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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규 Oct 27. 2017

2019년에 개교하는 노천초등학교

최초의 공립형 초등 대안학교

프롤로그


얼마 전 한 학생의 엄마가 카톡으로 노천초등학교 설명회 개최 소식을 전하는 블로그를 소개했다. 노천초등학교는 작년 교육부에서 시행한 민간위탁형 공립 대안학교 사업에 강원도교육청이 초등 분야로 선정되며 2019년에 개교하겠다는 공립 대안학교의 가칭이다. 올 2월까지 운영하고 폐교된 홍천 동면의 노천분교장 부지에 새롭게 건물을 짓고 출범하겠다는 강원도교육청의 각오와 로드맵이 교육부 심사에서 선발된 것이다.(2016년 10월)

민간위탁형이란 학교를 교육부와 지역교육청이 비용을 대서 만들고 운영은 민간에게 위탁하겠다는 새로운 발상이다. 강원(초등)을 비롯해 대구(중등) 경북(중등) 전남(중등)에 교육부는 40억을 교부했다. 전남의 경우 담양의 한 폐교부지에 교육청 15억, 담양군 15억을 마련해서 총 70억으로 학교를 만들어 전남의 기존 대안학교가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강원도는 좀 다르다. 교장만 민간 대안교육전문가를 내정했고, 학교 건축부터 교육과정 설계 및 운영까지 도내 교사를 중심으로 구성한 추진위원회에 개교 준비를 하도록 하고, 행정적인 뒷받침은 강원도교육청이 맡기로 한 것이다. 강원도교육청은 공립초등대안학교를 위해 60억 예산을 마련해서 총 100억 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이 글은 노천초등학교 설명회 참가 후기다.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내가 발언하지 않는다면 책임회피라는 생각에 후기를 써서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내게 설명회 소식을 알린 학생의 부모가 향후 노천초등학교에 아이를 편입시키고 싶을 뿐 아니라 가장 많은 ADHD부모가 모여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노천초등학교 개교에 큰 관심과 기대를 하고 있다고 하기에 꼭 조언해야겠다는 판단을 했다.


1. 


강원도교육청은 어제(10월 26일) 설명회를 알리는 보도자료를 25일에 발행했다. 보도자료를 받은 언론이 중앙일간지를 비롯해 여럿이 보도자료 문구를 그대로 인용해 인터넷 기사를 생산했다. 아래는 노천초 설명회를 알리는 경향신문 보도 내용이다.(전문)     

강원 홍천지역에 설립되는 전국 첫 민간 위탁형 공립 대안 초등학교가 오는 2019년 3월 문을 연다. 강원도교육청은 26일 오후 6시 홍천교육도서관에서 공립 대안초등학교인 가칭 노천초등학교 사전 설명회를 개최한다고 25일 밝혔다. 내년 3월부터 학교 건물을 신축하고, 하반기에 신입생 108명을 선발할 예정이다. 강원도 내 학생 70%, 타 시·도 학생 30% 비율로 모집할 계획이다. 노천초교는 초등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학교를 떠나는 학생 등에게 치유와 돌봄교육을 제공하게 된다. 
김혜영 강원도교육청 학생지원과 장학관은 “지난해 초등학교 학업중단 학생 2777명 중 1507명이 정규 교육이 아닌 대안교육을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공립형 대안 초등학교 설립이 대안 교육을 원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희소식이 되길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앞서 강원도교육청은 지난해 8월 공모를 통해 푸른숲발도로프학교 학장 등 대안학교 재직 경험이 있는 윤영소 선생님을 교장으로 내정했다.     

강원도교육청 보도자료가 나오기 전에는 인터넷 검색으로는 어디에서도 설명회 개최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유일하게 한 블로거가 자신의 블로그에 내용을 올렸는데, 확인해보니 담당 직원이 카톡으로 올린 내용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었다. 정식 설명회는 내년 5월로 예상하고 있으며 이번 설명회는 일종의 파일럿 성격이라 홍천 관내 초등 및 유치원 학부모에게만 알렸다는 것이다. 설명회장에서 보니 홍천 관내 초등학교 일부 학부모들이 소식을 접했고, 대부분 홍천읍 거주자들이 참석했다.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이다. 갑작스러운 설명회 소식도 뜬금없었고, 시기도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다. 아직 자세한 설명이 어려울 정도로 정해진 것보다 정해지지 않은 내용이 더 많기 때문에 설명회 형식만 갖췄고, 리플릿이나 PT 화면이 노천초 고유의 것은 적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을 작성하는 것이다. 때가 더 늦어지기 전에 말이다.


2.


설명회에서 학교 철학을 비중 있게 발표했다. 나무를 키워드로 풀었다. “함께 자라는 나무” “스스로 자라는 나무” “성장하는 나무” “우리 모두 나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다섯 가지가 구체적 서브테마로 제시됐다. 순간 키노쿠니가 떠올랐다. 단순히 키노쿠니가 “나무의 나라”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목공을 매우 중요시하고, 3년에 걸쳐 통나무를 학생들과 가공하여 세상에 없는 놀이터를 마련하겠다는 포부를 들을 때도 키노쿠니가 연상됐다.(키노쿠니는 오사카 인근 와카야마 현에 있는 초중고 통합 대안학교로 나는 2012년 2월에 1박 2일로 방문한 바 있다) 노천초를 설계할 때 키노쿠니를 참고했어도 환영할 일이지만 키노쿠니 이름 때문에 나무를 키워드로 노천초 철학을 자부심이 느껴지도록 설명했기에 키노쿠니가 떠올랐을 뿐이다.

거목의 뿌리처럼 노천초를 지탱하는 철학 방향과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문제는 철학을 너무 강조하는 분위기에 있다. 이건 일단 개인적 느낌일 뿐이다. 강원도교육청 관계자와 어떤 얘기도 나눈 적이 없기 때문에 심상에 떠오른 날 것 그대로다. 노천초 추진위가 고민하고 다듬었을 나무를 메타포로 하는 철학 내용에 동의하면서도 대안교육운동 초기 집단이 천착한 철학의 문제가 떠올랐다.

1세대와 2세대 대안교육운동 세력이 수렴한 것은 당연한 내용이었다. 민주/평등/평화/생태/성장/더불어 등 거대담론이 그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학생운동을 목숨 걸고 진행했던 주역이라 비민주 한국사회를 민주화하는 게 가장 큰 대안학교의 비전이기 때문이다. 3세대에 와서는 자유와 규범에 대한 갈등이 심도 높게 다루어졌다. 4세대는 단연 ‘생존’이 키워드다. 세월호의 영향으로 수렴 속도가 가팔랐지만 세월호 사건 이전부터 관심이 모아진 것이다. 어린이 청소년의 생존을 위한 방법론도 문제지만 생존의 결(패턴)과 질도 문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철학의 문제와 결합한다. 여기에 생존의 또 다른 측면도 있는데 대안학교 자체의 생존이다. 민간영역에서 대안학교를 운영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요인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어쨌든 중요한 것은 생존하기 ‘매우 곤란’함이다. 운영비 조달의 어려움이 첫째다. 이번 교육부 민간위탁형 공모사업의 배경에도 작용했을 것이다. 국가는 100억 동원이 어렵지 않지만 민간 대안학교는 1억 동원이 난망이다.

다시 얘기를 철학 문제로 돌려서, 노천초의 철학은 철학 그 자체에 대한 고민의 결과로 보인다. 신설 공립대안학교의 철학은 설립목적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출발하기를 기대했기 때문에 나로선 마음에 걸린 것이다. 

10.25 자 강원도교육청 보도자료에 따르면 “노천초는 초등학교 부적응으로 학교를 떠나는 학생들의 교육기회를 보장하고 공교육의 책임성을 다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며, △위기 학생을 위한 치유와 돌봄 교육, △다양성 교육을 희망하는 수요자를 위한 대안교육 제공, △학업중단 학생의 공교육 복귀 기회를 제공한다”라고 공표하고 있다. 어제 설명회는 세 가지 노천초 설립 취지 중에서 두 번째 내용을 특히 강조한 분위기였다. 위기학생의 치유와 돌봄 교육보다는 ‘다양성 교육’으로 명명된 개념으로 일반학교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파격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하여 미래의 리더십을 길러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느꼈다. 

포장 없이 느낀 그대로 말하자면 포부와 실천력을 겸비한 현장교사들이 평소에 꿈꾸던 독일의 공립 혁신학교 헬레네 랑에 학교나 파격적인 공간 창출로 유명한 스웨덴 대안학교 비트라(Vittra)를 능가하는 학교를 강원도에서 구현 해보리라고 말하는 듯했다. 

다시 말하지만 선의에 대한 의심이 없다. 마이크를 든 장학관부터 최일선에서 가장 고생하는 파견교사까지 그들의 선한 의지는 높이 평가해야 한다. 문제는 강원도가 공립형 대안학교 사업을 따오면서 교육부 취지를 살짝 변형했다는 것이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강원도 교육행정을 책임지고 집행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교사(교육행정가)로서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또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이게 문제가 되는 건 내 입장 때문이다. 학교 부적응 아이들을 24시간 돌보는 일을 하는 나와 우리 아이들의 가족은 진즉부터 노천초와 같은 학교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부 공모사업 취지문에는 어디에도 ‘다양성’이란 말이 없다. 이번 공립형 대안학교는 교육부 사업이다. 교육부는 본 사업의 방향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민간위탁형 공립 대안학교는 기존 정규학교 부적응 학생, 학교 밖 청소년 및 대안교육을 희망하는 학생을 주 입학 대상으로 하고,....”     

또한 교육부는 본 사업의 배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현재 대안학교는 25개교가 설립·운영 중이며, 이 중 공립 대안학교는 6개교이나, 다문화 학교 2개교, Wee스쿨 3개교를 제외하면, 단 1개교(꿈키움 학교)만이 정규학교 부적응 학생을 위한 공립 대안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교육부는 5개 신규 거점 민간위탁형 공립 대안학교에 각 40억을 배정하며 진행하는 사업에 정규학교 부적응학생을 위한 학교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지만, 대안학교 성격의 현천고와 올해 출범한 가정중학교를 운영하는 강원도가 초등대안학교까지 마련하며 초중고 라인업을 완성하려고 했다고 본다. 이는 강원도교육청이 공식적인 문서에서도 밝히고 있다. 그런 과정에 가정중학교 입학전형처럼 다양성 50%, 사회통합(학교부적응) 50% 선발을 마련한 것이다. ‘다양성’ 전형은 경기 남한산초나 분당의 이우중고등학교를 찾는 학부모와 같은 교육수요자를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로 읽었다. 위 두 학교는 학교부적응과는 관계가 없다.

사회통합 명명도 걱정되는 대목이다. 원래 교육부 문건에는 사회통합이라는 단어가 없다. 학교부적응이라는 단어가 부정적 요인이 있을 수 있으니(심지어 발달장애 특수학교처럼 받아들이며 지역사회에서 설립 반발이 있을까 우려하기도 한다) 사회통합으로 에둘러 표현했다고 해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명회 분위기는 사회통합을 학교부적응보다는 경제적 약자를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처럼 보였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에 대한 깊은 대화가 없었기 때문이고, 설명하는 주체가 얼버무리듯 표현했기 때문이다. 추후에 확인이 필요하다.


3.


나는 지난 4년 동안 기숙형 초등대안학교를 운영했다. 말이 대안학교지 상가건물의 한 공간을 임대하여 열 명 이하의 아이들과 생활하는 그룹홈 형식이다. 현재는 1~4학년 6명 어린이가 있고, 적을 땐 1명만 있기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올해 말로 학교 문을 닫고 아이들은 부모에게 돌아간다. 특별한 교육과정을 정리해서 보여줄 것도 없고, 거창한 교육철학을 앞세우지도 못했다. 내게 온 아이들이 부모 밑에서 인근 공립학교를 다닐 수 없는 조건이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받지 못한다고 하니 내가 함께 살뿐이다. 적지 않은 교육비를 받는다. 절대수가 적어서 인건비 비중이 가장 많고 먹고 자는데 드는 비용도 꽤 크기 때문에 늘 적자를 면치 못하지만 좋은 환경을 마련하려고 애썼다.

함께 생활하는 아이들을 뭉뚱그려 말하면 교실에 적응하지 못한 경우라고 하겠다. 디테일한 서술은 복잡하지만 일반교실에서 생활과 학습이 불가능한 아이들이다. 일부는 병원에서 ADHD(주의력이 부족하고 자극보다 과도하게 행동하는 정신과적 질환. 서울시 교육청의 경우 ADHD 초중고생을 전체의 6%로 보고 있고 유사ADHD를 포함하면 11%로 보고 있다) 진단을 받고 투약한 경험도 있다. 평소 아이들과 생활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태반은 내 팔자타령이다. 글이나마 힘든 점을 하소연하면 좀 위로가 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일반교실의 아이들도 우리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보통의 경우 교과 학습에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누군가 강제로 미션 수행을 시킬까 봐 늘 긴장하고 있다. 세상에 대해 호기심을 드러내며 공세적으로 경험을 쌓아가는 아이들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 수세적으로 자기 방어에 길들여져 있다. 가장 흔한 아이들의 말은 “제가 한 게 아니에요”다. 수업시간에 한정한다면 “그거 왜 배워야 해요”일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 대한 진단에는 ‘과잉보호’와 ‘과도한 경쟁교육’이 꼭 등장한다. 당연히 맞는 말이다. 그러니 대안을 논할 때 보호를 과잉으로 하지 않고 스스로 수행하거나 해결하도록 기다려주자는 주장과 서열 경쟁을 지양하고 평가는 저마다 장점을 서술하는 형식으로 전환하자는 제안은 단골 메뉴다. 물론 그렇게 되길 바란다.

그러나 현장은 어른의 담론보다 징그러울 정도로 훨씬 더 복잡하다. 현자(賢者)의 전망과 처방을 위해 100억(노천초 설립비용)이 필요한 건 아니다. 우리는 공적 영역과 민간영역에서 수많은 교육실험을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 이후 70년을 진행해온 학교교육(Schooling)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공간에서 해결책을 모색하자는 취지로 교육부 민간위탁형 공립대안학교 공모사업이 진행된 것이다.(그렇다고 믿고 있다)

노천초에서 교직원을 특히 당황하게 만드는 건 기숙형태에서 올 것이다. 

설명회에서는 16시까지 활동만 예시하고 있다. 16시부터 익일 8시까지 16시간 동안 아이들은 살아 있다. 물론 아직 준비할 시간이 많이 있기 때문에 오후와 저녁 프로그램에 대하여 고민을 이어가고 훌륭한 대안을 마련할 것이다. 하지만 깊은 고민이 좋은 대책을 마련하지는 않는다. 기숙을 한다는 것은, 그것도 초등학생, 거기다 초등 1학년까지 기숙을 한다는 것은 구조적으로 머리에 쥐가 나는 일이다. 기숙이라는 형식은 낮 시간 교실수업에도 강력한 영향을 준다. 

남녀 사감 선생님 각 한 분만 근무하고, 9 학급에 10명의 교사만 배치할 계획이며 변동이 없을 것이란 설명에 현직 교사로 설명회에 참석한 젊은 선생님은 한숨을 쉰다. 

왜 기숙학교를 하려고 하는가. 학생을 전국 모집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숙사를 지을 것이다. 그렇다면 매우 섬세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물론 지금까지는 시간이 없었을 것이고 앞으로 준비할 것이기 때문에 조언을 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4인 1실이며 개인마다 침대와 책상이 있으며 자기 집처럼 거실이 있고, 기숙사 곳곳에 잠자리 이상의 교육적 공간을 마련했다고 자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시설은 분명 자랑거리지만 내가 우려하는 것은 어린 초등 저학년 아이들이 집을 떠나서 어른의 시선 밖에서 오후 개인 시간을 운용하고, 아이들끼리만 잠자리에 들 때 예상되는 여러 상황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백 가지 예상 상황에 따른 백 가지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중고생이라면 매뉴얼이 의미 있다. 어린 초등학생이기 때문에 생활지도가 매뉴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엄마가 매뉴얼에 따라서 아이를 돌보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일단 사감을 비롯한 돌보는 교직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보인다. 꼭 보완하시길 바란다. 어머니의 봉사의지를 받아들여 엄마 사감을 마련해도 부작용이 있고, 특히 교사에게 사감 업무의 일부를 맡긴다면 더 큰 부작용이 예상된다. 어쨌든 기숙사 생활지도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고, 고민의 결과에 따라 기숙사 설계를 파격적으로 변경해야 할 것이다.


4.


노천초등학교는 교육부 공모사업에 지원할 때부터 교장을 내정한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교육청 보도자료에 따르면 현 경기 광주에 있는 푸른숲발도로프학교 윤영소 학장이 내정된 교장 선생님이다. 어제 설명회에서는 훌륭한 교장 선생님이 작년 9월에 초빙됐다고 알리며 성명을 말씀드리지 않겠지만 산마을고, 해밀학교 교장을 지낸 우리나라 대안교육의 최고 전문가라고 소개했다. 

윤영소 선생님은 설명대로 대안교육을 이끌고 오신 존경하는 선생님이다. 윤영소 선생님이 노천초 교장선생님으로 역할을 충분히 하실 것이다. 강원도 내외의 초등교사 출신 선생님이 교장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함을 듣는 순간 약간 의외였다.

이번 사업은 학교 운영에 대안교육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민간 법인이나 사인이 지원할 수 있다. 노천초의 경우 윤영소 교장선생님을 초빙하고 학교 건축이나 교육과정 구성, 교사 발령 및 운용 일반을 강원도교육청에서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교장선생님 초빙은 성공적이다. 문제는 교장의 역할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이다. 기존의 학교는 교장이 절대 권한을 갖는다. 이는 법적 권한이라기보다는 심정적인 전통이다. 이 전통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직책은 교장인데 계급장 정말 떼고 교사 및 교직원과 평등하게 논의하고 의결하고 집행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질 수 있겠는가. 교장 선생님의 개인적 캐릭터와 관계없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문제를 조금이나마 보완하려면 교사 발령에 있어 교장의 선발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추천권은 주어져야 한다. 

“대안”의 이름표를 가진 최초의 공립학교인 전북동화중학교부터 최근의 경남꿈키움중학교까지 수많은 우려곡절을 겪은 경험이 전철이 돼야 할 것이다. 대안학교 운영이 힘든 것은 선의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출발점에서 교장의 역할과 권한을 촘촘히 합의해야 하는데 교장선생님이 각 교실에 들어가는 담임선생님들과 사전 교류가 없다면 우려된다는 말씀을 드린다.

설명회에서 말씀하신 업무추진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윤영소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이 잘 놀면 되지 더 바랄 게 뭐가 있나”라고 말씀하셨단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청중석에서 박수가 터졌다. 격하게 공감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나도 마찬가지로 마음으로 박수를 쳤다.

하지만 강원도교육청에서 마련한 건물 청사진은 윤 교장선생님 말씀과 반대로 가는 것이다. 100억 사업비에 걸맞은 건축물을 마련할 요량이었겠지만 대규모 멀티미디어실과 도서관을 결합하는 아이디어나 초등학교 수준을 넘어서는 2개의 과학실과 예술체험실, 별도의 목공체험센터, 생태적이고 자연소재만을 사용하는 만들어가는 놀이터 등이 상징하는 것은 “잘 노는 아이들의 터전”과 방향이 다르다. 책 읽으며 놀고, 나무 자르며 놀고, 바이올린 켜면서 노는 것이지 아무런 재료와 프로그램 없이 맥없이 놀 수 없지 않겠냐고 반론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는 “공부보다는 잘 놀기”야 말로 철학적 배경이 필요하다. 놀기의 고갱이에 비정형성(非定型性)과 안티-시퀀스(순서를 정하지 않고 수준의 위계를 설정하지 않음)가 있다. 그게 아니라면 학습노동과 다를 게 없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노천초 추진위가 설계한 학교 건축물과 구조물은 프로그램을 열심히 수행하기 위한 콘셉트이다. 놀기를 구현하는 어린이 건축물이라면 창의력이 더욱 요구된다. 시설이나 재료가 과잉일 때 아이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물론 내 경험에 의한 주장이다.

아무리 돈을 들여도 아이들이 사용하는 시설은 1년이면 망가진다. 국립과학관을 보면 알 수 있다. 과학관의 수많은 관리직원이 보호해도 아이들 손을 타면 망가진다. 망가진 결과가 성공이라는 창의적 발상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고액의 시설을 만들고 망가지라고 응원할 필요는 없다. 빈 공간, 부족한 시설, 그러나 100명의 전교생에게 고르게 혜택을 주는 공간에 대한 발상 전환을 부탁한다. 혹시 헤펠레 수준의 목공 톱과 밀링까지 갖춘 목공체험시설을 기획한다면 두 팔 벌려 말리고 싶다. 결국 어린이들은 사용할 수 없고(사용해서도 안되고) 목공 선생님의 전용 놀이터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돈을 사용하려면 100억이 부족할 수도 있다. 어디에 효과적으로 사용할지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기 바란다. 목공을 위한다면 50개 망치와 50개의 톱, 50개의 드라이버, 10개의 줄자, 20개의 대패, 수백 장의 각종 번호 사포만 있으면 된다. 재단용 원형톱이 필요하다면 외주를 주면 된다. 

도서관에 대해서도 할 말 있다. 서가에 책이 빽빽한 교내 도서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떤 함의일까. 일 년에 100권의 책을 읽자고 할 텐가. 알록달록하고 다양한 의자 및 누워서 볼 수도 있는 시설물은 지역 도서관에도 많다. 꼭 5천 평 학교부지 울타리 안에 도서관을 지어야 하나. 지역과 협의하여 지역 도서관으로 하고 아이들이 울타리 넘어 즐겁게 도서관에 놀러 가면 어떨까. 설마 다독왕 상장을 발행하지 않겠지만 대안학교에서 독서를 권장하는 것과 일반학교에서 독서를 권장하는 것은 달라야 한다.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책으로 가득 찬 서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무언의 압박이다. 왜 아이들에게 책을 권해야 하는지 토론하지 않고 도서관의 최첨단 시설을 자랑하지 않기를 바란다.


에필로그


ADHD학교를 표방하고 도시형 초등대안학교를 시작했고, 전국적으로 학생을 모집하기 위해 기숙시설을 마련하고 24시간 아이들과 먹고 자고 생활해왔다. 체력도 달리고, 경영난이 심각해서 운영하던 학교 문을 닫지만 이 아이들이 일반 교실로 돌아가자니 걱정거리가 많고, 다른 대안교육시설을 알아봐도 갈 곳이 없다. 모든 대안학교가 힘든 아이들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정말 힘든 것 맞다.

그러니까 국가가 나서 달라는 청원을 수도 없이 했다. 노천초가 개교한다는 반가운 소식에 달려간 설명회에서 심히 우려되는 점을 발견하고 고심 끝에 글로 정리해서 공유한다. 설명회에 참가한 어떤 엄마는 사립학교처럼 학교 밖에서 사교육 하지 않아도 되도록 각종 예체능 교육도 해달라는 청을 하더라. 물론 강원도교육청은 바로 거절했지만, 노천초에 대한 이미지가 어떤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교육부는 공모사업 취지로 교육의 공공적 책무성을 강조했다. 강원도교육청 보도자료에도 마찬가지다. 교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어도 국가가 품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다. 1~3학년은 학년당 10명이 정원이고, 4~6학년은 20명이 정원이다. 한 담임에게는 버거운 숫자지만 일반교육을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턱 없이 부족한 모집정원이다. 그중 절반은 다양성이란 명분으로 썸머힐 교육을 갈구하는 부모의 자녀가 입학한다고 했을 때 노천초의 중심이 과연 학교부적응아에게 가겠는가. 아이는 적극적 성향이고 부모의 서포트도 풍부하고 호기심을 학습에 연계하는 반짝반짝하는 아이들과 새로운 환경에서 조심조심 적응해가는 기존 부적응아들을 통합교육의 정신이 잘 융화시킬 것인가. 내 경험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육면체 공간의 교실에 담임교사 한 명만 배치된 상태에서 크게 기대할 것이 없다. 결국 담임교사의 근무강도가 무한히 늘어나며 드러나지 않는 죄를 짓게 될 수도 있다.

이 정도에서 마무리한다. 물론 장이 펼쳐지면 얼마든지 더 자세한 얘기를 할 수도 있다. 그게 지난 4년 동안 초등 기숙형태의 대안학교를 운영한 자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노천초가 원만하고 더욱 섬세하게 기획되고 개교 후 행복한 학교가 되길 간곡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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