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다시 인샬라

인샬라 마샬라2

by 바로 오늘

전화 한 통으로 열린 쿠웨이트 생활

쿠웨이트다.

중동에서 요즘 플랜트 건설 공사가 한창이고 앞으로도 계속 플랜트 공사가 한창일 것이라는 바로 그 쿠웨이트.

건축학을 전공하고 국내 아파트 현장의 기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영어를 좀 한다는 것이 곧 스펙이 되던 때였다. 주한 미군부대공사를 하는 FED팀과 해외 공사팀을 거쳤다. 젊은 혈기만을 믿고 뉴질랜드에 이민에 도전했지만 수업료만 엄청 지불했다.

그렇게 한국으로 온 뒤 산전수전 그리고 공중전까지 겪으며 길고 긴 불면의 밤을 보냈다. 엔지니어 선배의 전화 한 통이 날 살렸다.

“이제 그만해라. 네가 갈 곳이 있다.”

운이 좋았다. 그렇게 쿠웨이트 현지의 건설 관련 회사에 중간관리자로 다시 건설업으로 컴백한 것이다. 엔지니어로 내가 아직 이렇게 쓰임새가 있어 나의 가족에게 일용할 양식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 큰 행운이다. 신산(辛酸)스럽기만 했던 사업보다 훨씬 안정적인 엔지니어의 길이 나에게 다시 열린 것이다.

‘건설의 모든 것’…다국적 근로자와 함께

이 회사를 건설 관련이라고 한 이유는 제네럴 트레이딩(General Trading)이라는 쿠웨이트 업종으로 원청부터 4차 하도급까지 , 공사부터 자재, 장비, 가설공사, 현장 숙소, 맨 파워 등 건설에 관련된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하기 때문이다.

한국 건설사가 쿠웨이트에서 공사를 계약하면 첫 입국 엔지니어들의 공항 마중부터 공사를 마치고 현장사무실 철거 후 해당 부지의 원상복구까지 그 모든 과정을 다 한다. 건설하도급 구조의 ‘을-병-정’ 역할을 모두 수행하는 회사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겠다.

그러다 보니 이 회사의 60여명 직원 중 한국인은 3명에 불과하고 회계·자재·공사·장비·캠프 등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다수의 경험 많은 인도인과 필리핀인, 스리랑카인, 네팔인, 방글라데시인 등으로 구성된다. 진정한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완성이다.

회사 내외부의 커뮤니케이션은 영어를 사용한다. 그렇게 나의 서바이벌 콩글리시는 다시 시작됐다.

서바이벌 콩글리시, 결론은 ‘용건만 간단히’

입국 후 바로 근무 시작이다. 한국인 신임 매니저로서 소개를 받고 머릿속에 짧게 외워둔 내 소개를 한다. 역시 연습은 결함을 커버한다. “You and I are not same, but You and I are not different.”라고 대미를 장식했다. 내 마음이 전해졌음 인지 고개를 끄덕인다.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당신들이나 나나 이곳 쿠웨이트에서 가족을 위해, 나라를 위해 돈 벌기 위해 온 이방인들이니 서로서로 마음 모아서 협력하고 다치지 말고 잘 하자, 그래서 회사가 잘돼야 월급도 오르고 휴가도 더 받을 수 있고 그것이 각자가 할 수 있는 애국의 한 방법이다.”

해외 나오면 애국자가 된다더니, 다시 애국자가 된 듯하다. 시간이 갈수록 그 마음은 더욱 선명하고 또렷해진다.

시작은 짠하게, 나름 멋지게 시작했다. 실제 업무에서는 서바이벌 콩글리시를 중동 잉글리시로 전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서로 영어로 한참 이야기는 했는데, 내 의도가 제대로 전달된 것인지 찜찜함이 남는다.

그렇게 찜찜함이 남으면 반드시 에러가 생기고, 그 에러가 업무상의 실책으로 나오고, 실책이 나오면 인과관계를 살펴서 진행과정의 업무를 수행했던 스탭에게 책임을 묻든 또는 내가 책임을 지고 반성을 한 후 방지책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조직에서 중간 관리자의 책무다. 그 책무가 나의 밥벌이자 내가 쿠웨이트에 온 이유다.

몇 번의 푸닥거리 후에 이제 이메일과 더불어 메신저 프로그램-왓츠앱, 바이버, 스카이프 등을 통해서 대화와 지시를 증거로 남겨둔다. 그 증거만이 유일한 중재자일 경우가 생긴다.

스탭들의 국적별로 다양한 메신저 앱을 다 설치해야 한다. 콩글리시 텍스트는 시간이 갈수록 더 빨라지고 더 간결해진다. 결국 용건만 간단히.

도전하는 하루하루, 새벽 6시에 열다

이 회사 고객사의 대부분은 한국 EPC업체이다. 그들의 1차 하도급업체는 한국 전문건설업체가 많다.

한국 원청 사이든 1차 하도급업체든 전체 근무 인원 중 현장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엔지니어-발주처와 의사소통을 하고, 공기·공사에 관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를 제외하면 거의 인도인·필리핀인·네팔인·태국인·이집트인 등 영어 소통이 가능한 다국적 스탭들로 구성된다.

공사 발주처도 마찬가지다. 영어와 기술로써 먹고사는 사람들은 전 세계 어디든 이렇게 많다. 한때 “젊은이들이여, 중동으로 가라”고 한 중동이 경기도 부천시의 중동이 아니고 바로 이 중동임을 매일매일 느낀다.

겪어 보지 않고 중동에 오겠다는 결심을 하기는 쉽지 않다. 조금 겪어 보고 돌아가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준비하고 마음먹기에 따라 충분히 도전할 만하고 그 열매는 흘린 땀만큼 돌아온다.

매일 새벽 6시 전에 늘 현장에 출근해서 근로자들의 타임카드를 체크하고 안전체조와 간단한 전달사항 등 공정별 TBM을 마치면, 하루는 시작된다.

오늘은 어떤 일이 생길까.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쿠웨이트에서 매일 매일은 도전의 나날이다. 현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국내나 해외나 비슷하다. 지지고 볶고, 된다 안 된다, 한다 안 한다를 반복하며 서로서로 살아간다.

나에게는 직접 관리해야 할 현장과 더불어 수시로 체크해야 하는 자재납품, 장비납품과 유지보수, 그리고 가장 중요한 근로자 캠프(숙소) 관리가 임무로 놓여있다.

다양한 인종·국적·문화…먹이고, 재우고, 달래고

근로자 캠프는 보통 TCN(Third Country Nationality)이라 통칭하는 외국인 근로자-인도·네팔·필리핀·이집트-의 삼시 세끼 식사와 현장출퇴근 버스 그리고 숙박을 제공한다.

같은 인도인이라 하더라도 남부와 북부가 음식문화와 언어가 다르고, 같은 동네라 하더라도 채식주의자의 식단이 또 다르다. 절대 주는 대로 먹지 않는다. 그 놈이 밥이 늘 문제다.

거기다가 종교에 따라서 라마단과 크리스마스, 그리고 각 국가별 국경일과 휴일을 지내는 것이 모두 다르다. 다양할수록 손이 많이 간다. 캠프의 규모는 작게는 2~300명에서 많게는 한 공정 당 1천 명까지 감당해야 할 경우도 있다.

1천 명이 지내는 캠프는 작은 마을이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지지고 볶고 야단법석이다. 캠프에서도 그렇게 난리치면서 서로 살아간다.

라마단 금식월, 지혜와 인내의 시간들

중동지역에서 모든 사람이 제일 힘든 시기는 바로 라마단 금식월이다. 혹서기 건설현장은 전 세계 어디나 힘들겠지만, 이슬람권에서 라마단은 혹서기의 시작이자 현장 관리자에게는 운영의 지혜와 인내가 더욱더 필요한 기간이다.

인내도 보통 인내가 아닌 석 달 동안의 밤 근무와 라마단 기간의 낮 금식을 참으며 공기(工期)를 끌고 가는 그런 인내다. 현장은 모슬렘 근로자의 라마단 예식과 음식, 밤 근무의 효율성을 고민하고 돌봐줘야 하는 기간이다.

공기 준수를 위한 독려 이전에 그들의 문화와 삶에 동참하는 기간이다. 캠프도 이제 밤 근무에 맞춰 낮밤을 바꿔서 식사를 제공하고 출퇴근 버스를 배차한다.

50도에 달하는 혹서기의 한낮에는 다들 낮잠을 자야만 한다. 식수를 준비하지 않으면 휴일의 외출은 생사의 기로에 직면할 수 있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이 혹서기 3개월을 잘 보내면 이제 본격적으로 공기를 채울 수 있는 가을과 겨울이 온다. 이곳의 가을 하늘은 한국보다 더 깊다. 회색빛 천지에서 파란 가을 하늘이 보이기 시작하면 한국의 단풍을 떠올리게 된다. 그 풍경에서 그 힘든 혹서기를 잘 넘겼다는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는 편안함을 느낀다.

눈 내리지 않아도 크리스마스엔 축제와 파티를

그리고 11월. 이제 캠프든 현장사무실이든 히터와 방한복을 준비해야 한다. 중동의 겨울은 한국의 가을 날씨와 거의 비슷하지만 더운 지방에서 온 근로자들과 스탭들에게는 혹한기와 다르지 않다.

중동도 분명 사계절이 존재하고 그 계절마다 준비해야 하는 것이 따로 있다. 12월이 되면 겨울답게 털 부츠도 등장하고 목도리도 등장한다. 크리스마스 때 눈은 안 오지만 개신교를 믿는 다국적 근로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파티를 한다.

마치 라마단의 끝에 양을 잡아서 제물로 바치고 서로의 안위를 묻고 평화를 기원하는 축제와 같다. 그들도 머나 먼 이국땅에서 가족과 동료의 안위를 기원하며 서로에게 평화를 나눈다.

그 사이에 추석을 맞이하는 한국인은 송편과 떡국으로 안부를 묻는다. 1월 1일은 모든 사람이 다 잘 즐기며 축하하는 ‘New Years Day’다. 국적을 불문하고 모두가 새롭게 오는 한해를 반기는 ‘글로벌 명절’이다.

여기에 한국인은 한 해가 지남에 따라 나이 듦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남다르다. 내가 한 살 더 나이를 먹었다는 것에 대한 서글픔과 한편으로는 내 자식은 또 성장하고, 내 가족을 지켜냈다는 묘한 감정이 뒤섞인다.

설날은 이곳의 외국인 근로자들도 하루 쉬는 ‘코리안-글로벌 홀리데이’다. 한국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많은 근로자들은 세뱃돈도 달라고 하다. 공짜로 생기는 돈은 누구에게나 다 즐겁고 행복하고 재미있는 일이다.

하루의 마감, 그 소중한 휴식을 위한 ‘인샬라’

오후 6시가 되면 근로자들이 캠프로 돌아온다. 현장 근처에 지은 가설 캠프는 퇴근버스에서 내린 근로자들로 고요함이 가신다. 식당에서는 밥 짓는 냄새가 풍겨 난다. 동남아인들을 위한 일반적인 식사와 채식주의자의 식사, 그리고 필리핀인 식사가 근로자들의 퇴근 발걸음처럼 발 빠르게 준비된다.

그날 하루 노동 후, 내 쉼터에서의 식사는 곧 만찬이며, 만찬 후에 만끽할 수 있는 휴식시간은 나는 물론이요, 그들 모두에게도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뉘엿뉘엿 해가 저무는 서쪽 하늘은 노을로 물들고 캠프의 타워라이트가 하나 둘 켜진다. 와이-파이가 잘 터지는 곳에 삼삼오오 모인다. 이제 가족과 친구와 형제를 부르는 화상통화가 온갖 메신저로 시작된다.

휴대폰의 화면을 보며 웃고 울고 손 흔드는 그 순간은 우리 모두가 다르지도 같지도 않은 순간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이곳에서 통하는 ‘인샬라’로 마무리한다.

당신의 평화와 나의 평화, 그 모든 순간과 모든 이에게 신의 가호가 따르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그 인샬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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