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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달나무 Jul 21. 2017

문제는 어휘야

쌀을 먹으려 함

  일전에 단재학교 건빵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아이들의 부족한 어휘력에 대해 오고 간 얘기가 있습니다.

중학생인데 "나부끼다" "흩날리다"를 몰라서 말뜻을 설명했다는 것입니다. 부족한 한국어 어휘력은 학습에 큰 걸림돌이 된다는 의견에 서로 일치를 봤습니다.

  지나간 위 일화가 떠오른 일이 있었습니다. 사자소학 외우기 활동을 하는데, "포함(包含)"이 나왔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포함의 개념을 어렴풋 알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단지 어렴풋....

  음과 훈을 알려주다가 답답한 상황이 생겼습니다. 包는 '쌀 포' 含은 '머금을 함'이라고 일러줬는데, '쌀 포'의 쌀 자는 의심의 여지도 없이 밥을 짓는 쌀로 알고, '머금을 함'의 머금다를 처음 듣는 말이기 때문에 저마다 다르게 알아들었습니다. 그중 실소를 낳은 것이 '먹으려 함'으로 들은 아이의 당당함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싸다'에 대해 '오줌을 싸다'와 '가격이 싸다' 정도를 알고 있습니다. '짐을 싸다'가 어렴풋하고 '에워싸다'는 전혀 모르는 말입니다. '머금다' '머금고' '머금어서' '머금지'에 대해 읽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통계적으로 초등학생의 평균 하루 구사하는 어휘수가 300 단어 이하라고 하는데 걱정스러운 수준입니다.

어휘력의 부족은 몰개념을 가져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어제 있었던 일)


  선분에 중점을 작도하는 경우입니다. 중점 작도는 수십 번 이상을 했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중점을 찍어라"라고 하면 바로 작도를 합니다. 

  하지만 중점은 가운뎃점이고, '가운데'는 "일정한 공간이나 길이를 갖는 사물에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양 끝에서 같은 거리가 떨어져 있는 부분"이지만 위 그림에서 중점에서 양 끝점까지 길이가 똑같다는 개념이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일상에서 아이들은 가장자리가 아니면 가운데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수학에서 가운데 의미의 중점은 매우 엄밀하게 쓰이는데,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을 확인한 것입니다. "중점은 양 끝 점에서 같은 거리에 있다"는 명제를 아이들에게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설명을 들은 아이들이 비로소 알아듣는 척 하지만, 실은 계속 모르는 상태입니다. '가운데' 낱말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로는 중학교 수학에서 다루는 집합 단원의 "포함관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진짜 문제는 조금 다릅니다. 아이들이 일상에서 구사할 수 어휘수가 매우 적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휘의 부족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진정 걱정스러운 점입니다.

  일본의 철학자 우치다 타츠루는『하류지향』에서 일본 대학생들의 무지와 부족한 어휘력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들의(일본 대학생) 세계에는 군데군데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다. 그들은 구멍을 피해 사이사이로 빠져나갈 뿐이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세계에 커다란 구멍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구멍은 살아가면서 주변과 소통, 학습, 경험 등을 통해 메워집니다. 그런데 우리(한국)의 아이들은 구멍을 메우려는 생각 없이 구멍에 빠지지 않고 피해 가는 길을 찾는데 집중합니다. 

  구멍이 존재하지만 피해갈 수만 있다면 스스로에게 학습의 동기유발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나를 둘러싼 세계를 읽어낼 능력이 부족하지만 불편하지 않은 상태에 우리 아이들이 놓여있습니다.

  즉 학습이 가능하려면 현 상태가 불편해져야 합니다. 본인은 불편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아이를 외부에서 불편하도록 조작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불편함과 갑갑함을 느껴야 합니다. 구사 어휘수의 증가가 열쇠입니다.

어른들이 실수하는 것이 구사 어휘수의 증가를 학습을 통해 해결하려는 것입니다. 불편하지 않은 아이를 학습의 장으로 데려올 수 없는데, 학습을 통해서 불편해지도록 유도하는 것은 논리 모순입니다. 실제로 불가능 일입니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학습하는 척만 할 수 있습니다.

  학습이 아니라면 어떻게 구사 어휘수를 늘릴 것인가. '어휘'보다는 '구사'에 방점이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사전을 통째로 삼킨 아이도 결국 구사하지 않으면 구사 어휘수는 없는 것입니다. 언어의 공동체 성격이 확실한 것처럼 아이들은 집단 안에서 활발하게 말을 주고받으면서 구사 어휘수를 늘려나갑니다. 집단은 어른, 아이 다양한 연령대와 경험치를 가진 구성원이 함께 해야 합니다. 

  단언하건대 아동기의 경우 공동체 속에서 놀이를 지속하는 것만이 구사 어휘수를 늘릴 수 있을 것입니다.(2014.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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