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

(꼰대와 꼰대유망주들)

by 하루오

1. Yes : 꼰대의 기억력


꼰대의 논리는 단순하다. - 내가 옳다. 왜냐면 내가 해봤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주장이자 근거다. 무소불위의 논리는 파훼할 틈이 없다. 틀려본 적 없는 경험이 주장을 사실로 승격시킨다. 이들은 반박을 자기 삶을 향한 공격으로 받아들여 대응이 난폭하다. 다른 사실을 살아온 사람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나는 내가 꼰대 유망주임을 안다. 내 수준의 사람과의 교류가 제한된 채 학생들만 상대하다 보니, 내가 틀리는 경험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 학생들은 똥으로 된장을 만든다고 해도 믿었다. 나는 토론을 싫어할 정도로 오만해졌다. 내가 맞는데 굳이 틀린 이야기를 듣고 있을 필요 없었다.


식후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돈 없다고 징징거리는 취준생을 보면 눈꼴사납다. 스타벅스가 아닌 1,500원짜리 ‘저렴이’를 마신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커피는 필수품이 아닌 이상 안 마셔도 괜찮았다. 그 나이 때 나는 15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마셨었다. 1,500원짜리 사치를 부리면서 늘어놓는 우는 소리는 도련님들의 투정이다. 단, 이 생각을 바탕으로 누군가를 비판하지는 않았다. 내 취향이 시대를 따라오지 못하는 정도는 객관화 했다.


꼰대 기질과 꼰대질은 다르다. 내 기질을 알기에 가능한 한 주관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주관이 없는 한, 모든 사태는 ‘그럴 수도’ 있었다. 주관이 생겨버리면 입을 닫았다. 내 절대 고집 영역으로 학생들과 말 섞을 일은 없었다. 일탈이 아닌 한 학생들의 사정은 이런들 어떠하지도 저런들 어떠하지도 않았다. 내 생각을 이야기할 때는 어른 중 한 명의 생각일 뿐 절대화 하지 말라고 단서를 달았다. 나 때와 지금은 다르다는 것도 덧붙였다.


똑같은 개념도 맥락이 달라지면 의미가 달라진다. 나의 10대가 지금을 살아간다면, 나는 내가 하는 말대로 살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내가 옹호하는 과거의 나도 지금에 소환해 놓으면 내가 비판하는 대상에 준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꼰대들은 변화된 맥락을 살펴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자신도 어렸을 때 꼰대를 싫어했던 기억도 잊었다.


꼰대들을 보면, 저 정도로 자기주장을 표출할 자신감이 있어야 이 세상을 돌파해갈 수 있는가 싶기도 하다. 젊었을 때야 그것이 열정의 원동력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꼰대는 자기경험으로 구축된 섬에 고립된다. 대륙 크기의 섬을 가진 사람이라면 꼰대를 넘어선 무언가이겠지만, 꼰대의 섬은 대부분 1인용이다. 21세기에 사는 20세기 소년, 소녀들은 짖어대는 치와와처럼 가련하다.



2. No : 올챙이 개구리 될 생각 못 한다


꼰대의 사전적 의미는 ‘늙은이’다. 꼰대의 통용되는 의미는 ‘자기 말만 맞다고 주장하는 꽉 막히고 나이 든 사람’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어린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의 말이 자신에게 거슬린다 싶으면 꼰대를 부적처럼 붙여댔다. 그들이야말로 꼰대였다. 그들의 논리, 아니 생각은 ‘나는 옳다. 왜냐면 다양성은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를 벗어나지 못한다.


조언과 잔소리의 구분은 어렵다. 보통은 청자의 관점에서 분류된다. 듣고 싶으면 조언이고 듣기 싫으면 잔소리란다. 나이 든 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의미는 어린 사람에 의해 일방적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꼰대에 저항하는 모습이 처음에는 통쾌했다. 1+1이 3, 4이어야만 하던 세계에서 2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았다. 권력을 쥐었다고 왜 감나라, 배나라, 일해라, 절해라 틀린 지적을 해대는 것인지 이해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인간사에서 발생하는 경계는 직선이 아니라 정규분포 곡선을 따르는 경우가 많아서 선을 넘는 사람들이 반드시 등장했다.


“네가 뭔데 날 판단해?”

한 때는 당당한 말이었을지 모르나 지금은 오만하게 들린다. 인간은 누구나 주관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판단은 필수불가결하다. 오직 나로서만 나를 규정하겠다는 것은 사회성 부족을 의미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타인을 배제하는 선언은 꼰대의 방어기제에서 꼰대 선언으로 변질되었다. - 나는 절대다.


이들은 사춘기 중학생과 엇비슷한 감성을 공유한다. 중학생들이 부모님 말에 짜증부터 내는 것처럼 타인을 참지 못한다.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으니 제발 닥쳐 달라는 어리광이 SNS나 서점가에서 지나치게 당당하다.


올챙이는 언젠가 개구리가 될 것이다. 이미 인간관계 속에서 닳아가는 ‘나’를 아까워하며 타인이 묻지 않은 순수 ‘나’를 지향하는 인간이라면 훌륭한 꼰대 자질을 갖췄다. 나이가 주는 소소한 권력이라도 가지게 될 때 이들이 보여줄 슈퍼꼰대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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