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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나무 Jul 21. 2017

부모의 삶 아이의 삶

좀비가 돼버린 우리 아이들

  태양 남중 고도가 가장 높은 하지에서 한 달가량 지나서 삼복더위가 이어집니다. 반대로 가장 낮은 동지에서 한 달가량 지나 제일 추운 겨울날을 보냅니다. 대지를 달구거나 식히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지요. 어쨌든 하지와 동지의 과학적 정의는 반드시 혹서기와 혹한기를 배태합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교육의 장에서 이를 재해석하면 부모(때론 조부모)의 삶이 다음 세대의 삶에 원인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역사의 반추가 패턴의 기계적 적용을 불러오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앞 세대 삶의 패턴이 다음 세대 삶의 직조(織造)에 관여한다는 가설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한참 선배인 전태일 열사(1948~1970)의 경우 일제 식민지 수탈을 관통한 조선 민중의 삶이 반영된 것이란 짐작이 가능합니다. 제헌헌법의 진보성이나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같은 구호를 외치며 어린아이까지 거리로 나왔던 4.19 상황에서 식민지 독립운동의 정신을 확인합니다. 저 같은 386(이제는 586이라 해야겠지만^^) 세대는 6.25를 관통한 부모 세대 삶이 투영된 결과임을 체험했습니다. 6.25의 비극이 5,60년 대 전후 문학에 담겨 있고, 그런 아비투스(habitus)가 생성돼서 다음 세대인 6,70년 대에 태어난 사회 구성원의 배경으로 자리 잡습니다. 6.25를 겪은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으로,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집집마다 가족 친지 중에 한 명 이상이 반드시 6.25 때 돌아가신 분이 있었고, 많지 않았어도 초등 동창 중에는 가난으로 중학교 진학을 하지 않고 소년 노동자의 길을 간 친구도 있었고, 같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전국의 동년배 중에 80%는 대학 진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더 이상 생물학적으로 죽을 이유가 없어졌다는 것만으로 안심할 수 있던 시절입니다. (개인적으로 연탄가스로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는데, 당시 잠잘 때마다 연탄가스로 아침을 맞지 못할 거란 불안감이 컸습니다)

  80년 대 들어서 정치적 역사적으로 80년 광주항쟁은 너무 큰 충격이지만 어린이 청소년들은 다른 요소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70년 대 1,2차 오일쇼크와 박정희 말기~전두환 정권 하 부동산 투기와 인플레 정책으로 인한 보유자산의 극단적 불균형이 '감성적'인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를 아이들에게 안겼습니다. 잘 살지 못하면 죽는 것입니다. 부자(rich)가 되는 것이 삶의 목표이자 살았음의 증거가 됩니다. 돈이 없는 것은 감성적 죽음으로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생물학적인 죽음의 두려움을 떨쳐버린 대신 감성적 죽음의 위협에 몸을 떨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88년 올림픽 개최 직전에 서울 장위동에 있는 초등학교에 교사 발령을 받았습니다. 6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당시에 다달이 월말고사를 치렀습니다. 빨간색 연필로 채점된 시험지는 집으로 보내는 시절입니다. 한 여학생의 하소연이 또렷이 기억납니다. 

  "선생님, 이 시험지 집에 가지고 가면 전 엄마에게 죽어요. 월요일에 제가 등교하지 않으면 죽어서 못 오는 줄로 아세요."

  "연옥아. 그런 얘기는 나도 너 만할 때 하던 얘긴데, 그런 말 하던 사람 모두 하나도 죽지 않았어. 하하하..."

  나중에 생각해보니 아이가 죽는다는 말과 제 죽는다는 말이 다른 뜻이었습니다. 그땐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연옥이는 양갈래 머리를 정갈하게 땋은 착하고 재치 있는 아이였는데 이제 40이 되었네요. (허이고~) 연옥이는 in 서울 대학으로 진학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 소식은 모릅니다. 연옥이가 어느 대학으로 진학했는가는 그를 판단하는 아무런 근거도 아닙니다. 연옥이는 6학년 당시에 정말로 죽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감성적으로 일찍 죽은 아이가 원치 않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다시 죽음을 경험하고, 지금은 초등학생 자녀의 엄마로서 자신도 죽이고 아이도 죽이지는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물론 연옥이는 상징적입니다. 

  현재 초등학생들은 엄마인 연옥이의 삶과 연동되거나 크게 영향을 받거나 적어도 연옥이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습니다. 지금의 어린이 청소년들은 생물학적 죽음에 대한 개념이 소멸된 듯합니다. 초보 교사 시절 아이들과 상상놀이를 하면서 '자신이 죽었고 자신의 시신이 관에 들어갔으며 땅에 묻어지는 상상'을 주문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눈을 감은채 진저리를 치면서 공포에 빠졌습니다. 지금 아이들은 다릅니다. 별 감흥이 없거나 키득거립니다. 상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그보단 목숨이 끊어져 이승을 떠난 상태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결론입니다. 바보라서가 아니고 부모 세대가 전쟁과 질병에 따른 생물학적 죽음에서 멀어지면서 지금 어린이 청소년들은 아예 개념 형성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거란 판단입니다. (옛이야기와 교육과정에서 죽음을 배제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도 크게 작용한 결과)

  대신에 지금의 아이들은 감성적 죽음에 매우 민감합니다. 인정받지 못하면 이 아이들에게 곧 죽음입니다. 여럿에게 비난받으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프는 물론 온라인에서도 왕따는 타임라인에서 휘발되는 스토리이고 곧 사망진단입니다. 부모 세대가 생물학적 죽음을 상상할 수 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고 감성적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다면, 그 자식들은 처음부터 감성적 죽음만 걱정하고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정작 생물학적 목숨에 대해서는 무감각합니다. 

  그런데 그다음 전개가 의외입니다. 이미 우리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감성적 죽음은 관계의 왜곡과 단절로 볼 수 있기에 더욱 관계 정상화를 위해 애써야 마땅하다고 보지만 아이들은 다른 대응을 보입니다. 유감천만 하게도 그들은 자신을 좀비(zombie)로 생각합니다. 좀비는 움직이는 시체이기 때문에 갈갈이 해체돼서 소멸하기 전까지는 다시 죽지 않습니다. 좀비는 의지가 없어서 조종자의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어차피 목표와 의지가 없기에 조종자가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습니다. 선악의 판단과 세간의 평가에서 자유롭습니다. 좀비는 생명이 없고 사람이라고 볼 수 없어서 좀비에 대한 물리적 공격이 도덕적으로 문제 되지 않습니다. 좀비는 다른 사람을 물어서 같은 좀비로 만드는 것이 임무의 전부입니다. 

  이런 공포 스릴러 이야기 구조에서 반드시 빠져나가야 합니다. 이대로라면 소수의 부자들과 다수의 좀비로 구성된 세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한 달 전에 하지가 있었다면 오늘의 혹서를 피할 수 없습니다. 한 달 전에 동지가 있었다면 오늘의 혹한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주의 자연법칙은 벗어날 길이 없지만 사람의 삶은 다르지 않을까요. 부모 세대의 감성적 죽음이 우리 아이들의 좀비 변신에 원인 제공이라면 부모의 부활이 반드시 요구되지 않을까요. 부활의 묘약은 불안과 결별입니다. 자식의 미래에 대한 불안은 기실 자신에 대한 불안입니다. 자신의 불안과 맞짱 뜰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 용기는 문제 해결을 위한 최소한의 전제가 될 것입니다. 

  자신의 불안을 정면으로 응시한다면 불안의 실체가 결핍에 대한 불만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나는 늘 부족했고, 왜 채우지 못할까 불만스러웠고 그래서 불안했습니다. 불만은 배우자에게, 또다시 자식에게 옮아갔습니다. 불안감이 매개가 됐습니다. 

  용기를 갖고 고민하고, 공부하고, 덕이 높은 분들께 조언을 청하니 "받고 싶으면 먼저 줘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증여의 선순환을 말합니다. 그런데 증여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내 뒤주의 쌀을 한 바가지 퍼서 시주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ARS를 마구 눌러 내 통장의 돈이 기부단체 통장으로 이체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즉 내가 현재 쥐고 있는 것을 쪼개서 타인에게 주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증여를 약속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도록 하는 것입니다. 

  주변의 아픔에 함께 아파하는 일이 증여입니다. 그러나 현재 아픈 내 아이의 고통을 나눠지는 것은 선하고 당연한 일이지만 증여라 할 수 없습니다. 돌봄이 필요하지만 외로운 아이를 안아주는 것은 증여입니다. 그러나 힘들어하는 내 아이를 안아주는 일은 증여가 아닙니다. 부조리에 분노하는 일은 증여입니다. 그러나 바람직하지 못한 내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은 증여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핵심은 증여는 행동(acting)이라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에 한국 사람들이 열광한 것은 교황의 권위가 아닌 그분의 적극적 행동 때문입니다. 주변의 아픔을 위로하는 기도를 내 집 거실에서 열심히 하거나, 부조리 적폐 청산을 바라며 혼자 3천 배를 올린다고 증여가 될 수 없습니다. 행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행동은 주고받는 일이며 정성과 근력(筋力)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혼자서 행동하는 것은 없으며, 마음으로 증여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타인을 위해 몸을 쓰고 정성을 기울이면 저절로 내 그릇에 밥이 채워집니다. 만족이 가득합니다. 불안이 사라집니다. 새로운 내 삶의 패턴이 내 아이의 삶을 다시 구성합니다. 좀비 자식의 살이 새로 돋고 따뜻한 피가 돕니다. 의지가 자라나고 의욕과 용기가 생깁니다. 가족이 언제나 웃습니다. 상상만 해도 가슴 뻐근해지는 느낌이 아닙니까. (2014.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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