놀라웠습니다.
그 정도 책임은 누구나 지며 살아갑니다. 현대 사회는 얇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 공적 관계가 일반화됨에 따라 다들 과장님, 선생님, 사장님 등의 역할극에 충실합니다. 대체로 조커 같은 가면을 쓰고 천편일률적인 연기를 보이는 것을 미덕으로 삼습니다. 그 가면은 사실상 강제됩니다. 가면을 벗을 때 밥벌이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무한도전을 탈퇴한다고 한들 먹고 사는 일이 막막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한도전을 선택하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기 때문에 당신의 자율성은 더 반짝입니다.
사실 제가 뭔데 ‘당신이 이렇다.’라고 단정하겠습니까. 노홍철을 연기하는 노홍철의 공허함은 당신만의 몫인데 말입니다. 이렇게 억지를 부려본 것은 당신이 무한도전에 건강하게 남았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당신만큼 팬들도 나이를 먹어갑니다. 20대 때는 막무가내인 당신이 좋았고, 30대가 되고 보니 산만함이 다소 정돈된 성인을 수행하는 당신이 좋습니다. 당신이 품은 공허함을 작은 응원들로나마 채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쓰고 1년 후, 노홍철은 음주운전으로 무한도전을 탈퇴했다. 방송 복귀 후 맡았던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망해갈 때 방송인이라면 무한도전 생각이 간절할 법도 한데, 무한도전 복귀 여론이 형성되었을 때도 사양했다. 당시에는 자신을 자책하기 때문인지, 무한도전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두 이유가 적절히 복합되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복귀한 방송에서 보는 노홍철은 무한도전의 ‘돌+아이’가 아니었다. 활기찬 것과 차분한 것이 불균형하게 공존하는 털보 아저씨였다. 그러나 훨씬 자유롭게 살았다. 무한도전에서 외친 ‘하고 thㅣㅍ은 거 하면thㅓ thㅏthㅔ요.’를 실천했다. 여행을 다녔고, 서점을 열었고, 빵집을 차렸고, 당나귀도 키웠다. 무한도전의 노홍철은 없지만 노홍철의 무한도전은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훨씬 성숙한 모습으로.
부럽다.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 우리의 간극은 워낙 커서 질투조차 나지 않았다. 나는 ‘나는 무엇’인가에 익숙해지다 보니 ‘나는 누구’인지를 잊고 살았다. 내가 ‘누구’라면 꿈이든, 신념이든, 취향이든 주관적인 요인이 있어야 할 텐데, 꿈은 목적으로, 신념은 계산으로, 취향은 가성비로 대체되었다. 객관적으로 서술될 수 있는 내게 자유란 쿠폰으로 치킨을 주문하는 정도로 저렴해진다. 고작 이런 게 어른은 아니었을 것이다. 제자리에서 숫자만 갉아먹고 있다.
<20XX년의 어느 날의 일기>
늦은 아침으로는 김, 김치, 진미, 깻잎무침, 콩자반, 계란프라이의 육첩반상을 차려 먹었고, 늦은 점심은 늦게 군대 간 GD처럼 에라 모르겠다. 말끔하게 남겨진 내 방은 육첩방 같았다. GDP는 민첩하게 올라가지만 ‘을’의 슬픈 천명은 제자리인 것처럼, 내 방은 내가 되고자 했던 내가 없는 남의 나라다. 나는 이 나라의 국민이 아니어서 첩첩이 포개진 내 수첩에는 간첩이라고 적혀 있을까. 내가 되고자 했던 나와 지금이 되어버린 나의 오월동주는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내가 없는 방 안에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내 눈물도 흐르고, 잃어버린 첫사랑도 흐를 것이다. 깜빡 깜빡이는 희미한 기억 속에 하늘이 펼쳐지고 파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왜 원장으로 툭 튀어나오는데. 나는 나와 원장의 오월동주를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원장은 ‘2x6=4’를 강제하며 내 인생을 청포도알처럼 따 먹고, 나는 고달픈 몸으로 ‘2x6=12’의 나를 만날 수 없어도, 잊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